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감각과 권력의 재단
아오 엠에서 아오자이까지, 무엇이 이어지고 무엇이 잘려 나갔는가?
사진 속 여성을 보자. 얇은 천. 등이 드러나 있고, 목 뒤에서 묶였고, 허리는 단순하다. 이 옷은 아오 엠(Ao yếm)이다. 이 장면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이게 북부 옷이라고?"
“이건 완전히 남부, 열대 지방 사람들이 입는 옷처럼 보이는데?”
그 의문은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현대 하노이의 도시 겨울’을 떠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오 엠이 형성된 배경은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도시 하노이의 풍경이 아니라, 그 도시를 떠받치고 있던 홍강 델타의 농경 공동체였다. 하노이 역시 홍강 델타 한가운데 자리한 도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델타는 지리적 구분이 아니라 생활 구조를 뜻한다. 아오 엠은 도시적 미감에서 탄생한 의상이 아니다. 그것은 홍강 델타의 벼농사 마을에서, 제방을 쌓고 논을 돌보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노동 리듬과 몸의 감각 속에서 형성된 옷이었던 것이다.
1. 우리가 오해하는 ‘북부의 겨울’
북부에는 겨울이 있다. 하지만 그건 동북아식 한겨울이 아니다. 평균 10~15도 정도. 실내 난방은 거의 없고, 활동은 여전히 야외 중심이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아오 엠은 겉옷이 아니라, 속옷에 가까운 상의라는 점이다.
지금 사진처럼 단독으로 입은 모습은 여름 노동 장면이거나 민속 재현 장면일 가능성이 크다. 원래는 그 위에 겹쳐 입었다.
2. 그럼 겨울에는 어떻게 입었을까?
북부 전통 여성 복식은 ‘겹침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안쪽에는 아오 엠(Ao yếm)을 입고, 그 위에 아오 뜨 턴( Ao tứ thân, 네 갈래 긴 겉옷)을 입는다. 그리고 어깨에는 숄이나 천을 두른다. 즉 아오 엠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겉옷 아래에 있는 것이다.
북부 전통 복식을 보면 겉옷이 넉넉하고, 길고, 여러 겹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아오 엠 단독 사진만 보면
“남부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실제로는 북부 복식은 레이어 구조를 갖고 있었다.
3. 그럼 왜 그렇게 파였을까?
아오 엠은 단순히 더워서 얇은 것이 아니다. 노동 시 활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젖은 옷이 빨리 마르도록, 가슴을 천으로 단단히 묶어 지지 기능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기능적 디자인이었다.
위의 사진은 그 기능적 옷이 단독으로 드러난 장면일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노출’로 보지만, 원래는 ‘구조’였다.
4. 여기서 권력이 개입한다
아오 엠은 몸의 감각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 남부 권력이 복식을 재설계한다. 긴 상의에 바지 체계. 이것은 국가 질서를 드러내는 형태였다. 몸 중심의 감각 위에 권력의 재단이 덧입혀진 것이다. 이 순간부터 옷은 단순한 생존의 기술이 아니라, 정치의 언어가 되었다.
5. 무엇이 남았고 무엇이 바뀌었는가
여성 복식의 ‘몸 밀착 구조’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달라졌다. 노동의 몸이 상징의 몸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리고 식민지 시기, 서구식 재단 기술이 들어오면서 몸의 선은 더 정교하게 강조되었다. 즉 현대 아오자이는 아오 엠의 직계 후손이라기보다는, 그 감각 위에 권력과 기술이 덧입혀진 결과라 할 수 있겠다.
6. 위 사진(아오 엠, Ao yếm)이 중요한 이유
이 아오 엠 사진은 아오자이의 ‘뿌리’를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무엇을 잃었는지도 보여준다.
'몸이 먼저였던 옷이 언제부터 국가 이미지가 되었는가?'
'노동의 감각은 어디까지 남아 있는가?'
아오자이는 몸의 감각과 권력의 재단이 만난 지점에 서 있다.
이어서 3편에서는 '아오자이는 여성의 자부심인가, 아니면 규범인가?'라는 주제로 전통을 입는다는 것의 두가지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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