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나빴다" 대신 "내가 틀렸다"라고 말할 때 생기는 권위
변명은 거짓말이 아니다. 바람이 강했고, 라이(Lie)가 좋지 않았고, 컨디션이 나빴다. 전부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유를 설명할수록 신뢰는 줄어든다. 듣는 사람에게 그 설명은 '상황 분석'이 아니라 '통제력 상실'의 고백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나는 상황에 휘둘리는 사람입니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오해하지 말자. 상황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바람이 실제로 불고, 운은 실제로 작용한다. 챔피언이라고 해서 태풍을 멈출 수는 없다.
하지만 챔피언과 패자의 차이는 그 상황을 문장의 어디에 두느냐에 있다.
패자는 상황을 '결론(conclusion)'으로 쓴다.
"바람이 너무 강해서 공이 밀렸어."→ 바람=결과의 원인
챔피언은 상황을 '조건(condition)'으로 쓴다.
"바람이 강했는데, 내가 계산을 잘못했어."→ 바람=조건, 나=결과의 원인
이 차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있다. 2006년 US오픈, 윙드 풋(Winged Foot).
필 미켈슨(Phil Mickelson)은 마지막 18번 홀 티박스에 섰다. 파(Par)만 해도 우승, 보기(Bogey)만 해도 연장전이었다. 우승이 확정된 듯했다. 그러나 그의 드라이버 샷은 왼쪽 갤러리 텐트를 맞고 깊은 러프로 들어갔고, 무리한 리커버리 샷은 나무를 맞고 떨어졌다. 결국 더블 보기. 그는 한 타 차로 우승을 놓쳤다.
커리어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붕괴 중 하나였다. 전 세계 미디어가 그를 둘러쌌다.
"코스 세팅이 너무 가혹하지 않았나?"
"갤러리 소음이 방해되지 않았나?"
기자들은 그에게 핑계 댈 명분을 줬다.
하지만 미켈슨은 그 명분을 걷어찼다.
"Well, I am still in shock that I did that. I just can't believe that I did that. I am such an idiot."
(글쎄요, 제가 해 놓고도 충격적이네요. 제가 그렇게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전 정말 멍청이예요.)
이 인터뷰는 골프 역사상 가장 솔직하고 처절했던 자기 고백 중 하나로 꼽힌다.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반성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언어의 구조를 보면 그 이유가 보인다.
미켈슨은 철저하게 '나(I)'를 주어로 썼다.
실패를 말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 구조가 있다.
"It was bad luck.(운이 안 좋았어요.)"
—주어는 상황(it). 나는 피해자. 피해자는 다음을 바꿀 힘이 없다.
"I did that.(제가 그렇게 했어요.)"
—주어는 나(I). 이 결과는 내가 만든 것. 내가 망쳤으니, 복구도 내가 한다.
미켈슨의 "I am such an idiot"은 자학처럼 들리지만, 언어학적으로는 강력한 통제권(Agency)의 선언이다. 물론 이것이 순수한 자기 비난인지, 전략적 책임 수용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외부로 화살을 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자기 몫 이상을 짊어지는 사람에게 우리는 다음 기회를 준다.
그는 코스를 탓하지 않았고, 운을 탓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어리석음만을 탓했다.
남 탓을 하는 순간 우리는 그 패배의 '피해자'가 되어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자기 탓을 하는 순간 우리는 그 패배의 '주인'이 되어 기회를 얻는다.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결함을 스스로 통제할 줄 아는 사람을 신뢰한다. 미켈슨은 그날 우승컵은 잃었지만, 리더로서의 권위는 잃지 않았다.
그리고 15년 후.
2021년 5월, 필 미켈슨은 50세의 나이로 PGA 챔피언십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메이저 대회 역사상 최고령 우승 기록이었다.
2006년의 붕괴가 그를 끝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가 그날 밤, 자신을 'idiot'이라고 부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패의 주인이 된 사람만이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다.
미켈슨은 그날 우승컵은 잃었지만, 더 중요한 것을 지켰다. 자기 커리어에 대한 통제권.
이것이 Authority의 첫 번째 조건, Agency(주체성)다.
그런데 조심해야 할 지점이 있다.
모든 실패가 개인의 책임인 것은 아니다.
팀의 전략이 잘못됐고, 시스템이 구조적 결함을 가지고 있고, 리더십이 부재했다면? 그때도 "제 판단이 틀렸습니다"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다. 오히려 그럴 때는 시스템을 지적해야 조직이 바뀐다. 개인이 모든 책임을 떠안으면 문제가 은폐된다.
차이는 이것이다.
개인의 실행(execution)이 문제였다면 → 'I'를 주어로.
구조와 시스템이 문제였다면 → 'It'을 주어로, 단 해결책도 함께 제시.
미켈슨의 2006년 실패는 전자였다. 드라이버 선택, 샷 실행, 리스크 판단—모두 그의 통제 범위 안에 있었다. 그래서 'I'가 정직했다.
하지만 만약 캐디가 잘못된 클럽을 건넸거나, 코스 관리가 위험 수준이었다면? 그때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책임감의 표현이다.
Agency는 맹목적 자기 비난이 아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었던 것과 없었던 것을 구분하고, 통제 가능한 영역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는 것이다.
당신의 지난 실수를 떠올려보라. 코치에게, 동료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설명해야 했던 순간. 당신의 주어는 무엇이었는가.
"상황이 너무 안 좋았습니다."
"제 판단이 틀렸습니다."
전자는 상황을 보고한 것이고, 후자는 책임을 보고한 것이다.
물론 때로는 전자가 정답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운가다.
© WON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