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다.
고작 한 문장 가지고 저마다 다르게 해석한다. 누구에게는 '시작만 해도 이미 반이나 간 것이나 다름없다'는 긍정 어린 말이다. 다른 이는 시작해봐야 고작 반밖에 못 간다는 자조 어린 메시지로 쓴다. 내게는 어떨까?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말 그대로 딱 반만큼만 가게 해준다. 시작 버튼은 그런 존재다. 누르지 않으면 절대 그 여정에 뛰어들 수 없지만, 시작 하나 눌렀다고 만사형통도 되지 않는.
그런데 이상하다. 대체 어느 시점을 시작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나는 이 글을 언제 쓰기 시작했을까? 글을 기록한 시점은 발행을 누른 시간에 머무른다. 하지만 아무도 발행 시점을 시작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블로그 글쓰기 창에 자판을 처음 누른 순간이 시작일까? 아니면 블로그에 로그인한 순간이 시작일까? 그 이전에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일까?
왜 이런 아이러니가 발생할까? 인간의 사고체계가 불연속적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연속적으로 흐르지만 우리는 끊어서 생각한다. 우리가 떠올리는 과거는 언제나 특정 시점이다. 어제 저녁에 불고기 덮밥을 먹었다고 기억하지, 그 연속적인 흐름을 모두 기억하지 않는다. 이 글을 부인하고 있는 당신이 떠올리는 시퀀스조차 불연속의 집합일 뿐이다.
지난주에 사업자를 등록했다. 아직 법인은 아니지만, 서류상으로 첫발을 뗐다는 점에서 시작 버튼을 누른 셈이다. 이거 하나 했다고 절반을 한 건가? 처음으로 창업을 꿈꾸기 시작한 게 18년 말이었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칠 즈음이었다. 일상을 기록해놓는 네이버 메모에 '사업', '창업'이라는 키워드가 그때부터 남아있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버튼을 누르기까지 약 2년 반의 기다림이 있었다. 대학원에 온 이후, 창업 커뮤니티를 꾸리겠다고 한 달가량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엎은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약 1년 반이 지났다. 그때 일을 계기로 친해진 친구들과 창업팀을 꾸렸다. 7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아이템도 4번이나 바뀌었다. 교내 창업 경진대회에 나갔다. 2개월이 지났다.
고작 시작 한 번 했다는 그 자체로 반을 가는 게 아니다. 고작을 바라보는 순간에는 이게 1이냐 0이냐 반이냐 따위의 불연속적인 양으로 점쳐진다. 하지만 그 고작이 있기까지 수없이 연속적인 사건의 집합은 우리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시작 하나 했다고 완결을 맺을 수는 없지만 시작 하나 하기까지의 과정은 고작이 아니다. 그래서 시작하면 대략 반만큼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