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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Nov 18. 2015

배가 따뜻해서

네가 처음이었어

섬마을에서 온 강아지는 생후 한 달 만에 도시개가 되었다. 우유밥을 자작자작하게 밥그릇에 담아주면 할딱거리며 먹던 내 인생 두 번째 개는 일주일 만에 우리 집을 떠나 삼촌 집으로 갔다.


‘재롱이’가 우리 집에 온  다음날 나는 울고 말았다.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으며 내가 깔아 준 수건 위에 누워있는 작은 강아지를 보고 있다가 왜 우느냐고 묻는 말에 “그냥 다시 시골로 보낼까?”라고 목 메이는 소리로 대답했다. 열두 살이나 됐는데 밥상 앞에서 우는 게 창피해서 나도 내 눈물이 당황스러웠다. 내가 울게 된 건 재롱이가 뭘 대줘도 잘 먹지 못하고 내 뒤만 따라다녔기 때문인데, 심지어 화장 갈 때도 밥그릇을 물고 종종거리며 따라와 화장실 문 앞에 밥그릇을 놓고 먹었다. 불안해하던 아기 강아지는 어른들 말처럼 향수병 때문에 일주일 간 낑낑 거리다가 삼촌 집에 가서는 금방 적응해버렸다.


처음부터 그 녀석의 거처는 정해져 있었다.

몸이 아픈 삼촌이 적적하지 않게 강아지를 데려온 것이었다. 작은 에서 꼬리를 흔들며 예쁜 짓 하는 재롱이를 보며 삼촌은 이름도 참 잘 지었다고 좋아했다. 사실 재롱이의 엄마 아빠 이름이 아롱이 다롱이였다. 그래서 돌림자를 쓴 것이 재롱이의 가족사를 알려주는 유일한 끈이 되었다. 재롱이는 삼촌과 산책도 함께 하고 동네 슈퍼에도 함께 가고 밥 먹을 때도 겸상 비슷하게 마주 보고 앉았다. 현관에는 실내로 들어올 수 없는 덩치 큰 '신성일‘이 턱을 괴고 눈을 위로  치켜뜬 채 불쌍하고 억울한 표정으로 안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성일은 늘 그 자세였다. 옆 집 할머니는 고놈 참 잘생겼다며 '신성'이란 이름까지 붙여주고 예뻐했지만, 아무리 예뻐도 삼촌에겐 재롱이 다음이었다. 목욕을 깨끗하게 한 날에도 절대 실내로는 들어올 수 없었다. 한 번은 슬쩍 안쪽으로 엉덩이를 들이밀었다가 삼촌에게 큰소리를 들어야 했다. 서열이 분명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재롱이는 자주 신성일을 약 올리며 매를 벌었지만 신성일은 절대 재롱이를 때리지 못했다. 그냥 더 억울하게 눈만 꿈쩍 거릴 뿐이었다. 성질 한 번 못 내고 속앓이 하는 신성일을 애틋하게 여긴 옆집 할머니는 우리 식구가 갈 때마다 그간 재롱이와 신성일 사이의 일들을 늘어놓으며 신성일이 얼마나 참을성 있는 개인지 열심히 설득하려 애를 썼다.  


나는 주말에 가끔 재롱이를 보러 가곤 했다. 몸이 자라도 귀여운 얼굴은 변하지 않았고 사랑받고 자라면서 더 활달해진 녀석이 내내 보고 싶어서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한 달에  한두 번씩 삼촌 집에 갈 수 있었다. 재롱이는 성견이 되어서도 몸집이 내 팔뚝 길이만 했는데 품에 안을 때 물컹하고 따뜻한 배가 느껴지면 이토록 약하고 여린 존재를 내가 안고 있구나 싶어 손끝이 바들바들 떨다. 이렇게 약한 아이를 내가 키우지 않은 건 참 잘한 일이구나 안심했다. 나보다는 듬직한 삼촌이 주인으로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한 2년 간 삼촌은 재롱이와 어디든 붙어 다녔다. 동네에서도 유명했다. 살랑살랑 꼬리 치는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덩치 큰 아저씨.


어느 날 삼촌은 자리를 펴고 누웠다.

뺑소니였다. 그 자리에서 재롱이의 숨이 끊어졌다. 삼촌의 슬픔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하얀 승용차 주인은 치졸한  거짓말 뺑소니 쳤고 삼촌은 재롱이를 묻어주고 꼬박 한 달을 누워 앓았다. 신성일은 그 자리를 채울 수 없었다. 보다 못한 작은 이모가 비슷한 강아지 하나를 다시 사다 줬고 이름도 똑같이 재롱이로 붙여주었건만 새 재롱이는 그 재롱이가 아니었다. 결국 삼촌은 신성일도 새로운 재롱이도 시골 넓은 마당 있는 지인에게 넘겼고 앞으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픈 후로 삼촌 집에 강아지가 없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설마 했지만 정말 그 후로 삼촌은 강아지를 키우지 않았다.


재롱이는 삼촌의 마지막 강아지다. 지금도 그렇다. 벌써 20년이 훌쩍 넘은 일이라 삼촌조차  그때 일을 기억하려면 한 참 걸릴지도 모른다. 나도 꽤 희미한 기억을 더듬고 있다. 그런데 그 날은 기억난다. 재롱이의 따뜻한 아랫배를 감싸 안고 배를 타고 육지로 건너오던 기억. 오들오들 떠는 작은 생명체를 품은 내 손이 꽉 안지도 못하고 무척 긴장해있었던 그 느낌.


엄마가 반대해서 애완견을 키워본 기억은 단 한 번 뿐이다. 유치원에 입학하기도 전이었다. 몇 장의 이미지만 머릿속에 남아있는데 기억은 유화로 붓 칠한 듯 진하게 머릿속에 스며있다. 항아리를 모아둔 2층 장독대로 뛰어오르는 두 마리 치와와. 몸집이 작고 쌍둥이처럼 닮은 두 마리 개는 내가 옆집 친구네 집에 갈 때도 같이 담장을 뛰어넘어 따라왔고 잠시도 쉬지 않고 마당을 뱅글뱅글 돌면서 뛰어놀았다. 늘 뛰어다니던 활달한 강이지들은 한 날 동시에 죽어버렸다. 순식간에 우리 집 마당에서 사라져버렸다. 동네 미친 고양이가 물어 죽였는데 나는 기억이 안나는 그 현장을 아마도 엄마는 본 것 같다.


내 기억속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재롱이를 키운 건 삼촌이지만, 처음 삼촌 집에 보낼 때 어른들이 했던 거짓말처럼 나는 정말 그냥 맡겨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강아지 재롱이의 갑작스런 뺑소니 사건은 나에게도 무척 충격이었다. 몸져누운 삼촌이 너무 걱되어서 놀란 티를 낼 수 없었지만 나는 종종 생각했다. 재롱이는 배가 따뜻하고 몰캉해서 죽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배를 타고 오는 길에 느껴졌던 그 따뜻한 배의 감촉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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