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S/S 컬렉션은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의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015년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구찌 데뷔 컬렉션도 그보다는 충격이 덜 했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바로 1년 뒤, 패션계는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만큼은 아니지만 조금 더 우아한 뉴 웨이브를 차례로 맞이하는데 바로 알버 엘바즈의 Lanvin이었다.
다시 구찌의 이야기를 하자면, 2000년대까지만 해도 구찌는 섹시함을 극도로 추구하는 브랜드였다. 당시 구찌와 이브 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겸임했던 톰 포드는 섹슈얼리티에 굉장히 집착하였는데, 덕분에 구찌의 광고는 여러 차례 선정성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매우 자극적이고 상업적인 톰 포드의 구찌와 이브 생 로랑은 그 어느 때보다 재정적으로 성공적이었지만 이브 생 로랑은 톰 포드가 이끄는 <이브 생 로랑>을 아주 싫어했다고 한다. 이브 생 로랑이 싫어하던 바로 그 <이브 생 로랑> 시절, 톰 포드에게 해고당한 이가 바로 알버 엘바즈이다.
그러나 알버 앨버즈는 2002년 F/W 컬렉션부터 Lanvin의 수석 디자이너라는 기회를 얻는다. 물론 이미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루한 하우스임은 분명했지만 그는 그곳에서 비로소 자신의 취향을 발휘한 컬렉션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마침 사람들은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유행시킨 로우 라이즈 팬츠를 비롯하여 지나친 섹스어필에 다방면에서 지쳐가고 있었고, 패션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엘레강스'한 여성들이 사라진 것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알버 앨버즈는 그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플랫 슈즈, 미디스커트, 검은 리본, 진주 목걸이로 이루어진 룩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굉장히 안정적이면서 우아한 그의 컬렉션은 수석 디자이너로서 성공적인 데뷔로 이어졌고 패션계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2002년 패션계의 스타는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였기 때문에 엘버즈의 훌륭한 컬렉션은 돌풍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렇게 맞이한 2003년 Lanvin S/S 컬렉션은 지금도 나에게 매우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 컬렉션의 사진들을 스타일 닷컴 (지금은 VOGUE.COM으로 통합되었다)에서 보았을 때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옷들이 있을 수 있는지 충격적이었다. 그 당시 Lanvin을 수입하는 백화점이나 셀렉트 샵이 없었기 때문에 이 아름다운 컬렉션을 실제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펐다. 그래서 2005년 어학연수로 뉴욕에 있었을 때 바니스 뉴욕에서 Lanvin의 실물을 영접하고서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기뻤던지. 비록 돈이 없어서 정말 아무것도 구입할 수는 없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언제나 최고의 컬렉션 피스를 최고로 시크하게 소화하던 모델 케이트 모스 역시 바로 위의 쇼 피스를 실제로 입고 파티에 참가하였고 그 이후로도 랑방을 즐겨 입었다. 특히 플랫 슈즈!
지금 보아도 너무도 아름다운 컬렉션이고 이 컬렉션의 드레스 2벌은 훗날 이베이를 통해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다.
2010년의 어린 나님
2003년 컬렉션에서 인사하는 알버 엘버즈
이렇게 해서 Lavin의 가장 성공적인 시대를 연 알버 앨버즈는 2015년까지 랑방의 수석 디자이너로서 패션 트렌드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Lanvin 하우스에서의 마지막은 해고를 당하는 안타까운 결별로 마무리되고 되고 말았다. 아무리 훌륭한 컬렉션을 선보이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정립하고 브랜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매출을 올려도 언제나 새로운 것을 원하는 패션계에서 살아남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가. 하지만 그런 그가 톰 포드로부터 해고를 당한 후 그의 인생을 바꿀 새 기회를 잡았던 것처럼 다시 한번 우아하게 재기하기를 마음속에서 늘 기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