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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Jul 10. 2020

실패는 주인공만 하는 거 아닌가요?











‘지원자가 겪은 가장 큰 시련과 그것의 극복과정에 대해 쓰시오’라는 자소서 문항 밑에서 흰 바탕의 커서는 움직이지 않고 깜빡이기를 반복했다. 가장 큰 시련이라, 사실 나에게 가장 큰 시련은 지금이다. 꿈을 위해 스펙도 쌓고 신문을 들여다보며 글을 쓰지만, 결코 가까워지지 않는 내 꿈을 바라보는 것이, 또 그런 나를 바라보는 부모님을 바라보는 것이 내겐 가장 큰 시련이었다.


커서가 깜빡거리며 쓰이기를 기다리는 빈 화면이 내 모습 같았다. 다시 맨 첫 문항으로 돌아갔다. ‘기자가 되고 싶은 동기를 쓰시오.’ 다시금 기자가 되려 하는 이유를 떠올린다. 진부하지만 당연하게도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딱히 특별한걸 만들어낼 손재주는 없었지만, 손을 바삐 움직이며 밀리지 않고 꾸준히 일기를 쓰곤했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에게 잘 썼다는 칭찬을 받기도 한다.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생각보다 크게 전해진 그 칭찬의 말 때문일 수도 혹은, 글을 쓰면서 내 감정과 생각이 더 명확해진다는 것을 느낀 후일 수도 있다. 어쨌든 언젠가부터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특별한 능력이나 도구도 필요하지 않다. 오로지 나로부터 비롯되는 작은 낱말과 단어, 그리고 문장들이 서로 이루어져 하나의 글이 된다. 내 생각 깊숙이, 나조차도 몰랐던, 잘 들여다보지 않았던 생각과 감정들이 나만의 언어로 적히기 시작한다. 그런 글이 나와 전혀 다른 이들의 마음도 사로잡고 혹은 위로를 주기도 있다. 이렇게 엄청난 일을 이토록 조용히 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내가 느끼는 것은 물론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 역시 글로 간직하고 싶었고, 움직이지 않는 글로 사람들을, 더 큰 마음들을 움직이고 싶었다. 내 손으로 써 내려간 글이 더 좋은 변화의 원동력이 되기를 바랐다. 어린 눈으로 보기에도 이 세상은 변화해야 할 것이 참 많았고, 그 변화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로 말이다. 그래서 기자를 꿈꿨다. 꼭 기자가 아니어도 되지만, 가장 신속하게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언제쯤 나는 내 소개글이 아닌 우리 사회 단면의 소개글을 써 내려갈까. 아득해 보이지만, 아득하기에 어쩌면 바로 앞에 성큼 다가와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다시 펜을 들었다.


수없이 쓴 자기소개서와 수없이 본  필기시험, 그리고 수많은 탈락으로 이루어져 지금의 내가 되었다. 수많은 탈락이 있기 전의 나와 달라진 점은 꿈에 대해 공허해진 눈빛과 감정이었다. 오늘도 지겹게 글을 쓰고 기사를 본 것이 정말 기자가 되고 싶어서인지, 그동안 해온 것이 아까워서인지 알 수 없을 무렵, 나는 기자 준비를 그만뒀다. 잠들기 전 똑같은 내일이 올 것에 괴로워하고, 전혀 다른 직무에 기웃거리고, 다른 직무에 취업한 친구를 취업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러워했다. 이미 내 마음은 처음 기자를 준비했던 마음에서 멀리 떠나 있었다. 내가 떠나 보낸것인지, 그것이 나를 떠나 보낸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기자 외에는 무엇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완전히 접기까지 한참을 질질 끌어야했다.


생각보다 홀가분했다. 기자 준비를 접었다고 말하는데 가슴 한쪽이 아리긴 했지만. 꿈을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었던 것이지 그 꿈이 밉진 않았다. 결국 기자가 되지 못했으니 난 실패한 걸까. 문득 떠오른 실패라는 단어가 무척 낯설다. 입 밖으로 꺼내본 적 없는 단어였다. 실패라고 하니, 자괴감도 들지만 설핏 웃음도 났다. 실패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내가 참 크고 대단한 일을 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그런 일을 내가 해온 것이니까 말이다. 이번을 제외하고, 살면서 실패라고 말할만한 것이 없었다. 그저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공부를 하라면 했고 좋은 점수를 받으라면 받았고 대학을 들어가라면 들어갔다. 하라는 일을 하니 칭찬과 지지도 따라왔다. 그렇게 살아온 내가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닌, 스스로를 시켜서 노력했다. 남들의 지지 없이, 답이 정해지지 않은 막막한 길을 재촉했다. 수없이 탈락을 맛보고 나서도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어려서 본 위인전에서는 훌륭한 사람들이 수많은 처절한 실패를 딛고 일어섰다. 결국, 보시다시피 위인전에 실릴 만큼 성공했다. 시키는 대로 탄탄대로를 걸어온 나에게 그런 실패는 여태껏 없었다. 그리고 처음 마주했다. 이제 나도 나의 실패를 딛고 일어설 차례였다. 어쩌면 그다음은 성공일지 모르겠다. 비로소 내 삶의 주인공이 나 인 것 같았다. 나는 실패했다. 씁쓸한 말이지만, 이 말은 내가 원했던 기자를 ‘지금’ 되지 못했다는 것 밖에 의미하지 않는다. 그 이후의 모습은 여전히 나에게 달렸다. 실패했음에도 내 삶은 나로 인해 움직인다. 실패도 그것만큼은 빼앗아 갈 수 없다.  


물론 여전히 두렵다. 다시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는데, 찾을 수 있을까. 그것보다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해서, 결국 대용품을 찾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토록 원하고, 노력했던 일에도 실패했다면 다른 일에는 더 실패하기 쉽지 않을까.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생각의 끝에서 나는 다시 일어서야 한다. 이전에 했던 것보다 더 큰 노력이 필요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안 하려는 내 자신을 마주해야 한다. 더 좁고 안전한 선택을 하려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더 두려운 건, 나 대신 그 실패가 나의 모든 일을 지배하는 것이다.


내가 되고 싶은 건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실패도 해본 사람이니까. 호호 할머니가 되면 지금의 나와 같은 나이의 사람들에게 조언이랍시고 한마디 할 수 있지 않을까. 좋아하는 일에 뛰어들어! 나는 비록 실패했지만 봐라 지금 내 모습이 실패한 사람처럼 보이니? 기껏해야 실패해본 사람이 되는 거야. 그 정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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