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원의 유서 - 58화 -
2021년 08월 06일 00:58
어제 아파트로 배달을 가는 길에 단지 내 도로 한 복판에서 여러 명이 릴 형으로 되어있는 전선 콘센트를 감고 있었는데 배달을 가려면 일방통행인 그 도로를 지나쳐야 하기 때문에 조심해서 피해 가려고 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전선을 감고 있는 사람이 아닌 전선을 잘 감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른 한 사람이 전선을 확 당겼다. 그 전선이 오토바이 앞바퀴에 걸려서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도착지점 10m 정도를 남기고 그냥 마저 갔으면 됐는데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뒤 돌아 한마디 했다. “아저씨, 사람이 지나가는데 그걸 확 당기면 되는 일입니까?” 그랬더니 “네가 피해서 가던지. 아니면 멈췄다가 가면 된다 아이가?”라는 어이없는 답변이 들려왔다. “아니, 상식적으로 도로를 점령했으면 누구 하나는 통제를 해야 할 것 아니오? 넘어졌어도 똑같은 말 했을 거요?”라고 소신 있는 발언을 했다. 그랬는데도 옆에 있던 아저씨를 포함한 여러 명이서 나를 몰아세웠다. 그중 옆에 있던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아저씨 한 명이 “에이 씨발 어이 씨발놈아 네가 피해 가던가 멈추든가 했어야지 처 지나가 놓고 지랄이고 아, 씨발 새끼가 진짜.”라는 말과 커다란 고깔을 집어던졌다. 거기 있는 아저씨 두세 명이 반말과 욕설을 했다. 줄을 확 잡아당긴 아저씨와는 결국 내가 먼저 사과해서 화해를 했는데 욕설과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 아저씨는 사라지고 없어서 사과를 받지 못했다. 달리던 앞 차에서 날아온 담배꽁초를 맞고 되레 멱살 잡힌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다. 그때는 담배꽁초를 맞고도 배달 주문이 7건이 밀려 있어서 1분여를 멱살 잡히고도 넘어갔었다. 어제도 마찬가지다. 배달 주문이 3건이 밀려 있어서 배달을 마저 해야만 했다. 그 와중에 줄을 잡아당긴 아저씨의 명찰을 찍어뒀는데 심지어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도 아니고 그 아파트를 대표하는 관리자들이었다. 이번에는 삶의 지혜를 힘껏 발휘해 사과를 정중하게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배달을 모두 완료하고 그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직접 전화를 걸어 소장님을 바꿔달라고 말했고 소장님이 부재중이라 연결된 주임에게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도로를 점령할 것 같으면 누구 하나는 통제를 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줄을 확 당긴 영상이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찍혔고 욕설과 폭력적인 행동을 보인 관리자도 마찬가집니다. 줄을 확 잡아당긴 계장님과는 화해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이 많은 관리자한테는 정식으로 눈을 보고 사과받고 싶습니다. 소장님 오시면 저한테 바로 전화 달라고 전해 주세요.” 이런 어조로 두 번 전화해서 어필했다. “저 여러 명들은 분명 내가 잘못했다는데 내가 잘못했다고요? 영상을 편집해서 보내드릴까요? 얼마나 가관인지 보셔야 알 것 같은데요? 시간 한 시간 드릴 테니 바로 전화 주세요.” 그랬더니 얼마 안 돼서 나이 많은 관리자가 전화 왔다. 고운 말을 쓰며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는데 물었다. “저기요. 저는 동방예의지국에서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다시 한번 더 물어볼게요. 도로를 점령하게 됐을 때 통제하는 게 맞습니까? 아니면 내버려 두고 인명사고를 유도하는 게 맞습니까?”라고 말이다. “아이고, 통제하는 게 맞습니다.”라는 답변을 듣고는 “앞으로도 그러한 상황에서는 통제할 수 있도록 하세요. 배달원 조끼를 입은 제가 만만해 보여서 여러분들은 저를 몰아세웠겠지만 절대 만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겨야 할 게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우기지만 않았어도 그냥 갔을 겁니다. 화를 만들어낸 원인이 있다면 저도 잘못이 있으니 그 부분은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들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결론은 내가 배달원이라 약자처럼 보여 무시당한 거다. 만약 입주민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줄을 고의로 잡아당기지 않았을 거다. 그냥 배달원이 부릉부릉 미워 보였겠지. 나는 이렇게까지 물고 늘어지는 스타일이 아니다. 다만, 이처럼 무시당했을 때는 상식과 지식을 동원해 지근지근 밟아주는 성격이며 주먹질도 제법 잘하는 편이지만 먼저 주먹을 꺼내는 일은 없다. 어쨌든 어른을 공경해야 마땅하나 어른답지 못한 사람에게는 방어적 공격을 할 때도 있다는 말이다. 이 이야기는 그만 하도록 하고 더운 여름철에는 야외에 장시간 활동하는 모든 사람의 정신 상태가 말벌의 벌집 같음으로 어지간하면 배려와 양보로써 지나갈 싸움은 하지 않는 게 이롭다. 왜냐하면 좋게 풀리든 안 좋게 풀리던 열이 올라 불쾌한 기분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데 다른 계절보다 오래 걸리기 때문에 종일 기분이 좋지 않게 된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마음이 넓은 사람이 돼라,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 돼라. 등처럼 한 걸음 물러서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어제의 일로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가능한 한 다툼을 피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지만 만약 다투어야 할 때는 절대 지지 마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