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을 바꿔서 바라보면 문제가 보입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후,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공부에 매달렸다. 군대에 가기 전, 적당히 한 공부만으로는 성적이 엉망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 ‘적당히’를 뛰어넘어야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해야 충분한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불안감이 컸고, 그래서 더욱 끝이 보이지 않는 공부를 했다.
그렇게 맞이한 어느 시험 기간, 전기공학개론 시험을 앞두고 한 친구를 만났다. 그는 나보다 먼저 졸업해 대학원에 진학한 동기였다. 시험 준비로 잔뜩 예민해 있던 내게 그는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시험 범위가 어떻게 돼?"
"몇 문제가 나온다고 했어?"
"교수님이 강조한 부분을 골라낼 수 있겠어?"
그의 질문에 나는 책을 펼쳐 중요했던 내용을 짚어 나갔다. 수업을 열심히 들었으니 교수님이 강조한 개념과 문제들을 어렵지 않게 골라낼 수 있었다. 애매한 것을 포함하면 예상 시험문제 수보다 한두 개 더 많았다. 그때 친구가 여유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교수면 이걸 빼고 다른 문제를 내겠어?"
그 말을 듣고 나는 문득 깨달았다. 교수님이 일부러 학생들을 골탕 먹이려는 것이 아니라면, 시험 문제는 당연히 강조된 내용에서 나올 것이었다. 중요한 건 내가 그 내용을 얼마나 확실히 이해하고 있느냐였다. 친구는 이어서 말했다.
"이제 그 문제들을 풀 수 있으면 불안해할 이유가 없잖아. 충분히 준비했으니 마음 편히 시험 봐."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 무언가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늘 시험에 쫓기는 입장에서만 생각했지, 문제를 내는 교수님의 입장에서 바라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시선을 바꾸자, 시험 준비의 핵심이 한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바로 증명되었다. 시험지를 받았을 때, 내가 예상했던 문제가 그대로 나와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수업 시간에 그렇게 강조되었던 내용이니, 다른 문제가 나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몰랐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시험을 치렀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그때의 경험은 단순히 시험을 잘 보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이후 나는 공부할 때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도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했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도 내 이야기만 생각할 게 아니라, 상대가 무엇을 궁금해하고, 어떤 의도로 말하는지 살펴보려 한다. 강의를 준비할 때도 ‘내가 전달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중심에 두려 했다. 회사에서 보고서를 작성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기보다, 상사가 무엇을 궁금해할지를 먼저 떠올리며 내용을 정리해야 좋은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물론, 나는 아직 이 점을 완벽하게 실천하지 못한다. 여전히 내 입장에서만 생각할 때가 많고, 때로는 엉뚱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출제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은 계속하고 있다. 그날 친구의 조언처럼, 시험이든 일이든 준비가 충분했다면 불안해할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할 만큼 제대로 이해했느냐는 것이다.
그 깨달음은 지금도 내 삶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