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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Dec 18. 2024

맛있는 기억을 위하여

권여선, <술꾼들의 모국어>를 읽으며

권여선 작가가 쓴 <술꾼들의 모국어>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다. 더 정확히는 술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책을 몇 장 넘기다 보니 술보다는 만두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도 갑자기 납작 만두가 생각나서 온라인 마켓에서 납작 만두를 검색하며 기어코 주문까지 마쳤던 일이 있었다. 도착한 만두는 세 번에 나눠 팬에 구워 먹었다. 그렇게나 먹고 싶었던 기억에 비해 그 맛이 엄청나게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역시 만두는 수제 만두가 최곤가?


어떻게 만두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시판되는 냉동만두나 포장마차에서 파는 속이 한 티스푼 정도밖에 안 들어간 '피'투성이 만두밖에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분명하다. 집에서 빚은 만두나 장인이 만들어 파는 수제만두를 못 먹어본 사람이 틀림없다.... 만두가 맛없어지기 위해선 굉장히 만두스럽지 않은 일이 벌어져야 한다. (<술꾼들의 모국어> 중에서)


책에서도 예찬한 것처럼 내게도 만두라는 음식은 생각만으로도 여전히 입에 침이 고이게 한다. 나이 덕분인지 입맛 덕분인지 음식을 향한 최애가 하나 둘 사라져 버린 지금이지만 몇 안 남은 애정하는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만두 빚던 그날의 풍경도 훤히 그려진다. 방을 가득 채운 커다란 식기들. 만두소가 가득 찬 커다란 대야 옆에 만두피를 만들기 위해 뭉쳐 놓은 두툼하고 푸짐한 밀가루 반죽 덩어리, 그리고 제대로 된 홍두깨와 임시 홍두깨인 빈 맥주병.


한번 만두를 만들면 잘 익은 배추김치는 넉넉하게 10쪽 이상은 동원되었던 것 같다. 거기에 엄청난 돼지고기 다짐육과 역시 어마어마한 양의 숙주, 두부와 파 마늘 등의 양념에 고추 삭힌 것을 넉넉히 추가하며 김장 대야 한가득 만두소가 쌓였다. 웬만한 요령이 아니면 힘만 쓰고 마는, 반죽을 고루 뒤적이는 것도 어려웠던 그 재료들. 


양이 많으니 빚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주로 설을 앞두고 만들었는데,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와중에 만두까지 빚어야 하니 마음은 바쁘고 정리는 안 되고 하루종일을 치다꺼리를 해도 밤까지 일은 끝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일꾼은 어머니와 나. 촉감놀이 하듯 참여하며 이미 만두 맛을 본 아이들과 남편은 일찍 자리에서 물러섰다. 


안타깝게도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은 없어도 명절 당일이면 작은집을 위시해서 4명의 시고모와 각각의 가족들까지 삼사십여 명의 친지가 빼놓지 않고 명절 인사를 했던 터라 언제나 음식은 넉넉히 준비해야 했다. 큰 의미가 없지만 이른바 종갓집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그 하루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정리하고 가족들의 잠자리를 챙기면서도 여전히 나의 일과는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아픈 허리가 더 시큰거렸다. 


만두소를 준비할 때부터 이미 나는 지쳐있었다. 게다가 처음 재료를 봤을 때부터 좋아하는 만두를 향한 애정의 콩깍지는 벗겨진 상태기도 했다. 원망스러운 만두소가 어서 사라져야 나의 일과는 끝날 수 있을 터. 말끔한 정리가 요원한 상황은 초저녁에 만두를 빚기 시작할 때부터 예상했던 대로였고 급기야는 맛있게 먹은 만두가 거꾸로 올라오는 듯한 느낌으로 병이 날 것 같은 상태가 될 때까지 그날의 일과는 끝나지 않았다. 자정이 지나도 줄지 않는 양에 나름의 대책으로 일단 냉동실에 넣어두고 나중에 천천히 만들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시어머니는 한결같이 "이까짓 것 얼마나 된다고", "너도 피곤하면 들어가 자라."며 손을 멈추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술꾼들의 모국어>는 소설가 권여선의 산문집이다. 저자가 경험한 술과 안주,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풀어낸 이야기로 일상 속 음식과 술, 삶의 다양한 측면을 경쾌하게 그린다. 저자의 기억은 유머가 동반되며 언제나 행복하고 따뜻한 기억으로 정리된다. 그러나 나의 음식 이야기는 행복이나 따뜻함과는 거리가 있다. 


음식에 관한 나의 기억은 언제나 엄청난 양의 압박을 받았다. 또한 대부분 쓰린 결말로 마무리됐다. 단체의 야유회를 위해 김밥을 억지춘향으로 만들어야 했을 때도 그러했고 첫 김장의 이야기도 그랬다. 지금은 성인이 된 둘째 아이의 백일엔 친지들을 집으로 불러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다. 내 선택이라면 절대로 벌이지 않았을 일이 대부분이었다. 


요리 대한 일머리도 없던 시절, 아무리 사랑하는 내 아이를 위한 백일상이라지만 음식을 만들었던 기억은 행복과는 거리가 있었다. 고되고 불편하고 언짢았던 기억 때문에, 나는 최근 음식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기 전까지 그날의 기억을 대부분 지웠던 것 같다. 그날 준비한 음식의 향과 맛은 물론이고 화창한 날에 대한 기억도 함께 지웠다. <술꾼들의 모국어>에는 모든 음식이 작가의 행복하고 소소하고 얼큰하면서도 찡한 기억으로 미소 짓게 한다. 아쉽게도 지난 시간의 내게는 그렇지 못하다. 


*


요즘 우리 부부가 자주 찾는 음식은 설렁탕이다. 찬바람이 부는 요즘 가장 생각나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즐겨 찾게 된 것은 여름의 초입부터였다. 오다가다 남편이 맛본 집이 설렁탕과 곰탕, 수육으로 이름난 집이었고 그 맛을 내게도 보여주겠다며 데리고 간 것이 시작이었다. 


설렁탕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설은 조선시대 때 경칩이 지난 첫 번째 해(亥) 일, 축(丑) 시에 동대문 밖의 선농단(先農壇)에서 임금과 신하들이 백성들과 함께하는 선농제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기 위해 커다란 가마솥에 고기 부산물을 넣고 푹 고아 백성들의 빈 속을 달래게 했을 것이라는.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는 이름난 설렁탕 집은 국물을 내는 방법이나 고명으로 얹는 고기도 다 주인장의 특별한 조리법에 특별한 비법을 추가해 조리하겠지만 여하튼 국물을 사랑하는 한국인의 입맛을 두루 사로잡는 음식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나는 소건 돼지건 닭이건 오리건 고기의 진한 육향을 귀신같이 찾아낸다. 육향은 단지 불호가 아닌 예민한 신체반응으로 나타나서 언제나 늘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게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래도 설렁탕의 육향 정도는 대파와 후추를 듬뿍 넣으면 그런대로 즐길 수 있을 만큼 입맛이 변한 것 같다.


음식처럼 오감으로 진하게 향수를 자극하는 것이 어디 또 있을까. 지나고 보니 나도 손맛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번개처럼 뚝딱 해치우지는 못해도 느리지만 차근차근 나름의 정성을 쏟았고, 그럭저럭 맛도 잘 냈던 것 같다. 또한 밥상을 둘러앉은 가족들의 부지런한 손길에 먹지 않아도 배부른 그 말의 진실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때 수술한 남편을 위해 사골 국물을 우려 냉동실에 얼려두고 다양한 국물요리에 활용하기도 했고, 돼지나 소 오리 등의 불고기를 각각 10kg 이상 양념하고 볶아서 속한 단체의 모임을 위해 가져간 적도 있었다. 그런 일들은 비록 몸이 힘들어도 소소하게 행복했던 기억을 지울 만큼 고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마음의 준비까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재료를 사고 조리의 전 과정을 내 몸에 맞게 조절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  


'맛있다'거나 '행복하다' 등의 충족감은 일련의 행위가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을 통해서 완성된다고 믿는다. 모든 과정에서 마음으로 수용하고 납득할 수 있을 때 입을 통해 터져 나오는 찬사야말로 하나의 거짓도 없는 진심의 표출일 것이다. 


애들이 크니 각자 끼니를 해결하는 때가 많다. 저녁에만 잠깐 들어왔다 다시 아침이면 나가는 생활도 슬슬 익숙해진다. 덕분에 예전처럼 반찬이나 찌개를 날마다 준비할 필요가 없다. 가끔 특별한 음식이 먹고 싶으면 맛있게 만들어주는 곳에서 먹자고 남편에게 말한다. 둘만 합의하면 되는 상황. 기대하는 마음으로 음식점을 찾고 정갈하게 음식이 차려진다. 수저를 들고 하나 둘 그릇이 비워지고, 맛의 기억을 온전히 간진한 채로 한잔의 차로 입을 정돈하고 나면 '맛있다'는 찬사가 절로 나온다. 주변의 풍경이 주는 아름다움과 맛의 기억이 어우러지는 순간이다.


*


다시 책으로 돌아가 한 문장에서 생각이 많아진다. 


'한때 나는 급진적인 연구자들이 활동하는 불온한 연구실에 소속된 적이 있었는데'. 


이 간단하고 단순한 문장이 지금의 비상계엄 시국이라면 경찰에 잡혀갈 빌미가 될 수도, 어딘가 은밀한 곳에 감금하고 고문을 당할 수도 있는 그런 문장이 아닐까 하는. 음식 얘기에 '불온', '급진'이라는 말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으니 누군가에게 주는 암호나 선동 구호일 수도 있다고 누군가는 생각하지 않으려나, 급기야 스토리를 짜서 사건을 엮고 억류하고 구속하고 재판하고... 혼자 망상을 넓혀간다. 이 모든 것이 작금의 비상계엄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계엄이라는 사태도 그렇지만 당황스럽고도 황당한 의식의 흐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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