T의 미래
입시생의 3월은 시간이 빨리 흘렀다. 4월이면 첫 원서접수를 시작으로 줄줄이 과학고등학교 입학 전형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시기에 맞춰 서류 준비하고 자기소개서와 추천서 준비하면 외고, 예고를 거쳐 특성화 고등학교에 이어 일반계 고등학교까지 진행되고 한 해의 마무리가 될 수 있었다. 1년을 타임 스케줄에 따라 따라가면 되었다.
한국과학영재학교, 중학교에 10년 있으면서 내 손으로는 딱 한 명 보내 본 학교였다. 그곳에 갔던 아이는 매 시간을, 매 순간을 알차게 보냈다. 체육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활발하게 움직이고, 공부할 때 무섭게 집중했다. 좋아하는 과목만 따로 하지 않았고 모든 과목에서, 모든 시간에 빛을 발했다. 인성도 훌륭했다. 친구들에게 싫은 소리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 학교에 간 학생들이 모두 그 아이 같지는 않겠지만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인성이 돋보이는 그 아이가 진심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길 빌었다. 국가의 인재가 되길 바랐다. 뛰어난 지능은 인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아이 같아야 바람직하다고 얘기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 학교가 T에게 무엇 때문에 중요한지 생각해 보았다. 이상을 펴기 위한 최적의 곳이었을까. 자신의 지적 수준에 맞는 학교라고 생각했을까. 다른 아이들보다 자신이 좀 더 우월하다고 얘기하고 싶었을까. 부모님의 이상에 맞는 학교였을까. 일찍부터 넌 그곳에 가야 한다고 주입이 되었던 것일까. 그래서는 안 되지만, 아이와 엄마의 입에서 그 학교 이름이 나올 때부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필요한 공부만 가려서 하는 아이였다. 진로와 무관한 과목은 대충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부족하면 순위에서 밀리는 것은 문과 과목이었다. 그런 마음을 당당하게 얘기할 만큼 아이는 순진했다. 아이의 어머니도 어려울 것이라고, 하지만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가 그걸 원한다고 했다. 함께 최선을 다해보자고 말했다.
예정된 실패였지만 타격이 컸다. 발표 직후 하루를 결석했고 그 후로 드문드문 늦게 등교했다. 합격을 예상했던 것이 (서로) 아니었(다고 생각 했)기 때문에 다음 학교에 집중하자고 얘기했다. 거부감 없이 그러겠다고 답했다. 입시 요강을 보며 1학기 시험까지는 최선을 다하자고, 그래야 다음 전형을 잘 대비할 수 있다고 독려했다. 알고 있다고, 열심히 하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행동이 달랐다. 수업시간 자세가 흐트러졌다. 수행평가 과제를 늦게 제출하는 일이 잦았고, 간간이 몸을 옆으로 비틀어 누워 있었다. 여러 교과 선생님들의 걱정이 이어졌다. 점수가 아이에게 중요한 건 알겠는데 깎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원칙대로 하지만 코앞에 입시를 앞둔 아이의 내신 서류 점수가 낮아질 것을 염려했다.
처음 한 번의 일탈이 힘들지 그다음은 쉬웠다. 결석도, 지각도, 수행평가 점수가 떨어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에는 점수에 예민했는데 의욕은 날이 갈수록 떨어졌다. 그러다 점수도 무시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될 대로 되라는 말이 아이 입에서 나왔다. 근태에 무단만 없으면 서류 전형에서 큰 불이익은 없었다. 8월까지만 아이는 그것을 간신히 지켰다. 그렇게 다음 과학 고등학교 입시를 맞았고 비슷한 성적의 아이가 합격의 기쁨을 맛볼 때 그 아이는 실패로 인해 무너지고 있었다. 당연한 결과였지만 아이의 방황에 가속 페달을 밟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후의 학교에도 원서를 접수했고 계속 실패했고 학교는 더 자주 빠졌다. 과학 고등학교 입시가 10월에 완전히 끝나고부터는 학교에 아예 나오지 않으려고 했다.
처음에 부모는 원인을 학교에서 찾으려고 했다. 친구들이 괴롭혔다고 했다. 다음엔 교사에게서 원인을 찾았다. 아이를 힘들게 했던 교사 누구를 지목했다. 아이는 부모에게 그게 아니라고 소리 질렀다. 어쩌다 잠깐 등교했고 어느새 학교에서 나갔다. 학교에서는 상담 교사와 함께 그 아이를, 부모를, 집을 찾았다. 어렵게 아이의 방에 들어가 아이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거친 말속에 부모에 대한 원망이 들어있었다. 아이는 험한 소리를 지르듯 뱉었고 부모는 얼굴을 붉혔다. 다음부터는 부모도 학교에서의 상담을 거부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곳을 택했고 그곳에서 다시 학교의 어느 아이를, 학교 폭력을 거론했다. 아이들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고등학교에 간신히 올려 보냈고 난 다른 학교로 옮겼다. 4월 초쯤, 그 아이가 입학한 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T의 3학년 때 담임이 맞느냐고 물었다. 아는 이름이라 왜 그러는지를 물었다. 학교에 나오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특정 교과의 교사와 언쟁이 있었고 처음엔 수업을 거부하다 이젠 학교를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중학교 때도 안 나왔는데 졸업도 했고 고등학교도 들어왔다고 말했다고 했다. 물론 결석으로 처리도 안 되었다고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가슴 떨리게 만드는 아이였다. 3월쯤 잘 다니는지 문자로 물었었고 잘 다닌다고 답했었다. 그렇게 무난하고 시큰둥한 문자가 오히려 불안하게 느껴지던 차였다.
아이의 말은 사실과 달랐다. 하루에 한 번은 꼭 불렀고, 수업엔 안 들어갔지만, 학교에는 나왔다가 가도록 조치했고, 학교 규칙상 잠깐이라도 학교에 등교하면 그 아이는 조퇴이거나 지각이거나 둘 중 무거운 것으로 처리되는 것이 맞았다. 그렇게 조퇴로 지각으로 처리된 날이 많았다. 본인은 수업에 참여를 안 했으니 아마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걸 근거 또는 핑계로 현재의 담임에게 내세웠던 것이었다. 지각 일수가 잡힌 것을 확인하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사항이었다. 무단결과 병결도 많았지만, 무단 지각, 병 지각 등 지각과 무단 조퇴, 병 조퇴 등 조퇴를 번갈아 모두 쓰며 수업일수를 겨우 채웠고 그렇게 고등학교를 진학했던, 아니 진학시켰던 아이였다.
3학년의 모든 날을 난 그 아이를 위해 살았다. 온 신경을 아침 등교하기 이전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그 아이를 향해 쏟았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8시에 T의 어머니로부터 아이가 등교를 안 하려고 한다는 전화가 왔고, 저녁 9시에 아이가 집에 안 들어왔다는 전화가 왔다. 중간에 무수히 많은 전화통화와 방문 상담까지를 합하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시간 통화를 하거나 만나거나 신경을 썼다. 집에서는 더 이상 전화를 받지 말라고 했다. 옆에서 큰 소리로 그만 전화하라는 말도 다 들리게 말하기도 했다. 민망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지만, 그 아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참기 어려운 상황까지 갔던 터였다.
고등학교 진학 후 아이에게 문자를 여럿 보냈다. 드문드문 답장이 왔었다. 답장이 어느 순간부터 끊어졌고 자연스럽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잘 있으려니 생각하고 싶었던 것 같다. 현재 고등학교 담임의 전화를 받고 통화를 시도했고 문자를 보냈다. 다시 중학교 3학년 담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았고 문자의 답장도 없었다. 이제는 그 학교의 몫이었다. 마음 한편에 짐을 얹고 2년이 지난 어느 날 수업시간,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제자로부터 그 아이의 소식을 들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학원에서 같이 공부했다고 했다. 온라인 게임 안에서 더 많이 만났다고 했다. 게임에 몰입했다고 했다. 그러고 어느 순간 학원에서도 온라인에서도 사라졌다고 했다.
다시 그런 상황을 맞는다면 다시 그 아이의 편이 되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망가져 가는 자신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가족을 얘기하며,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담임과 마주하며 그 아이는 울었다. 정신을 잃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자리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말했다. 끝까지 대답은 안 했다. 그러면서 학교 교육의 문제를 얘기했다. 제도권 교육이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제법 어른스러운 소리를 했다. 불투명한 앞날을 걱정했는데 길이 꼭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너무 큰 파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른스러운 소리일 뿐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