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수업시간에 내 글을 팔고 있다ㅋㅋ 계기는 조금 복합적이다. 수행평가로 뭘 할지에 대한 고민과 학기 초니 수업 때 조금 놀고 싶은 마음과 처음 오롯이 혼자 맡게 된 과목에 대한 약간의 책임감과 초조함이 뒤섞였다. 교육자적 사명감 같은 걸 내세우자니 진작 겨울방학 때 수업 준비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 부닥칠 거고, 그렇다고 '날로 먹겠습니다' 하기에는 저 밑바닥에 일말의 양심이 교육적인 걸 하라고 꾸짖어주고 있으니(다행히도), 새 학기 첫날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수업 뭐하지, 평가 뭐하지를 고민하는 주제면서도 뭔가 교육적인 것을 해야 한다는 욕심은 있어 오티 주가 끝날 무렵에야 비로소 떠오른 것이 저 깜찍한 아이디어이고, 나와버린 게 이런 글인 것이다. 나란 사람에게 책임감이란 눈앞에 닥칠 때까지 애써 외면하다가 수면 위에 떠올라서야 비로소 짊어지려 하는 것이다. 그래도 바로 앞에 떠오른 책임마저 두 눈 꼭 감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꽤 많아 보이니 '이만하면 평균이오' 하려는 자기 보호의 충동은 조금 애교로 봐줄 수 있지 않을까. 변명 하나를 더 보태자면 이게 다 백석 때문이기도 하다. 하도 갈매나무 갈매나무 거리다보니 내 삶마저 정말 누가 굴려가는 대로 혹은 굴려지는대로 가는 것이다.
그래 자기합리화를 좀 더 해보자면 모든 일의 시작은 저 계기들 중 가장 후자의 것에서부터였다. 교직 3년차 만에 드디어 나는 심화국어 두 개 반을 덜렁 혼자 맡게 됐다. 선배 선생님들이 시키신 걸 '네 알겠습니다', '허허 좋네요' 하고 따를 뿐이었던 내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홀로 책임져야 할 시기가 마침내 도래한 것이다. 26년 한국 교육이 몸속 곳곳 새겨준 수동성 덕분에 여전히 남이 시킨 일 하는 게 마음이 가장 편하지만, 그래도 막상 주도적으로 어떤 일을 다 끝내고 나면 기는 쭉 빨렸더라도 그 기쁨과 뿌듯함이 무엇인지는 느낀다. 학생회를 할 때도 밴드를 할 때도 혼자 무언가를 만들어 간다는 게 너무 무서웠지만 또 재밌었다. 피할 때까지 피하다가 더 못피하게 될 때는 어찌어찌 즐기는 게(비록 그게 클럽 처음 가본 사람이 간신히 박자만 맞춰서 추는 어색한 어깨춤 같은 것일지언정) 내 성향이지 싶다. 심화국어 수업 역시 하는 동안은 내내 긴장되고 두렵겠지만 다 끝나고 났을 때 그래도 좋았었네 하며 글 하나쯤은 나오지 않을까.
아무튼 처음 혼자 하는 수업이니 책임과 불안을 느끼며 개학 날까지 놀다가 그저께(2022년 3월 9일, 대선일) 생각난 아이디어가 내 글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글쓰기를 하고 싶었고 물꼬방에서 힌트를 얻어 '생활글쓰기'를 하고 싶었는데, 도입 활동으로 이슬아의 글을 가져온 물꼬방 자료를 보며 이거 이슬아 글 대신에 내 글을 넣어도 되는 거 아니야? 하는 발칙한 생각이 들었다. 내 글이 이슬아에 필적할 수준이라는 건방진 마음은 없었고 적어도 우리 학교 애들한테만큼은 이슬아 씨 글보다는 내 글이 더 잘 먹힐 거라는 자신감은 있었다. 왜냐하면 나도 유명 작가의 어떤 글보다 우리 학교 애들 수행평가 글이 더 재밌었기 때문이다. 본디 아는 사람의 글이 가장 재밌는 법이다. 남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사는지 들여다보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다. 그 관음증을 이용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어디가서 내 얘기를 털어놓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욕구를 이용하는 것이다!! 한 학기가 지났을 때 아이들이 저마다의 대나무숲을 하나씩 가졌으면 좋겠다. 이리하여 글쓰기 수업에서 교사가 글쓰기의 전범이 된다는 교육적 바람직함을 획득하면서도, 옛날에 썼던 글 중에 몇 편을 추려서 가져오기만 하면 되니 수업 준비의 부담은 덜고, 아이들은 조금 더 초롱해진 눈으로 내 수업을 듣게 되니 날로 먹는 거 같지만 교육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한 차시 수업이 완성된 것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아다리가 맞았다고 표현하나 보다.
그래서 내가 수업 때 사용한, 블로그 깊숙이 있던 15년, 16년도의 글들은 다음과 같다. 다시 보니 이런 일이 있었구나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신기했다. 그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허세와 현학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 퇴고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아 문장을 다듬고 어휘를 고쳐 아이들에게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