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존중하기
큰 조카가 어릴 때, 둘이서 쇼핑을 하다가 조카가 좋아하는 신발을 사 준 적이 있다. 다이얼 운동화였는데 얘가 그 특이한 신발이 좋다고해서 사주고 집에 오니 엄마랑 큰언니가 왜 그런걸 샀냐고 한소리를 했다. 나는 아이의 취향조차 어른의 눈으로 판단하려는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들이받았다. 물론 나도 안다. 애가 좋아한다고 다 허용될 거 같으면 다 떨어진 옷을 입히거나 애를 별종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도 그런 특수 상황이 아니라면 아무리 작은 아이의 개성이라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다. 통제받고 다름을 거부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마다 생각하고 선호하는 바가 다른데 그걸 평범한 시선으로 시비를 따지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사실 일반, 대중, 정상, 표준이란 단어는 내가 그닥 좋아하는 말이 아니다. 객관적 기준이 없는 것을 다수가 따른다고 그것이 정답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답답해보이기 때문이다. 조직을 잘 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정의내려야하는 일도 많지만, 그러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남이 함부로 입대는 일은 거만과 오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어린 시절 할배의 통제가 싫어 맨날 반항을 했다고 하셨다. 자신이 그걸 싫어하니 처자식에게도 자기 방식대로 지시한 적이 없으셨다. 자기 말이 맞다고 우긴 적이 없으시고 연세가 드셔도 다양성을 인정해주시며 온화하게 대화로 풀어가신다. 그리고 내 자체가 좋으면 남도 나처럼 봐지게 된다고 하셨다. 그건 나를 존중하면 남의 생각도 존중하게 된다는 말과 같이 들렸다. 자존감이 엄청나시고 긍정적이시며 겁이 없으시기에 하실 수 있는 말씀이시다.
통제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통제는 대체로 불안한 감정 상태를 가진 사람에게서 잘 드러나는데, 그들은 자기 예상대로 일이 돌아가야 안정감을 느끼게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통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안정감을 추구한다는 것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나 귀찮음이 깔려있다는 뜻이다. 권력욕이 높은 사람이 알고보면 나약한 이유도, 내면이 단단한 사람은 굳이 통제력과 방어력을 따로 갖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유연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사람은 통제하고 통제받는 일을 꺼린다. 그리고 진짜 강한 사람은 드센 사람이 아니라 부드러운 사람이며 그런 사람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어떤 환경이라도 상관없다는 마인드를 지닌 사람이다. 그들의 선택은 언제나 탁월하며 그들이야말로 무외보시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