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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월매 Jun 17. 2022

마지막 모유수유 전날 밤

샴페인과 단유

몇달전 나는 산부인과가 아닌 코로나 격리병동에서 아기를 낳았다. 세상에 처음 나온 순간 엄마 품에 안겨보지도 못한 아가는 간호사 선생님에게 안긴채로 엄마와 첫 인사를 했다. 자기를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에 한쪽만 감겨있던 눈을 마저 뜨고 가만히 엄마를 느끼는 듯 보였던 작은 생명체. 그렇게 얼굴도장만 찍은 아기를 신생아병실로 보낸 나는 격리를 하기 위해 곧 퇴원을 해야했다.


그래서 나는 산부인과에서 아기를 낳고 나면 바로 젖을 물린다는 것도 몰랐다. 열 달 동안 어디를 가든 늘 함께했던 존재를 두고 혼자만 집으로 돌아 온 그날 밤에는 젖몸살이 찾아와 밤새 신열이 났다. 아가가 여기 없다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야속하게도 젖은 팽팽 만들어지며 주인인 아가를 찾았나보다. 초보아빠가 된 남편과 함께 밤새 병원에서 준 책자를 뒤적이고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 마사지도 배워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가슴에 고인 뜨거운 사랑은 갈 곳이 없어 그렇게 엄마를 아프게 했다.


다음날부터는 조리원에서 미리 빌려온 유축기로 열심히 유축을 했다. 처음 몇 번 동안은 민망할 정도로 양이 적었지만 하나도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모아서 얼려두었다. 한번에 10ml 정도 되는 양이 처음으로 모였을땐 얼마나 뿌듯하던지. 아직 만나지도 않은 작은 아가에게 줄 생각을 하니 너무나 사랑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출산한지 며칠이 지난 후에 격리가 끝났고 그제서야 나는 아기를 데리러 병원에 갈 수 있었다. 며칠사이 조금 더 자란듯한 아가였지만 곱게 접어 가져간 배넷저고리와 싸개는 아직도 훌렁훌렁 컸다. 너무 보고 싶었던 너. 모유수유를 하고 싶어도 못하고 젖몸살에 발만 동동 굴렀던 산모는 드디어 아가와 함께 조리원에 간 것이다.


출산 후 며칠이나 지난 이제야 젖을 처음 물려보는 나는 말하자면 지각생이었다. 썩 주눅이 들었지만 조리원 선생님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금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말해주셨다. 용기를 얻은 나는 훌훌 꽃무늬 실내복을 걷어내렸다. 수유쿠션을 둘러매고 소파에 앉자 속싸개에 돌돌 말린 아기가 옆으로 눕힌채로 내 앞에 얹혀졌다. 볼에는 작은 수건을 받치고 등에는 좀더 큰 수건을 댔다. 너 병원에서는 크다고 했는데. 이렇게나 여리고 작은 존재였구나.


그렇게    만남을 가진 우리는 어색하지 않았다. 조리원 선생님은 처음엔 아기에게도 쉽지 않을  있다며 미리 부담을 덜어줬지만, 유두보호기의 일종인 '쮸쮸' 끼우고 아기의 입에 갖다대자마자, 인생 0일차인 녀석은 마치 원래 해왔던 일인 것처럼 힘차게 젖을 빨기 시작했다.


아,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울까!


열심히 움직이는 입, 촉촉해진 이마의 땀, 색색거리는 숨소리, 내 몸과 맞닿은 따뜻한 볼.

아기는 마치 나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편안하게 누워서 몇십분동안 엄마의 젖을 먹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너를 너무 사랑하게 될 거란 걸. 너를 지키기 위해 한없이 강해질 거고, 너를 잃을까 두려워 한없이 약해질거란 걸. 억만금을 준대도 바꿀 수 없다는 말은, 억만금과 너를 맞바꾼다는 생각만해도 가슴이 찢어질듯 아파서 차마 할 수도 없는 말이었다는 걸.


직수는 무척이나 아팠고 아가에도 무는 연습이 더 필요했지만 결국 한달 후에는 유두보호기 없이 직수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아기의 첫 졸업인 셈이었다. 이렇게나 행복한 일이기 때문일까. 금방 끝낼거라고 계획했던 모유수유는 어딘지 헤어지기 아쉬워 원래 계획보다도 보름이나 더 단유를 미루게 됐다. 그동안은 수유횟수도 줄이고 유축횟수도 조절하면서 천천히 이별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이제, 내일 아침 수유를 마지막으로 우리 아기 모유수유를 끝내게 된다. 오후에는 단유 마사지를 예약했다. 사실 단유를 하면 먹고싶던 음식, 커피도 술도 마음대로 먹고 몸도 덜 피곤해 날아갈 듯 기쁠 줄 알았는데 마음이 그렇지가 않다. 허전하고 서운하다. 다시 한번만 더,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젖을 물리고 싶어진다. 출산 후 친구의 결혼식에 가서 딱 두입정도 샴페인을 마신 적이 있는데 생각만큼 즐겁지 않았다. 아기 주는 밥을 고작 별것도 아닌 엄마의 여흥 때문에 오염시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 뒤로는 술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그 좋았던 샴페인도 너를 위해서라면 한모금도 먹고 싶지 않고, 아무리 졸리더라도 나를 기다리는 오물거리는 너의 세모난 입을 떠올리면 마음이 막 행복해지면서 맘마를 주러 가게 된단다. 조리원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눈을 감고 엄마 젖을 문 너의 얼굴. 나에게 새로운 행복을 가르쳐준 너.

마지막 맘마도 맛있게 먹어주길 바래.


앞으로도 우리는 늘 함께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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