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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너지 Feb 13. 2018

"도와줘서 고마워"라고 말할 수 있길

신체적 불편을 가진, 세상의 많은 원희들에게

“원희야, 넌 교실에 남아 있을래?”

초등학교의 한 교실, 다른 아이들은 체육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체육관으로 향한다. 혼자 어쩔 줄 몰라하던 한 아이에게 선생님이 물었다. 

“...” 

아이는 아무 말도 않고 한참을 망설이다, 교실에 남아서 책을 읽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알겠다며 몇 마디 말을 더 건넨 뒤 교실에서 나갔다. 혼자 덩그러니 남은 교실에서 어제 읽던 책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책을 읽던 아이는 친구들의 빈 책상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엉엉 울어버렸다. (※ '원희'는 가명입니다)



원희는 어릴 때부터 질병으로 다리가 약한 친구이다. 장애등급이 3~4등급을 오가는 정도인데, 국가의 활동 지원을 받기에 가장 애매한 상태이다. 장애 1~3등급과 달리 4등급에는 지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올해는 장애를 4등급으로 판정받아 작년과는 달리, 학교생활을 도와주는 활동보조 선생님이 없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활동보조 선생님이 체육시간에 넘어지지 않도록 뒤에서 잡아주시곤 했다. 덕분에 걷거나 가벼운 체육활동은 거뜬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활동보조 선생님 없이는 체육선생님이 원희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신경쓰기 어려웠기 때문에 원희는 체육시간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친구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나를 귀찮아하지 않을까? 선생님은 나를 성가신 아이로 보지 않을까? 
도와달라고 하더라도, 어디를 잡고 얼마나 힘을 줘야 하는지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다들 체육시간이 즐거워 보이네. 나는 어울리지 못하고 영영 친구를 만들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냥 교실에서 책이나 읽어야겠다. 책 읽는 건 재미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선생님이 원희에게 어떻게 할지 물었을 때, 원희는 이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다양한 두려움이 뒤섞여 고민하다가 결국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은 욕구를 부정했을 것이다. 더 정확히는, 처음부터 교실에 앉아 책을 읽고 싶었던 것처럼 생각할 것이다. 체육시간에 참여하지 않으면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밝히지 않아도 된다. 상대를 성가시고 귀찮게 만든다는 느낌도 받지 않으니 최선이라 여길 것이다. 


그러나 체육시간을 피하는 것이 원희에게 좋은 선택일까? 



작년 9월 세브란스에서 정기검사를 기다리던 중, 원희와 원희의 어머니를 만났다. 내가 탄 활동형 휠체어를 신기하게 보다가 휠체어 정보를 물어보고 싶다 하셔서, 전화번호를 드렸다. 몇 달이 지나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 전화가 왔다. 휠체어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주제가 자연스레 원희의 학교생활로 옮겨갔다. “체육시간에 어떻게 하라고 할지 모르겠어요.” 원희 어머니의 말을 듣다 보니, 원희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상상이 됐다. 휠체어를 타고 지낸 지 7년 정도 됐는데, 가장 힘든 것은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게 아니라 원희의 체육시간과 같은 상황들이었기 때문이다. 



곧 서른을 바라보는 나도 원희와 다를 바가 없다. 남들과 다른 소수의 삶을 살다 보면 시시때때로 도움과 양해를 구해야 하는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여전히 선택의 순간에 서면 도와달라고 할까, 싶다가도 그냥 안 하고 말지, 돌아설 때가 많다. 그러나 피하기 보다 용기를 내서 자꾸 시도해야 장기적으로 더 행복한 것 같다. 적어도 난 그랬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솔직하게 인정하고 더 용기를 내야 했다.                     



돌이켜보면 마주하기 두렵다는 이유로 위와 같은 상황에서 도망쳤을 때가 가장 서러웠다. 첫번째 상황에서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혼자 돌아오는 길, 속으로는 괜찮다고 다독였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나왔다. 티켓을 샀지만 들어갈 수 없던 공연장에서, 스태프와 언성을 높이며 싸우던 친구에게 “난 괜찮아. 화내지 말고 그냥 가자”라고 말했던 과거의 내가 안쓰럽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친구들에게, 부모님에게 “괜찮다"라고 말했지만 괜찮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괜찮다"는 솔직하지 못했던 나에게 거는 주문이었을 뿐. 



원희가 체육시간을 피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자꾸 피하다 보면 점점 불만이 쌓여 “장애가 없었다면 행복했을텐데” 라고 본인의 몸을 탓하게 될 것이다. 휠체어에 타고 있어도,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릴 수 있다면 ‘휠체어에 탔다는 사실'은 큰 문제가 아니다. 혹자가 안경을 쓰거나 왼손잡이인 것처럼. 혼자 “장애 때문에 하고 싶은 걸 못했어”라고 한탄하기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와줘서 고마워" 라는 말로 마음을 표현해보면 어떨까? 신체적 불편함이 인생의 장애물이 아닌, 나의 여러 특성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원희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면 좋겠다.


 “장애 때문에 하고 싶은 걸 못했어”보다는 “도와줘서 고마워"라고 말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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