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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레이씨 Oct 20. 2020

최애가 우리 지역에 온다고?

지방에서 보낸 학창 시절

 물 좋고 공기 좋은 곳. 이곳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고층 건물보다는 산이 더 많이 보이고, 지하철은 무슨 버스와 택시면 온 동네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곳이 내가 사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내 학창 시절은 아주 단조로웠다. 학교 앞은 1차선 도로에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학교를 나와 20분은 걸어가야 편의점 하나가 나왔다. 우리 지역의 모든 고등학교가 이런 위치에 있는 건 아니었지만 우리 학교가 동면읍리 중에서도 '리'에 있어서 유독 심했다. 이런 환경에서 일탈은 생각해볼 틈도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시점 공부와 입시에 쩌들어 있던 우리에게 한줄기 빛 같은 존재가 등장했다. 바로 아이돌 그룹 엑소. 9n년생 나와 동년배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과장을 조금 보태서 이 시절 전교생의 절반은 엑소의 팬이었다. 친구들끼리 만나도 엑소 누구가 오늘 뭘 했다더라, 이번에 새로 찍은 화보 봤냐 등 온통 그들 이야기뿐이었다. 동아리 모임을 가면 선배들은 "너는 엑소 '누구' 좋아해?”라고 물었다. 허 참, “너 엑소 좋아해?”도 아닌 "누구 좋아해?"라니. 이건 ‘너도 당연히 엑소 좋아할 거고, 거기서 누가 최애야?’라는 우리만의 암묵적인 조건이 붙어있는 질문이었다. 이 정도로 그 당시 우리에게 엑소라는 그룹은 만인의 최애였다.


 야 서울 사는 애들은 좋겠다. 우리는 한번 보러 가려면 버스 타고 지하철도 타고 가야 하는데.. 거기는 맘만 먹으면 공방도 갈 수 있고, 콘서트도 가고, 팬싸도 당첨만 되면 갈 수 있잖아.


 점심시간마다 모니터로 최애의 무대를 돌려보며 하나같이 말하는 건 '실제로 보고 싶다'였다. 물론 팬사인회나 공개 방송에 가서 최애를 본다는 것 자체가 경쟁률이 세서 간다고 갈 수 있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무조건 가고 싶다!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최애가 우리 지역에 온다는 소문이 학교에 퍼졌다. “야.. 우리 지역에 엑소가 온대..” 우리는 무슨 소리냐며 최애가 여길 왜 오냐고 헛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확인해보니 당시 엑소가 홍보대사로 있던 기관에서 팬사인회를 진행하는 것이었고, 정말로 최애가 우리 지역에 오는 것이었다.

 학교는 난리가 났다. 학교를 째고서라도 가겠다는 애들이 수두룩했다. 간이 콩알만 했던 나는 학교를 빠진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라 가고 싶다는 말만 해댈 뿐이었지만 친구는 이 기회를 놓치면 최애가 우리 지역에 올 일은 향후 10년간 없기 때문에 방법을 써야 한다고 했다. 너무 진지한 친구가 웃기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 친구를 쉽게 말릴 순 없었다. 실제로 자주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었고, 서울로 최애를 보러 가려면 왕복 교통비, 도로에서 버려야 할 시간 등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이번 팬사인회가 매우 소중했다.

 결국 친구는 팬사인회 응모에 성공했고, 팬사인회 당일 정규 수업을 마치고 병원에 가야 한다는 핑계로 보충수업을 빼고 최애를 만나러 갔다. 다음날 학교에서는 최애가 나를 보고 웃어줬다, 실물 한번 더 보고 싶다 등 팬싸 후일담으로 가득했고 우리는 더욱 엑소를 사랑하게 되었다.


 성인이 되고 난 지금은 아이돌 그룹에 대한 애정이 식었지만 가끔 팬사인회 아이돌이라며 올라오는 영상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사실 향후 10년간 우리 지역에 최애가 올리 없다는 친구의 말은 틀렸다. 그 팬사인회 이후 엑소는 모델로 있는 의류 브랜드 사인회차 한 번 더 방문했다. 하지만 그것도 벌써 5년 전 일이니 친구의 말이 아주 틀린 건 또 아닌 것 같다.

 아이돌 행사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콘서트나 영화배우들의 무대인사를 볼 때면 지방에 있는 팬들도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역시 그때 친구를 따라 팬싸인회에 갔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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