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그에 대한 책임은 네가 지는 거야
중학교 3학년 어느 토요일 오후, 나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그 시절 텔레비전 채널은 몇 개 되지도 않았고, 딱히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멍하니 채널을 돌려가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다. 쉬어야 할 만큼 뭔가를 한 것도 아니었고 해야 할 공부가 있었다.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나는 사춘기 중학생답게 아무 이유 없는 반항 중이었던 거 같다. ‘이제 그만 봐야지’라는 생각은 계속 들었지만, 몸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저녁이 다 되어갈 무렵, 결국 어머니께서 한마디 하셨다.
"하루 종일 너무 하는 거 아니냐."
충분히 혼날 만한 상황이었다. 누구라도 멍하니 시간을 낭비하는 내 모습을 봤다면 한마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히려 반발심이 먼저 들었다.
"안 그래도 하려고 했어요. 공부하라고 해서 더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말란다고 안 할 것도 아니에요."
벌컥 대들었다. 어머니는 내 짜증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으셨다. 더 혼내거나 잔소리도 없이 그냥 바라보실 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앞으로 너한테 공부하란 말 절대 안 할 거다. 대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네가 다 책임져야 할 거야."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한 잔소리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의 무게가 점점 더 커졌다. 어머니는 정말 단 한 번도 내게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시절 내내 성적과 상관없이, 특히 고3이 되어서도 어머니는 약속을 지키셨다.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내 몫이며, 그 선택의 결과 또한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 어머니의 무언의 가르침은 공부하라는 잔소리보다 더 강한 설득력이 있었다.
그 깨달음은 단순히 공부하는 방식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하는 작은 선택에서부터, 진로와 직업을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까지, 나는 항상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려 했다.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니까.
나도 부모로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같은 이치를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공부해라', '숙제는 다 했니?', '학원 가라'와 같은 말 자체가 없다. 단순히 어머니를 따라 공부하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감을 가르쳐주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잘해왔는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 내 아이들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흐른 후에 부모의 뜻을 이해하게 될 거라고 믿는다. 어머니가 그러셨듯이, 나도 묵묵히 기다려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