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도의 별장

서울을 떠나 완주에서 <책의별장>을 오픈한 귀촌 2년 차의 촌스러운 사정

by 송강원

나는 촌스럽고 나약한 나를 아껴.


이 문장에 마음을 뺏겼다. 3년 전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박은도(33)의 문장이다. 언제부턴가 외우는 일이 구식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굳이 이 문장을 외워두었다. 덕분에 언제 어디서나 떠올릴 수 있다. 은도가 이 문장을 닮은 사람일 거라고 내 맘대로 생각했다.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난 은도는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을 만난 듯 편안했다. 실제로 처음 만나는 자리였지만 상상했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구 사이가 되었다. 직업과 본명은 모르지만, 서로의 욕망과 상처를 아는 사이.


인터뷰를 핑계로 서둘러 약속을 잡았다. 은도가 오픈한 책방에 가보고 싶었지만 일정이 여의치 않아 먼저 선물만 보냈었다. 서점을 열고자 고민하던 순간부터 눈여겨보던 매물의 부동산 계약이 엎어졌을 때, 그리고 녹록지 않았던 무더운 여름 가운데 셀프 리모델링까지. 이 여정을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책방의 성공을 온몸 다해 응원 중이었나 보다. 피땀눈물의 결실을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제법 가을다워진 10월의 어느 날, 내비게이션에 ‘책의 별장’을 입력했다. 오픈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야무지게 등록되어 있었다. 괜히 뿌듯한 마음으로 안내 시작 버튼을 누르고 고속도로에 올랐다. 평소보다 속도를 높여 달렸더니 3시간이 채 되기 전에 전라북도 완주에 도착했다.


책방을 구상하던 시기에는 야망이 넘쳐서, 책방이 도망치거나 숨을 수 있는 아지트 같은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책의별장>이라고 지었어. 나 자신과 독자들을, 책으로 세상을 탐험하는 여행자라고 여겼답니다 (웃음). 그래서 여행자들이 모이는 숙소도 떠올렸고, 한적한 동네에 있는 나만의 별장, 그런 느낌?


야심 차게 구상했던 초기와는 달리 독립서점 <책의별장>은 완주군 봉동읍의 한 아파트 맞은편 작은 원룸 상가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 느낌'을 주는 매물은 아쉽게도 예산을 초과했지만, 언젠가 구현할 것이라고 의지를 불태우며 이야기하는 그가 귀여웠다. 동시에 대견한 마음이 들고 말았는데, 상상과 현실의 간극을 기세로 메우려는 초보 사장의 안간힘을 느꼈던 것 같다.


자신을 ‘촌스럽다’고 표현하던 은도는 사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고, 직장 생활도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에서 시작했다. 독립이 간절해 서른이 되기 전 시도한 자취도 같은 동네를 벗어나지 않았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은도는 한강을 가로질러 왕복 3시간을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인이었다.


회사가 양재였는데, 출퇴근하면서 매일 (노트에) 욕만 썼어. 이렇게 살고 싶지 않고, 이건 너무 아닌 거 같고, 진짜… 진짜 *같고.(웃음) 이런 얘기만 써놓은 거야.


자신을 '인간을 죄다 저주하고 싶어 하는 악령' 같았다고 회상하는 은도는 그 시절 서울 생활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면적 중 고작 0.6% 크기의 도시에 전 국민의 약 25%가 살고 있는 수도. 높은 인구 밀도와 빽빽하게 들어선 빌딩들, 좁디좁은 원룸은 갑갑했고, 쳇바퀴처럼 돈을 벌고, 돈을 쓰는 소비 중심적인 생활에 염증을 느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감각이 점점 커져갔다.


이런 방식 말고 다른 삶을 살고 싶다, 삶을 더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 그런 막연한 욕구가 있었는데. 그렇다고 뭘 하며 살지에 대한 답은 없었어. 이거 말고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어서 이주를 선택했던 것 같아.


뭘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무엇이 싫은지는 분명했던 은도는 생각에만 머무르지 않고 직접 행동으로 옮겼다. 현실이 불만족스러울 때 사람들은 변화를 꿈꾸며 이직을 시도하고 여행을 떠나거나, 헤어 스타일 따위를 과감하게 바꾸기도 하는데, 은도는 좀 달랐다. 매일 점심시간마다 로컬 콘텐츠를 찾기 시작했다. 다섯 로컬 출판사가 지역 이야기를 담아 출간한 ‘어딘가’ 시리즈 중 한 권인 <어딘가에는 아마추어 인쇄공이 있다>를 읽고 지역 생활에 대한 낭만이 생겼다. 관련 잡지들과 각종 책들을 섭렵하며 이주를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갔다.


그때 읽었던 로컬 콘텐츠들이 지역에서 주체적으로 일하고,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아 일상을 사는 이야기들이었어. 그래서 나도 시도해보고 싶다 생각했던 것 같아. 도시에서 떨어진 조용하고 고요한 곳에서. 그럼 나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고, 내게 맞는 생활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2023년 겨울, 완주 귀촌 청년들이 운영하는 <고봉밥 캠프>를 신청해 2박 3일간 귀촌 체험을 시작으로, 이듬해 6월에는 예천과 경주에 있는 청년 마을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내게 맞는 생활’을 ‘주체적으로’ 찾아 나서면서 ‘막연한 욕구’가 점점 구체적인 그림으로 바뀌어갔다. 그러다 2024년 10월, 완주로 이주를 결심하고 평생 살아온 서울을 떠났다.


처음 완주를 알게 된 고봉밥 캠프가 귀촌 청년들이 만든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진짜 귀촌해서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을 만나본 거예요. 그런데 그 청년들이 하고 싶은 일로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고, 모여서 즐겁게 사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이더라고. (…) 다른 지역을 갔을 땐, 완주만큼 귀촌 커뮤니티가 견고하게자리 잡은 지역이 없었어. 귀촌한 친구들도 이미 다른 귀촌 선배들이랑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고, 지역 속에 잘 녹아든 것 같았어.


최근 통계에 따르면 완주군으로 전입한 귀농-귀촌 가구의 수는 2015년부터 8년 동안 전북에서 1위를 차지했다. 40대 이하 젊은 나이대의 구성비가 특히 눈에 띄는데 전체 귀촌 인구의 64%를 차지한다. 대안 학교와 공동 육아를 위해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꾸린 공동체와 예술지원사업으로 이주한 청년 예술가 집단도 작지 않다.


여기 사람들 바이브가 진짜 있는 것 같아. 나는 여기서 처음으로 공동체라는 걸 경험을 했고, 공동체에서 엄청난 선의와 호의로 주고받는 돌봄과 도움을 엄청나게 많이 받았어. 그게 주는 든든함과 감동이 있었던 것 같아.


새롭게 이주한 은도를 돕기 위해 공동체가 내민 손길은 잊을 수 없는 ‘환대의 장면’으로 남았다. 지역 단체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프로그램을 기획해 일거리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텃밭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선뜻 나눠주는 이웃들 덕분에 간식과 끼니를 해결할 때도 많았다. 책방 오픈을 앞두고 필요했던 사다리와 전동 드릴은 이웃들이 빌려주었고, <책의별장>에서 진행하는 모임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참여해 주는 친구도 있다. 동네 식당 사장님이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새내기 사장에게 잘 될 거라는 말과 함께 따뜻한 포옹을 해주던 장면까지, 수많은 순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은도는 ‘완주는 환대에 능하다’는 말로, 끝나지 않을 대답을 정리했다.




은도가 잠시 커피를 사러 나간 사이, 나는 오래 기다린 전시회를 감상하는 마음으로 <책의별장>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오픈 선물로 보낸 나무 스툴은 구석에서 늠름하게 제 몫을 하고 있었다. 좁은 공간에 하나하나 진열된 책들과 정성스럽게 쓴 손글씨 안내가 괜히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최근 방문한 서점마다 집중해서 살펴보게 된 것도 은도의 영향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서점 운영에 관한 책도 읽는 중이었다. 로컬샵 연구 잡지 <브로드컬리 :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은 독립 서점을 운영하는 사장님들 인터뷰를 모은 책인데, 최근 급증한 독립 서점의 낭만과 혹독한 현실의 온도 차를 적나라하게 전하고 있다


손님이 많이 없어서 손님이 오면 깜짝 놀라게 돼. (웃음) 세상 물정 모르고 대책 없이 책방을 오픈했던 것 같아. 낭만과 치기로.


지역 서점 운영 2개월 차 은도에게도 현실은 예외가 아니었다. 손님이 없다는 말을 농담처럼 하는 은도가 마음에 쓰였지만 동시에 사업하는 사람의 굳은살이 이렇게 생기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픈 이후 손님이 급격히 줄어 들어서 ‘일비일비’했던 은도에게 <책의별장>의 5년 계획을 물었다.


5년은 생각도 못하겠어. (웃음) 2년 뒤 계약 기간이 끝나도 계속 책방을 운영할 수 있기만을 바랍니다. <책의별장>이 지역 주민들에게 책 관련 모임이 활발한 공간으로, 여행객들에게 지역 콘텐츠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 책과 여행을 엮는 기획도 염두에 두고 있어요.


'낭만과 치기'로 문을 열었다고 했지만, 은도의 머릿속에는 다양한 기획안이 가득하다. 벌써 독서 클럽, 글방, 워크숍 행사 등 여러 모임을 주최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완주에서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를 모아 <귀촌 살 만해?>라는 독립 서적을 출판했다. 생애 첫 공동체라는 감각을 선물해 준 완주에서 느낀 '든든함'과 '감동'을 다시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엿보이는 듯했다. ‘애정을 쏟게 만드는 관계가 이곳에 뿌리내리는 동력’이라고 말하는 은도에게 마지막 질문으로, 2년 전 '악령 '시절의 자신을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지 물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개똥밭에 굴러도 완주가 낫다! (웃음) 힘든데 재밌어요.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내 역량을 발휘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가치 있는 *뱅이다!




원룸이지만 서울보다 훨씬 넓은 평수인 은도의 집, 실패 없는 동네 맛집, 그리고 완주 커뮤니티의 새로운 거점공간이 될 <책의별장>까지. 짧았지만 주말을 가득 채운 시간을 곱씹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긴 운전에도 전혀 피곤하지 않는 내가 낯설었다. 무해한 미소를 머금고 “가치 있는 *뱅이다!”를 외치던 얼굴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자신을 촌스럽다고 쓰던 서울 토박이 은도가 이제 진정 ‘촌’에서 살고 있구나 싶었다. 나는 ‘촌스럽다’는 표현을 언제부터 좋아했지 생각하다 은도 덕분일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촌스럽고 나약한 나를” 뒤에 ‘바꿔’가 아닌 ‘아껴’를 쓸 수 있는 친구를 만난 덕분이겠지. 완주에서 보낸 ‘촌스러운’ 주말이 벌써 그리워졌다. 자신을 바꾸라고 강요하는 세상에서 환경을 바꾸는 선택을 하는 사람. 여전히 생활은 만만치 않을지언정 스스로를 아낄 수 있는 삶을 지켜내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일상에 대해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은도의 문장을 다시 떠올렸다. 나는 촌스럽고 나약한 나를 아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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