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소멸에 대한 머스크의 주장 해석

by 임풍

유발 하라리는 2010년대 중반, <호모 데우스>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통해 이미 하나의 어두운 미래를 예고했다. 그의 전망 시점은 대체로 21세기 중반, 빠르면 2030~2040년대였다. 그는 이 시기에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데이터 기술이 결합되면서 인간의 노동과 판단 능력이 거의 대체될 수 있으며, 그 결과 상당수의 사람들은 더 이상 경제 시스템에서 필요 없는 존재, 즉 무용 계층(useless class)으로 밀려날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라리의 핵심 문제의식은 단순히 실업이 늘어난다는 차원이 아니었다. 인간의 노동이 경제적 가치 창출의 중심에서 밀려날 경우,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의미는 무엇을 기반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의 제기였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일론 머스크는 이 논의를 훨씬 급진적인 방향으로 전개하고 있다. 머스크는 최근 2~3년간 여러 차례 공개 발언과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거의 모든 인지 노동을 잘 수행하게 되는 시점이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으며, 그 결과 “일은 선택 사항이 될 것이고, 돈의 의미는 점점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공지능이 거의 무한에 가까운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되면, 희소성을 전제로 작동해온 화폐 시스템 자체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전망 시기는 매우 짧다. 머스크는 이 변화의 가속 구간을 2020년대 후반, 즉 2028년 전후로 암시해 왔다. 특히 머스크는 2025년 11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U.S.-사우디 투자 포럼 등 여러 자리에서 “AI와 로봇 기술의 진전이 계속된다면 결국 앞으로 3년 안에 돈은 중요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다시 강조했다. 머스크는 화폐의 소멸을 논하면서 에너지 생산과 전력 인프라가 사회적 자원 배분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머스크의 주장을 단순한 도발이라고 할 수 없다. 그가 바라보는 미래 경제의 핵심은 노동도, 자본도 아닌 에너지다. 인공지능은 전례 없는 양의 전력을 소비한다. 대규모 데이터센터, 연산 능력, 로봇 운용 시스템은 모두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에너지 공급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미래의 부는 화폐 보유량이 아니라, 전력 생산 능력과 에너지 인프라를 누가 통제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미국의 IT 업체 경영자들은 원전과 여타 에너지 생산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에너지가 새로운 화폐가 된다”라는 머스크의 발언은 은유가 아니라, 조만간 닥쳐올 세계 경제 변화에 대한 구조적 진단이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나타난다. 전통 경제학은 인간 노동을 가치의 원천으로 가정한다. 노동이 투입되고, 생산이 이루어지며, 그 결과가 화폐로 환산된다. 그러나 로봇이 육체노동을, 인공지능이 인간 사고를 대체하는 사회에서는 이 전제가 무너진다. 인간의 노동 생산성은 거의 0에 가까워질 것이고, 더 이상 전통 경제학은 맞지 않게 된다. 이때 국가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재정 확대를 통해 경기 부양을 시도하면, 생산 증가 없이 화폐만 늘어나 인플레이션과 실질 소득 감소가 반복된다. 이미 많은 국가에서 관측되는 현상이다. 이는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라, 경제의 기초 가정 자체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급진적인 전망 속에서 인류의 미래는 하나의 경로로만 흘러가지 않고 여러 형태를 보일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과 화폐의 관계는 미래학자들에 의해 여러 사회적 시나리오로 전망되고 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소수 기술 엘리트 중심의 에너지 플랫폼 경제이다. 이 경우 소수의 국가와 기업이 에너지 생산, 전력망, 인공지능 인프라를 독점하게 된다. 화폐는 형식적으로는 유지되지만, 실질적인 교환 능력은 에너지 접근권이 좌우한다. 다수의 인간은 기본소득이나 최소한의 배급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인간의 노동은 사회적 의미를 잃게 된다. 유발 하라리가 말한 무용 계층은 이 시나리오에서 가장 명확한 형태로 구체화할 것이다. 인간은 생존하지만,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은 급격히 축소된다. 이 시나리오는 이미 현재 진행 중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화폐 의미의 점진적 변형이다. 화폐가 완전히 사라지기보다는, 에너지 사용권, 데이터 접근권, 기본 서비스 이용권과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교환 수단으로 진화할 수 있다. 돈은 더 이상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시스템 접근권을 배분하는 일종의 토큰이 된다는 뜻이다. 이 경우 사회는 급격히 붕괴되지는 않겠지만, 개인의 자유와 선택은 기술 인프라에 깊이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 인간은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시스템 밖으로 나가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머스크의 전망이 암시하는 전통적 경제 시스템의 급진적 붕괴 이후의 재구성이다. 만약 에너지 인프라가 불안정해지고, 대규모 전력 공급이 지속되지 못한다면, 고도화된 인공지능 문명은 스스로 유지되기 어렵게 된다. 전기가 끊기는 순간, 금융 시스템은 정지하고, 디지털 화폐와 은행 거래는 무력화된다. 이 경우 화폐는 교환 수단으로서 의미를 상실하고, 식량, 물, 연료 같은 물리적 자원이 직접적인 가치 기준이 된다. 인간 사회는 고층 아파트와 초연결 도시를 버리고, 보다 낮은 에너지 밀도의 원시적인 삶의 방식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단순한 원시 회귀가 아니라, 에너지 제약 조건 속에서 재편되는 새로운 지역 공동체 문명에 가까울 것이다.

이 모든 시나리오의 공통점은 하나다. 인간은 더는 노동하는 존재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하라리와 머스크의 전망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인간의 노동 상실의 결과, 하라리는 인간의 의미 상실을 경고했고, 머스크는 화폐 경제 시스템의 붕괴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둘은 다른 표현을 쓰지만, 같은 구조적 변화를 전망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인류는 여러 번 문명의 기반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빙하기, 전염병, 제국의 붕괴, 여러 번 산업 구조의 전환 속에서도 인간은 살아남았다. 현재 방식의 화폐가 사라진다고 해서 인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존 화폐가 사라질 때, 인간은 무엇을 가치로 삼고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고, 생활 방식을 바꿀 것이다.

분명히 알아야 할 점은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집단의식이 새로운 단계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등장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머지않은 미래에 생산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 돈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로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화폐의 소멸 전망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문명의 자기 정의에 대한 질문이다. 어쩌면 인공지능 시대의 진짜 특이점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다시 규정해야 하는 순간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