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사람들은 왜 사찰을 ‘공원처럼’ 찾을까
어제는 설 당일이었다. 저녁 해질 무렵 숙소에서 내려다 본 사찰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고, 신기해 하는 듯한 나를 보고 오라고 손짓하는 듯 하여 무심결에 자전거에 올라 사찰로 향했다. 도시는 아직도 복숭아꽃과 노란 매화 장식이 남아 있었고, 길거리에는 빨간 봉투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한국에서라면 절에 간다는 건 약간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조용히, 차분히, 예의를 갖추고. 사찰입구에선, 옷 매무새도 한 번 점검하게 된다. 그런데 이곳 사찰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그 긴장이 확 풀렸다. 사찰이 아니라, 마치 마을 공원에 온 듯한 풍경.
입구에는 오토바이가 빼곡히 서 있고, 아이들은 이미 마당을 뛰어다니고 있다. 어머니는 꽃을 들고 사진을 찍고, 아버지는 향을 들고 천천히 걸어간다. 할머니는 작은 봉투를 들고 부처님 앞에 앉는다. 누가 봐도 '종교 행사'라기보다는 '가족 나들이'에 가깝다.
아이들은 불상 앞에서 얌전히 서 있다가도, 금세 옆으로 빠져나가 연못을 구경한다. 연꽃이 피어 있는 연못 주변에는 사진을 찍는 젊은 부부도 있고, 벤치에는 가족들이 앉아 음료를 나눠 마신다. 그 장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신앙'이 아니라 ‘생활’이구나.
기도는 짧고, 머무름은 길다
향을 세 개 피운다. 두 손을 모은다. 짧게 기도한다.
그리고 나면 그저 그곳에서 대부분 오래 머문다. 마당을 걷고, 사진을 찍고, 아이를 안고 앉아 쉰다. 누군가는 벤치에 앉아 한참을 이야기한다. 베트남에서 사찰은 ‘엄숙한 공간’이기 이전에 ‘열려 있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신에게 절을 올리러 오지만, 동시에 서로를 만나러 오기도 한다.
이게 참 흥미롭다. 한국의 사찰이 산속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면, 베트남의 많은 사찰은 도시와 생활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래서 더 자연스럽다.
'왜 이렇게 편안할까?'
몇 가지 이유를 떠올려 본다.
첫째, 불교가 생활 종교에 가깝기 때문이다. 가정마다 작은 제단이 있고, 조상과 부처를 함께 모신다. 사찰은 특별한 날에만 가는 곳이 아니라, 인생의 흐름 속에서 수시로 드나드는 공간이다.
둘째, 사찰이 공동체 공간 역할을 한다. 설이 되면 더 그렇다. 한 해의 복을 비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가족 사진을 남기는 장소다.
셋째, 신앙과 일상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아이들이 뛰어다닌다고 누가 눈치를 주지 않는다. 기도하는 사람 옆에서 웃음소리가 들려도, 그것이 부조화로 느껴지지 않는다. 신성함이 일상 속에 스며 있는 구조다.
소풍 같은 이유
설 사찰 방문은 일종의 의식이지만, 동시에 가족 이벤트다.
'올해도 무사히 지내자'
'사업 잘 되게 해 주세요'
'아이 시험 잘 보게 해 주세요'
그 기도는 간단하다. 그러나 그 기도 뒤에는 반드시 가족의 웃음이 따라온다.
향 냄새, 꽃 향기, 사람들 웃음소리, 오토바이 소리. 이 모든 것이 섞여 하나의 풍경이 된다. 나는 그 마당 한쪽에서 그 장면을 한참 바라봤다. 누군가는 진지하게 기도하고, 누군가는 셀카를 찍고, 누군가는 아이 손을 잡고 연못을 본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이 어색하지 않다.
새해의 사찰은 ‘기도’보다 ‘확인’에 가깝다. 이곳 사람들에게 새해 사찰 방문은 무언가를 얻기 위한 행위라기보다는 '우리는 함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처럼 보였다. 가족이 모두 모였다는 것. 부모가 아직 건강하다는 것. 아이들이 뛰어다닐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이미 복이라는 듯한 표정. 그래서 이 풍경은 엄숙하지 않고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