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울산에 있는 조선소에 취업했다.
바로 신입사원 교육을 받았는데, 그 과정에는 현장 실습이 포함되어 있었다. 어떤 업무를 맡든 조선소의 근본인 현장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가게 된 부서는 선박 건조 과정 전체를 알아야 해서, 나는 모든 공정을 관리하는 품질경영부에서 실습을 하게 되었다.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넓은 조선소 곳곳을 오가며 실습을 했다. 빠듯한 일정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거대한 선박이 완성되기까지, 각 부서에서 맡고 있는 역할이 하나하나 맞물려 돌아가는 과정은 경이로웠다.
실습 기간동안 다양한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정년퇴직을 얼마 남기지 않은 분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분들은 단순히 현장 업무를 설명해 주는 것 이상으로,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하셨다. (당시엔 55세에 정년퇴직이었다.)
"난 이제 제대가 2년 남았어."
"요즘이야 설비가 다 갖춰져 있지만, 예전엔 정말 열악했지."
"조선소 주변도 지금이랑은 완전히 달랐어. 아파트는커녕 변변한 집도 없었어."
이렇게 시작된 옛날이야기는 하나같이 비슷하게 흘러갔다.
"일자리 있다는 말 듣고, 가방 하나 들고 왔어. 1년만 고생하고 돌아가려고 했지. 그런데 벌써 30년이 다 돼가네. 그동안 자식들도 다 키우고…"
각자의 사연은 조금씩 달랐지만 큰 흐름은 한결같았다. 흔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경외심을 느꼈다.
'어떻게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들까지 다 키워낼 수 있었을까? 그 과정에서 힘든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매일같이 힘든 현장에서 어떻게 버텨낼 수 있었을까?'
당시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 후, 퇴직을 앞둔 선배들을 볼 때마다 '이 분은 또 어떤 역사를 갖고 계실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그분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고왔던 것은 아니다. 열정 없이 자리만 지키고 있는 모습이 실망스럽기도 했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회사가 만들어지고 성장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 모습까지 닮고 싶지는 않았다.
믿기지 않지만 신입사원이었던 때로부터 25년이 지났다. 이제는 내가 당시 선배들의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나이뿐 아니라 비슷한 역사를 만들고 있다.
나도 가방 하나 들고 이곳에 왔고, 가정을 꾸렸고, 이제는 아이들이 부모 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기분이 묘하다. 나는 그분들의 삶을 보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 했는데, 그렇다면 내가 살아온 삶도 대단한 걸까? 물론 그렇지 않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거 같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왔을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고생 많았다'는 격려는 받을만한 것 같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선배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기들. 각자 현재의 위치, 이뤄 낸 성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세월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하려 애쓴 거 만으로도, 우리는 따뜻한 격려를 받을 만한 자격은 충분히 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