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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자유리 May 15. 2019

[진짜 자기계발] 내면의 어린아이를 찾아서

인간은 이성적인 척을 하는 동물이다.



# 이성적인 척 애쓰는. 그러나 감정투성인. 





인간은 이성적 동물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오랜 시간 학자와 연구자들의 이론은 한결 같았습니다.

사고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동물인 인간은 포유류의 최상층을 차지할 수 있었고, 불의 발견을 통해 연한 고기를 섭취하면서 생겨난 이마 부위의 빈공간이라는 우연적인 결과가 만들어낸 전두엽은 인간을 신과같은 위치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좋습니다. 사람은 사고하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고도화된 과정의 안정된 문명의 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안정된 이 사회에서 정작 인간은 자유롭게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지요. 부부싸움을 마치고 회사로 나가는 아파트 복도에서 씩씩거리는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다 우연히 만난 가까운 이웃을 보면서 우리는 감정을 귀신같이 속일 수 있습니다. 

함께 있기가 밋밋해지다못해 건조해진 오래된 연인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바라보지만 진짜 보지 않는 느낌을 무미건조한 옅은 미소로도 언제든 감출 수 있습니다. 

나를 괴롭히기만 하는 회색빛 직장상사들이 가득한 회사에서도 우리는 휴가지 속 아이같은 미소로 그들을 자연스러운척 응대 할 수 있습니다. 

불안, 초조, 두려움, 외로움이라는 이면에서 일어나는 수 많은 감정은 교통사고 사망자수 0명이라는 삼거리 표지판같이 너무나도 안전한 인간 문명의 중심에서는 정작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인간은 어쩌면 너무나도 쓸데없는 두렵움, 불안, 외로움을 수시로 느낍니다. 

조상이 내게 물려준 이 감정의 덩어리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오늘도 나는 이성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만큼, 무거운 하루가 내게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인간은 왜 이렇게 불필요한 감정들을 느껴야만 하는 것일까요?



수십만년전 인류는 말이죠. 언제나 긴장의 끈을 놓지않은채 살아야만 했습니다. 짚풀을 덮고, 잠을 자다가 독거미가 와서 아이를 뭅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2명의 어린 자식이 보라빛 얼굴을 한채, 하얀 토를 입에 머물고 허망하게 죽어있습니다. 어미는 사지가 잘려나갈듯한 슬픔을 딛고, 다시 아이를 낳아야만 합니다. 10개월의 인고를 넘어 다시 자식을 낳았지만, 이번에는 사냥을 나간 남자들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남은 남자들은 아이의 안전을 완전히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엄마는 언제나 불안 합니다. 맹수와 독이 담긴 곤충은 물론 부족에 있는 건강한 남자로부터 아이를 지켜야하기 때문이죠. 불안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여자의 감수성과 쓸데없는 걱정은 이런 사실에서 피어난 것입니다.

( 그러니 엄마와 아내의 잔소리를 조금 더 사랑으로 봐주시길 바라며. )

철저하게 보존된 인간의 유전자는 시간을 거치며 우리에게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축적이 되어왔습니다. 

회사를 나갈때 입는 양복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기위해 쓰는 스마트폰도 모두 인류의 유전자와는 별개의 것들입니다. 우리는 그저 사냥을 하러 손도끼를 들고 나가는 핏빛 원시인의 바로 그 상태에서 우버를 타고, 유튜브를 보며, 전자기기를 들고 있을 뿐입니다. 


행복의 기원을 쓴 서은국 교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 전체를 1년의 시간으로 보았을때 문명이 만들어진 시간은 고작 2시간 남짓이라고 합니다. 12월 31일 밤 10시를 지나가는 꼴인것이지요. 그러니 우리의 몸은 인류 날것의 그대로를 전수받은채, 매일매일 어쩌면 이제는 생존에 쓸데없어져버린 부정의 감정을 외면한채 살아가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 마포대교 자살은 이유가 있다.



혹시 마포대교의 자살방지 표지판을 들어보신적이 있으실거에요.



밥은 먹었니?

나이들면.

많이 힘들었구나

말 안해도 알아.



보기만 해도 따뜻한 마포대교의 표지말이 자살방지에 효과가 있는 듯 하지만,

정작 마포대교는 자살자의 수가 2012년 15건이었던 게 2013년 93건, 2014년 184건으로 큰 폭으로 늘었습니다. 2014년 한강 전체 다리에서 있었던 투신시도가 396건이었다고 하니, 그 절반 정도가 마포대교에서 일어난 셈입니다. 



자살의 방지를 위해 만든 대교에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변수는 마포대교의 표지판이 아니었습니다.

마포대교가 자살방지로 유명해지자 인간은 자살의 순간마저도 

유명한 명소에서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충동적인 자살의 순간마저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자살을 결심한 많은 이들이 자살의 현장에서 어쩌면 더 높은 확률의 구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독한 외로움.

자살의 장소마저도 인간은 교묘한 감정의 시스템의 원리를 따른 것입니다.


사실 자살은 사람들의 순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주인공 안나가 자살의 직전 평범한 오전의 순간까지 자신의 삶을 평범하게 살아감을 그립니다. 그러다 불현듯 찾아오는 자살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는 허무한 죽음을 결행하게 됩니다. 평범한 하루의 일상에 불현듯 찾아오는 안나의 죽음에 담긴 그의 냉철한 시선이 제 무릎을 치게 만듭니다. 이는 비단코 소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실 우리의 중요한 판단은 이성적으로 하는 듯 보이지만 감정의 요소로 인해서 결정되는 것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죠.

마포대교에 구조된 대부분의 사람이 사실은 자살을 시행하지 못한것처럼 말이죠.




# 예쁜 구두





저는 한번 고액의 강연을 고민도 하지 않고 현장에서 결제한적이 있었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제가 고액의 강연을 확신하게 된 우스운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어처구니 없게 들리시겠지만) 그 여성 강연자가 신은 매우 세련되고 예쁜 구두였습니다. 

제가 구두성애자(?)라서가 아닙니다. 빛나는 강연자의 구두를 보며, '이 정도의 구두를 신은 사람이라면 분명 내가 찾는 사람이 맞을거야'라고 저는 무의식적으로 확신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우스운 이야기가 과연 저 만의 이야기일까요? 

사람들은 감성을 숨긴채 자신이 매우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포장합니다. 

하지만 정작 사람의 대부분의 판단은 이성이 아닌 감정이 시키는 것입니다. 

기분이 나쁘면 이해 할 수 없게 더 많은 물건을 구매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구매 이유를 정말 필요한 시기였다고 귀신같이 합리화를 합니다. 

전혀 살 생각이 없던 티비속에 나오는 하얀 운동화를 보면서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구매하고,

낡은 신발을 애써 꺼내보기도 합니다.



사실 이것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행동입니다.

감정을 주관하는 전두엽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사람의 판단을 관장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전두엽에 이상이 생긴 사람들은 여러가지 물건을 놓고, 이것과 저것을 쉽게 구분합니다. 

인지력은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정작 물건을 선택해야 할때 그들은 선택 장애가 옵니다. 감정이 판단을 주관하기에 생기는 문제인것이죠. 

사실 그래서 우리는 비논리적인 결정을 취하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결정을 설명하는데 프로가 되어간것입니다. 예쁜구두가 저의 결정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듣고싶어하는 사람은 없을테니깐요.





# 이중잣대.






문제는 우리가 이 중요한 감정에 대해서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감정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거야.' 

이런 이야기 들어보신적 있으신가요? 

'김 본부장은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사람이야. 프로답지 못해.' 

이런 말 누군가에게 하신적은 없으신가요?

 


사실 김 본부장이 부정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프로의 세계를 뛰는 입장에서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사실과 감정이 내 삶에 중요하지않다는 것은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감정은 중요하지 않기에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된다고 인지합니다. 

그래서 정작 자신의 삶이 감정때문에 무너지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하찮게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삶은 돈이 부족하고, 명예가 부족해서, 우울하고 힘든것이라고 쉽게 속단하게 됩니다.

자신은 약한 존재이고, 그래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쓰잘데기 없는 감정나부랭이는 느끼지도 못하는 신체를만들기위해 애꿎은 자기계발을 하는 사람들을 저는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봐야 했습니다.

건강한 사회에서 건강한 성공을 한다면 성공은 분명 감정을 건강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건강하지 않은 사회에서 인내 가득한 성공을 한 당신이라면 반드시 현재의 내 감정을 의심해보셔야 합니다. 



진짜가 아닌 가짜의 감정이 드러나는 것은 아닌지, 

오랫동안 나를 규정하며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나는 진짜 내 몸을 가지고 내 감정을 가지고 이 순간을 잘 살아가고 있는지, 

사회적 지위와 역할, 나이, 환경에 속박되지 않은채 

진짜 나를 한번 깊게 돌아보시기를 당부드립니다.





# 감정과 행복 그리고 자유.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간은 말이죠. 이성적인 척을 진짜 잘 하는 감정의 동물입니다.

감정을 세련되게 느끼기위해서 오히려 이성을 이용하는 동물이 더 정확한 표현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구를 만나든 이렇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당신이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지,

당신이 부자인지 가난한지,

당신이 젊은 사람인지 아닌지,

당신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당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건 제게 전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지금 당신의 내면의 어린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제게는 그것만이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저는 그래서 누구를 만나도 평등하고 동일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의 아이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아이는 과거의 상처속에서 세상이 두려워 자신을 꽁꽁 숨긴채, 

가슴 한켠 속에 단칸방을 빌려 지냅니다. 

우리는 오랜시간동안 그 아이를 외면하고 방치합니다. 

독거미가 없어진 현대사회에서 생존에 도움이 되지않는 이유로 

우리는 그 불쌍한 아이를 버리고 살았습니다.






행복을 꿈꾸고 자유를 꿈꾸시나요?

무언가를 이루면 그 꿈이 나에게 행복과 자유를 줄 것 같진 않으신가요?

그래서 열심히만 살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행복과 자유는 복권같은 성공의 강도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소소히 들어오는 작은 햇살, 일랑이는 바람결에 청록한 풀내음새 하나를 더 자주 맞이할수 있는 빈도로 우리는 더 자유롭고 더 행복해지는 법입니다. 

그렇듯 너무나도 어려워만 보이는 순간을 살아간다는 것은 

내 감정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나의 건강한 감정이 내 삶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마법이 되어줄 것입니다.

내 안의 어린아이를 찾아보세요. 그리고 오늘은 한번 오랫동안 잠겨진 그 방의 방문에 문을 두들겨보세요.

아이는 반드시 당신의 손을 잡아줄것이니깐요.







<작가의 말>


이제부터 저는 이 글을 통해서 독자분들이 내면의 아이에 대한 성장을 통한 

진짜 자기계발의 비법을 조금씩 공유하려고 합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나의 그대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삶에 진짜 감정들로 채워 갈 수 있는 

용기의 계기가 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내 안의 어린아이를 찾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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