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색] 2019.01.03 인문학은 개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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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색] 2019.01.03 인문학은 개똥이다-청풍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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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문학이 처음인데요, 박홍순, 한빛비즈, 2014.03.25
인문학은 생활이다

인문학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을 가지고 있은지 한달정도 되었다. 인문학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쓴 책이다. 아니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왜? 인문학을 어려워 하는거지?"
"인문학의 목적지가 행복이고 행복이 개인의 구체적인 삶과..."
"아! 그래! 그런 이유였어."
"뭐가 그런 이유라는 거야?"
"봐. 잘 들어봐. 내말은..."
"왜 말을 안해?"
"아... 잠깐 말이 엉켜서 생각 좀 하는 중이야."
"그래서?"
"인문학이 어려운 이유를 물었지? 내가"
"그래. 인문학을 어려워하는 이유"
"인문학의 목적지가 행복이라 생각하니까 그런거야. 너 파랑새 이야기 알지? 행복해지려면 파랑새가 있어야 하고 파랑새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거. 행복을 위한 파랑새는 각자의 안에 있는데 말야. 사람들은 행복해지려고 노력을 하지. 매일 그렇게 노력하는데 쉽지 않아. 인문학 책을 펼쳐서 한번 읽어봐. 죄다 행복한 이야기 뿐이야.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랄까? 읽으면 좋고 좋다는 걸 알지만 현실에서는 쓰잘데기 없는거지. 행복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행복하지 않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는거야."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인문학이 어렵다는거야?"
"그러니까 음... 뭐랄까? 인문학은 피곤한 삶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제된 표본의 삶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한번 예를 들어볼게. 새벽같이 일어나서 인력시장에 나가고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흙지게를 등에 업고 돌덩이를 나르고 시멘트를 바르는 고된 일을 하는 중에 인문학이 눈에 들어올까 하는거지. 생각에 생각을 더해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생각을 풍성하게 해주는 책! 과연 그 사람에게도 필요할까? 인력시장에서 현장까지 이동하는 동안 팔짱을 끼고 잠깐의 숙면이 행복한데 그런 책을 읽는 시간이 실질적인 도움을 가져올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해보니 그렇네. 하루하루 고되게 살아가는데 짬이 날때마다 독서를 한다고? 그것도 공자님 말씀같은 인문학을 말야?"
"그래. 그렇지?"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결국 인문학을 쉽게 이야기한다는 사실 자체가 없는거지. 초등학생이 말할 때가 비로소 초등학생의 눈높이야. 어른이 아무리 초등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한다고 그게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가 하는거지. 다시 말해 인문학을 처음 접하자마자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야 한다는거지. 인문학을 멀리하던 그 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말야. 인문학을 접하면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시점부터 시작해서 인문학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알게 되면서 생각의 변화, 삶의 변화를 풀어나가야 비로소 인문학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이 되는거야."
"아... 그래서 또?"
"인문학을 쉽게 하는 시도가 우스운거지. 다른 예를 들어볼까? 수학에서 즐겨 사용하는 공식 중에 미분과 적분 알지?"
"어. 단어만으로도 머리에서 쥐가 날 거 같은 미분, 적분. 잘 알지. 아니 많이 들어봤지."
"그래. 미분과 적분을 초등학생에게 쉽게 설명해봐. 라는 거랑 뭐가 다르냐 는 거지."
"근데 갑자기 이 책을 읽다가 인문학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 생각했어?"
"어. 갑자기. 인문학이 행복을 추구한다는 글귀에서 생각이 난거야. 넌 지금 옷을 입고 있지. 그리고 배도 적당히 부르고. 목도 촉촉하고."
"그건 또 무슨 이야기야?"
"옷을 입고 있으면 옷을 찾거나 구하지 않아. 배가 고프지 않을 땐 먹을 거리를 찾거나 생각하지도 않지. 역시 목이 마르지 않으면 마실 걸 고민하지도 않아. 그렇듯 파랑새 때부터 행복을 찾는 이야기를 누군가는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지. 즉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는거야. 행복을 추구한다는 건 행복하지 않다는 거야. 사람은 매 순간 행복할 수 없는 동물이니까. 행복을 안다는 것이 고차원적인 이야기거든. 기쁠 때 기쁘다고 이야기하지만 기쁘다는 사실은 기쁘지 않은 순간이 있기 때문에 기쁜 상황이 생기는거지. 마찬가지로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있기에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거고 행복해지는 순간, 다시 행복하지 않은 순간을 향해 가는 그런 삶을 산다는거야."
"그럼 행복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거야?"
"행복은 순간의 기쁨이나 순간의 만족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어른보다 행복해보이는 이유가 많은거지. 겨울이 봄이 되고, 얼음이 녹아 개울물이 소리를 내며 흐르는 일이 아이에겐 놀라울 수 있고 신기한 걸 찾아 기쁘고 행복해질 수 있어. 이미 수십년을 살아온 어른이 그런 현상을 보며 행복해지기란 과연 가능할까 라는거지. 어떻게 생각해?"
"가능하겠지만 쉽진 않을 거 같아. 배고프면 밥을 먹는 게 행복한 게 아니라 당연하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지."
"잠깐 생각해본거야. 인문학이 어려운 이유, 인문학을 어려워 하는 이유,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는 이유, 이런 것들을 말이지."
"인문학은 생활이다, 장에서도 그림을 들어 말하는 것도 결국엔 같은 이야기지. 그림을 보면 엄마와 아이가 있어. 그림에서는 뒷모습 뿐인데 아이는 물이 무서워 주춤거린다고 표현하고 있어. 그게 어딨어? 그런 느낌이 그림의 어느 부분에 나와 있냐고? 아무런 정보가 없는데 작가는 그렇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는거야. 이런 글을 읽으면 인문학이 쉽다고 생각할 수 있겠어?"
"그렇네. 그림에서 보이는 엄마와 아기는 아기가 넘어질까 걱정돼서 한쪽팔을 잡고 저기 물이 들어온다 이러면서 신기한 느낌을 전해주는 것 같은데? 작가는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거지?"
"정말 인문학을 쉽게 설명하려 했으면 그림의 어느 부분을 보고 그렇게 판단했는가가 나와줘야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공감을 하거나 공감하진 못하더라도 그랬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는거지."
"그렇겠네"
"바로 다음에 아기가 만족스러운 삶의 전제조건으로 여긴다고 이야기 하는 것도 누구의 생각인지 궁금할 정도야. 넌 아이에 대한 생각이 어때?"
"에이~ 아기는 피곤한 존재. 말도 안 통하고 고집불통이고 생리현상도 조절이 안돼서 더 힘들고... 악! 생각하기도 싫어."
"거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여기서는 그런 생각이 없어. 아기가 활력과 만족을 준대. 그러면서 심리학을 갖다붙이는 건 억지아냐? 이건 이 글을 쓴 작가가 인문학이 처음이고 이 글이 처음인 거 같은 이유는 뭐지? 아무말 대잔치도 아니고 맥락도 없고 개연성도 없고 갖다붙이면 다 글이야? 다 글이지. 음..."
"아무말 대잔치? 하하하"
"장의 마지막에 이런 말이 있어. 일상 안에 있되, 비판적 문제의식과 상상력을 통해 인식을 확장할 때 가능하다. 마지막 문장에 주어가 너무 앞에 있어서 주어를 한참 찾았어. 주어는 인문학에 가장 친근하게, 그리고 가장 빨리 접근하는 방법이거든, 주어도 너무 덕지덕지 길어. 밀착, 매몰, 통념, 비판석, 문제의식, 인식, 확장, 가능 등 사용하는 단어가 한자어가 많은 게 딱 국어국문학과 출신 같은 느낌은 뭘까?"
"정말 그러네. 국어책을 보는 느낌인데?"
"아직도 이런 클라스는 존재하는가? 방금 사용한 클라스 역시 비슷한 느낌이긴 하지만 말야. 이런 사람부류의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한자어를 사용하면서 권위를 가지려고 애쓰는 것 같단 말야. 좀 쉽게 말할 수 없는거지? 일상 속에서 비판적인 의식과 상상력을 통해 인문학을 대할 수 있다 라는 정도말이지. 다음 장이 더욱 궁금해지는데?"
"정말? 왜 그렇게 궁금해?"
"이젠 책을 읽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잖아? 작가가 어떻게 독자와 괴리, 거리감을 만드는가 하는 이유말이지. 그걸 찾는 재미가 더 있을 거 같아"
"그럼 나도 같이 찾아봐야겠네."
"그럼 우린 다음 장에서 만날까?"
"그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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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성, 오르한 파묵, 민음사, 2011.04.29.

1장

선장이 겁에 질려 버리면서 내 인생이 조금씩 달라져 왔다는 생각, 처음부터 결정된 건 없고 우연의 연속이다 라는 글귀말야.
자신의 인생인데 어떻게 타인의 행동에 의해 달라졌다고 말하는걸까? 사람이라 환경에 변화할 수 있고 그 역시 자신이 주체인데 너 때문에 내가 바뀌었어 라고 말하는 건 성인으로서 무책임한 말 아냐?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나의 모든 과거.
가지고 있을 땐 소중함을 모르다가 놓아버린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찾게 되는 소중함이다. 그림책을 보던 아이가 어느새 자라 위인전을 읽기 시작했다. 읽지 않던 책을 옆집 아이에게 나눠준다고 말하니 다시 그 책이 궁금해졌단다. 다시 읽고 있는 중이라며 책을 주지 말라고 하는 아이다. 아이나 어른이나 동일한 사람이다.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결국 비슷하다는 말이다. 가진 걸 내어놓지 않으려는 본능이다. 내 손에 쥔 걸 놓지 않으려는 행동. 아이가 태어나며 빈 손을 꼭 쥔 모습이 생각나게 하는 글귀다. 지금까지는 필요없었는데 언제든 찾아볼 수 있다고 믿을 때는 괜찮았는데 이젠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쌓여 있는 책들 속의 정보들이 나의 자신인 듯 하다. 작은 방을 가득 메운 책장 속의 천권이 넘는 책들을 떠올려보니 비슷한 느낌이다. 가지고 있는 만족감일 뿐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지식과 정보가 늘어나는 것은 아닌데 나 역시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다. 지금도.

자아도취에 빠진 젊은이인가? 평범한 젊은이라면 모두 자기만족에 사는 것일까? 그렇다. 나 역시 그리 살아왔고 지금 그리 살고 있기에 그렇다고 대답을 하겠지만 다른 평범한 젊은이들도 그리 생각한다고 말하는 글귀에 놀랐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특정 몇몇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이렇게 또 세상을 배우고 사람을 배운다.

당사자가 되어 일을 당할 때는 혹은 쇼를 할 때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외부에서 바라보면 느낌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진다. 상황 속에서는 순간의 조각과 조각들이 모두 선명하고 필요한 것들로 보여지는 데 거기서 한발 물러나 제 3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그저 재밌거나 없거나 지루하거나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생존의 본능일까? 자기 PR 시대를 살아가는 내가 보기엔 아주 당연해보이지만 이 글이 씌여진 시대를 배경으로 본다면 1980년대 초반에 엄청난 자기 피력과 과장의 삶을 살았다.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것이다. 종교를 바꾸지 않은 것만 빼면 말이다. 생존을 위해 언어를 익힌 것 역시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노예로 잡힌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돈을 배움에 쏟았다는 것은 정신적 수준이 상당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동료가 해준 말 중 "가능하면 매일같이 면도를 하게...중략...일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당장 오늘 죽음이란 갈림길로 선별될지 모르는데 면도를 하듯 언어를 배우는 마음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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