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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범김회장 Sep 29. 2020

퇴사, 인생을 쌓음

직업은 숭고하고 직장은 많다.

대학 3학년을 마칠 무렵, 학교 잔디밭에 엉덩이 걸치고 무릎을 가슴으로 끌어올린 채 서너 명의 친구들과 함께 한숨이 땅을 파고들 만큼 고민을 늘어놓는다.

"나는 공무원 학원 등록했어."

"랩실 가야지..."

"교직이수하고 있으니 중학교로 가고 싶어."

"4학년 마치고 생각할래;;;"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던 나와 친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했다.

나는 휴학을 결정하고 추웠던 12월부터 공무원 학원을 등록 후 점심 값을 아끼려 1000원 하던 김밥 한 줄 만 사서 열심히 다녔다. 그 사이 운전면허도 따고 이것저것 취업을 위해 준비하고 있을 무렵 어느덧 여름이 다가왔다.

'6개월 바짝 공부해도 합격 못할 거면 그냥 포기하자.'

6개월 뒤 한 번의 시험을 치렀고, 5천 원을 내고 수험표를 받고 치른 시험은 도저히 아무것도 모르겠는 문제들이었다. 결과는 당연히 최악의 성적이었다.

아르바이트나 할 겸 잡코리아 검색을 하던 중 농협 6급 공채시험 공고가 떴고, 대학 졸업 조건이 아닌 고졸자격으로 응시 가능했기에 1차에 서류를 내고 2차 시험도 합격한 후 3차 면접도 순조롭게 4차 신체검사까지 모두 미끄러지듯 통과했다.

비록, 학교는 마치지 못했지만, 23살에 취업을 했다는 자신감에 학업은 자연스레 포기가 되었고, 싱그러운 맘으로 첫 출근을 했던 기억이 있다.

모든 직장생활은 그 조직만의 분위기와 문화가 있듯, 농협이라는 공간 역시 나에겐 충격이면서 시간이 지남에 적응되어가는 인간의 어두운 면모를 느꼈다.

좁은 데스크 앞 전산 컴퓨터와 지폐 세는 기계, 동전 기계에 쌓여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가고 투명했던 피부는 누렇게 들떠 못난이로 변해갔다.

첫 마음은 어느덧 사라졌고, 옆자리 직원과 뒷자리 과장의 존재만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직장 생활에 '나'는 사라지고 있었다. 가식적인 웃음과 진솔하지 못한 태도, 그리고 내면의 가치관과 나의 다듬어지지 않은 인성이 부딪히면서 괴로운 시간을 보내며 3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나는 퇴사를 결정하게 된다.

한 때, 오피스 와이프라는 수식어도 있었듯이, 직장 안에서 서로 눈이 맞는 유부남 유부녀들의 꼴사나운 모습과, 심심찮게 건네는 희롱하는 말들, 어린 나이기 때문에 비굴해져야 하는 상황이 과연 그곳 만의 조직생활이었을까.  

나는 이직을 결심했고, 포기했던 학업에 대한 열망이 끌어 오르고 남은 1년을 마치고 싶었다.

'내 인생에서 심리학을 어디에 써먹을까, 공무원 준비했던 약간의 지식과 농협 근무생활의 경험은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나는 어른들의 이기심과 배려 없음에 회의감과 두려움을 가득 안고 도망치 듯 퇴사를 했다.

03학번으로 입학했던 나는 07학번을 달고 재입학했고, 4학년을 모두 마친 뒤 뿌듯한 졸업식을 했다.

오 0기, 교 0, kt0g, 등 입사지원서를 넣고 있는 무렵 2011년 일본 대지진이 일어나 쓰나미와 해일로 동일본 전역이 원전을 포함해 오징어 먹물 색으로 엉망이 되어가는 모습을 뉴스로 접하게 되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다.

'기업이나, 회사나, 건물이나 번듯하게 갖춘 모든 것도, 게다가 목숨도 한순간에 사라지네.'

이왕이면, 인생을 이기적인 삶이 아닌 배려있고, 사랑하며, 도우며 사는 보람된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는 것이 가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나 자신의 안위와 마음의 편안함을 추구하려 더 나은 것을 선택하려 했지만,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도 나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세월이 지나니 대지진 사건도 잊혀 가고 빼앗긴 목숨도 숫자로만 표기되는 남의 일처럼 되어버렸지만

잊지 않으려 애쓰며 되새김하며 사는 나는 누군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애석한 눈길로 바라볼지 몰라도

누군가가 필요로 한다면 기꺼이 손 내밀어 주는 낮은 자리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프다.

내가 퇴사를 결심하지 않았다면 깨닫지 못했을 것과, 또한 지금껏 직장생활을 했다면 누릴 수 있는 것을 포기함으로 인생에서 선택의 순간이 후회로 남을지 몰라도 나에게 경험의 값어치로 천천히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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