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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재 Oct 08. 2015

히치하이킹 여행 1일차 - 강진에서 광주까지

2015 국토대장정 히치하이킹 여행





여행 1일차

해남 땅끝에서 광주까지









넓은 평지에 으리으리한 기와집이 몇 채 있지 않을까 했던 예상과는 달리 다산초당은 산길을 타고 구비구비 올라가야 나오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정말 이게 다 일까, 이게 정말 다산초당인 걸까 하며 예상했던 모습과는 조금 달라 약간의 실망을 잠깐 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다산초당의 메인이 저 작은 기와집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으로 올라오면서 보이는 숲, 나무, 그리고 작은 누각인 천일각에서 보이던 강진만 바닷가.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다산초당을 이루어낸 것이지 오래된 집 하나만이 다산초당의 전체는 아닌 듯 했다.











강진까지 같이 동행한 어머님과 아버님은 친척집으로 가시기로 하고 나는 예정대로 강진터미널에서 내리기로 했다. 짧은 인연, 짧은 만남.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나는 무엇을 얻게 되었으며 어머님과 아버님께선 무모한 도전을 시도하고 있는 나를 보며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어쩌면 이것 밖에 줄  수밖에 없어서 미안해하며 따뜻한 밥 한 끼라도 사 먹으라고 건네주신 만 원 한 장이 모든 것들을 말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오천 원 한 장을 건네주셔도, 천  원짜리 한 장을 건네주셔도 나에게는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인 일들인데 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을까....











강진에 도착하자마자 우체국부터 찾았다. 여행하는 중간에 왜 갑자기 우체국에 가냐고 물어본다면, 멍청한 나의 욕심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여행하면서 늘 느끼는 거였지만 가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사용한 적이 그리 많지 않다. 예를 들어서 옷가지나 여행 팸플릿 같은 것들, 사실 옷이야 빨아 입으면 되고 팜플렛도 그 도시를 떠나면 세상으로 나오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가방 안에서 묵혀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크나 큰 욕심이라고 생각했던 가이드북. 일본 여행 가서 보겠다고 넣어두긴 했는데 과연 거기 가서도 많이 읽어보기나 할까? 내 여행 패턴을 봐선 얘 또한 몇 번 빛을 발했다가 집에 갈 때까지 가방 안에 묵혀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가차 없이 넣어버리는 게 옳은 선택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 분위기가 뭔가 남다르다. 다른 우체국이었다면 빨리빨리 하라는 무언의 압박에 주섬주섬 박스테이프를 칭칭 감았겠지만 여긴 결코 그렇지 않았다. 어두운 표정으로 우체국을 서성일 듯 한 경비원도 이것저것 짐들을 풀어놓고 허둥지둥 대던 나를 보고 5시까지 하니까 천천히 정리하라며 넉살 가득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다. 거기에다가 우체국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과도 핸드폰 게임 얘기로 수다를 떨 수 있는 그런 곳. (게임 <모두의 마블> 하나로 대동단결이 되는 남자들!) 모든 것이 여유로웠다. 여기 사람들은 진정으로 자신의 삶과 일을 즐기고 있었다. 오랫동안 도시에서 살아온 나에게 적잖은 충격 그 자체. 강진이라는 동네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곳에 도착한지 한 시간도 안되어 ‘나중에 여기서 살까?’ 하며 이주까지 생각했다. 도시의 삭막함에 지친 영혼이라면, 이곳이라면. 언제든지 치유가 가능할 것 같았다.









강진의 돈가스는 학교 근처에 있을 것 같은 허름한 분식집에서 먹는 것 조차도 맛있다. 유명 메이커인 김밥천국이나 김밥나라, 요즘 떠오르는 샛별 고봉민 김밥처럼 화려한 건 아니지만 그냥 맛있다. 왜 맛있냐고? 강진이니까 맛있는 거다. 한편에 데코 되어있는 후르츠 칵테일이 그저 정겹기만 하다.











김밥 조차도 맛있다. 이걸 어떻게 해야 될지 참 설명이 안 된다. 암튼 강진은 좋은 동네다.











오늘의 목적지인 광주까지 가기 위해서는 여러 도시를 거쳐 가야 했다. 일단 한 번에 광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은 발상조차도 하지 않았었고, 우선은 가는 길목에 있는 영암부터 가야 했었다. 어머님께선 영암은 바로 윗동네이니 그쪽으로 가는 차들은 많을 거라며 걱정 말라고 했었지만 사실은 아직 긴가민가했다. 일단은 영암으로 가는 차들이 많을 외곽 국도로 걸어가는 게 우선일 듯했다.


일반 여행과 히치하이킹 여행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하면 차를 타는 위치부터가 다르다는 점이었다. 모든 버스는 터미널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전국의 대부분의 군내버스로 갈 수 있는 동네들은 시내(읍내)에 있는 터미널만 가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반면에, 히치하이킹 여행에 있어 시내나 읍내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갈림길도 정말 많고 시내 안에서 움직이는 차도 정말 많기 때문에, 고속도로나 국도가 나있는 외곽이 아니면 차를 얻어 타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시내 외곽에 있는 의료원 삼거리. 하찮은 삼거리 이름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이곳이 진짜 히치하이킹 여행의 시작이었기 때문이었다. 아까야 어떻게 얘기를 잘해서 강진까지 온 거였지만 이제부터는 스케치북을 꺼내 들고 엄지손가락을 열심히 흔들어야 한다.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랬지만, 여기 삼거리 또한 뭔가 이상했다. 표지판에 광주나 목포, 보성, 장흥과 같은 지명들만 있었을 뿐, 영암이라는 글자는 코빼기도 보이지도 않았다. ‘영암’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건 영암으로 가는 차 또한 많지 않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난 누구보다 더 높게 스케치북을 들어야 했고 누구보다 더 환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향해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러자 수많은 차들을 뒤로 하고 멈춰 선 한 대의 차량.


“타라, 우리 영암 간다.”     


내 심장이 쫄깃한 젤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남들이 위험하지 않냐, 그거 하다가 잘못되는 거 아니냐며 걱정하는 데에는 사실 이유가 다 있었다. 지금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도전해보지도 않고 자기가 믿지 못하겠으면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그들을 한심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남들이 믿지 못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나를 태운 자동차는 멈춰 서지도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국도변을 달리고 있으며 남들과 반대로 생각해 위험하지 않다며 히치하이킹이라는 무모한 도전을 위해 먼 길을 떠난 나는 대범한 멍청이였을 뿐이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은 굳이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아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험악한 인상과 매서운 눈빛, 전라도 말씨와 온갖 욕으로 이루어진 전화통화에서 난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태껏 운이 좋았다더니, 여기서 끝나게 되는 걸까? 난 그저 무서운 형님의 전화통화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오직 히치하이킹만으로 여행을 하고 있고 땅끝 마을에서 오늘 처음 시작해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가려고 하고 있고… (중략)”     


어떻게든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나에 대한 소개와 내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줄줄 브리핑했다. 위기가 닥쳐왔을 때 약간 떨리는 목소리라도 막힘없이 말이 나온다는 건 인간 내면에 존재했던 살기 위한 원초적 본능 같았다. 여행을 많이 다니긴 했지만 줄곧 여행자들을 만나기만 했지 현지인들을 만난 적이 거의 없어서 사람을 만나고자 히치하이킹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으니까 제발 이상한 곳에 데려다 주지 말아주세요...ㅜㅜㅜ


그러자 형님께선 나보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냐며 영리하다고, 오히려 머리 잘 썼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러고는 '이쪽으로 들어오는 차들은 무조건 나주로 가는  차들이야'라는 말과 함께 국도변 교차로에 정확하게 내려주셨다. 심장이 한 뭉텅이 두 뭉텅이 썰려 나갈 뻔한 순간은 그렇게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인간은 눈과 귀가 인지하는 사실들을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어떠한 것에 대해 판단을 내리려고 할 때도 겉모습에 의존하게 되는 비중이 상당히 높다. 하지만 사람의 겉모습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자세가 얼마나 멍청하고 비겁한 행동인지에 대해 우린 골똘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열아홉 꼬마는 오늘도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뻔뻔해야지 잘 살고 사회생활도 잘할 수 있는 거여!!”


사람에게 있어 뻔뻔함은 중요한 덕목이다. 자신의 장점에 대해 어필할 때, 자신이 판매할 물건에 대해 설명해야 할 때 등등 상대방의 마음을 나에게로 돌리기 위해서는 더더욱 필요하다. 특히 운전자의 마음을 움직여 원하는 목적지로 가야 하는 히치하이킹 여행에서 말이다. 사람들에게 이 여행을 한다고 말했을 때, 뭐하러 이런 짓을 하냐, 양심도 없냐 와 같은 부정적인 말들을 들을 거라 생각했던 예상과는 달리 내가 들었던 말은 대단하다, 용기 있다, 뻔뻔함도 있어야 한다 와 같은 긍정적인 말들이었다.


영암에서 날 태워준 40대 남자의 응원과 내 뻔뻔한 염치에 힘입어 나주가 아닌 무려 광주에 도착했다. 나주라고 적혀있는 스케치북을 보고 멈추긴 했었지만 사실 원래 그의 목적지는 광주였었다. 지도상으로 보이던 나주가 워낙 복잡해 보여서 광주로 갈 수나 있나 싶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효천지구에 있는 광주대까지 오게 되었다. 히치하이킹 3번 만에 베이스캠프인 광주까지 오게 되다니! 이 여행, 뭔가 성공할 것만 같았다.











해남에서 출발한지 다섯 시간 만에 드디어 광주 시내에 도착했다.

광주대학교라고 해서 도심 번화가에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바깥쪽에 있어서 조금 놀랐다.


여기서 게스트하우스가 많이 있는 광주역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마음 같아선 광주역까지도 히치하이킹으로 가고 싶었지만, 날도 어두워지는 데다 시내에서 시도하기에는 조금 무리인 것 같아 버스 요금통에 천 원까지 한 장을 넣기로 마음 먹었다.











별밤 게스트하우스

 

인터넷 검색 창에다 무작정 ‘광주 게스트하우스’를 검색해보니 예상대로 정보의 바다답게 수많은 숙소들과 수많은 후기들이 인터넷 창에 도배되었다. 일단 오늘 잘 곳은 있다는 건 확신했다. 하지만 광주에 있는 모든 숙소들이 내가 찾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곳. 입을 끝도 없이 털어내야 하루를 발 뻗고 잘 수 있는 나에겐 사람에 부대껴 사람에 지칠 수 있는 게하가 필요했다. 그렇게 검색의 검색을 하다가 찾아낸 곳이 바로 별밤이었고, 내일로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게스트하우스라는 수식어를 가진 곳이라면 사람에 지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별밤에는 '내일로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게스트하우스'라는 수식어 만큼이나 여행자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몇 일차예요?”로 시작되는 내일로 얘기는 담양 가서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는 얘기나 내일 보성 빛 축제 보러 간다는 얘기 등등으로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내일로 여행코스도 짜 주기도 하고 어떤 여행지는 좋고 나쁘다며 추천을 해주기도 하고. 내일로 얘기를 하다 보니 나도 마치 기차를 타고 떠나야 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나 해야 할까. 내일로 여행을 했던 기억을 되살려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그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하고. 히치하이킹 여행과 내일로 여행이 서로 공존하면서 첫날 밤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아 그리고 이건 보너스!











밤 12시에 배고픔을 참아가며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다.

이 정도면 대단한 수준.


별밤 게스트하우스 근처에는 '신흥식당'이라는 맛집이 있다. 메뉴는 백반 딱 하나 있는 기사 식당. 게하에서 만나 같이 밥 먹으러 온 형까지 포함해서 두 명이라고 이야기하자 이윽고 반찬이  세팅되어 나왔다. 신흥식당에 대한 예찬론을 글로 풀어내자면 첫 번째로 반찬 가지 수에 놀랐고 두 번째로 음식 맛에 놀랐다. 전라도 한정식, 남도 밥상이 유명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듯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격에 놀랐다. 이 모든 것이 다 합해서 5500원! 서울이었으면 7천 원에서 8천 원은 기본으로 받았을 백반이 여기서는 5500원밖에 안 한다. 거기다가 양도 안 차는 롯데리아 불고기 버거 세트가 5천 원이나 하는 세상에  5500원짜리 백반이라니.... 암튼 여긴 꼭 가야 한다. 광주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분이라면 무조건 추천!











백반정식의 하이라이트인 두루치기.

이러니까 내가 채식주의자가 되지 못하는 거라고ㅋㅋㅋㅋㅋ

역시 고기를 끊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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