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영적 전환

by 임풍

인간은 숨 쉬고, 먹고, 병들고, 죽는다. 이 단순한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번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생각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생각도 지금 이 몸을 벗어나, 현실의 다른 먼 장소로 순간이동해 실현될 수는 없다. 결국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 이전에 지금 이곳에 머무는 물리적 존재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인간은 이 단순한 몸 위에 형이상학의 막을 덮기 시작했다. 영생, 신의 현현, 윤회 같은 개념들은 어쩌면 죽음 앞의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고대인들의 언어적 구조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부활한 예수는 실제로 함께 걷고, 함께 식사한 살아 있는 존재였다. 도마가 예수의 옆구리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은, 그들이 믿은 신이 인간과 같은 육체적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육체의 재림 대신, 신의 몸은 점차 상징으로, 영으로, 그리고 관념으로 변화되어 갔다. 물리적 재림이 내면의 천국, 영적인 부활이라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단순한 해석의 변화가 아니라, 신의 물리적 현존을 경험하지 못한 후대 인류가 영적으로 새롭게 인식한 언어였다.

그런데 현대의 인간은 그 반대편에 서 있다. 이제 사람들은 영적인 신보다 물질의 신을 섬긴다. 몸의 욕망, 재산의 축적, 사회적 지위, 이 모든 것이 새로운 신전의 제단이 되었다. 심지어 종교단체조차 그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뉴스를 보면, 돈과 직분, 권위와 경쟁에 대한 내용이 많다. 그곳에서는 신의 숨결보다 인간의 욕망과 조직의 소음이 크게 들린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인가?” 또한 형이상학 철학의 원조 격인 플라톤의 이데아는 이제 공허하게 들리고, 칸트의 물자체는 너무 추상적이다.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시대에 신이나 영혼이라는 말은 너무 멀고, 너무 비현실적이다. 우리는 사랑 대신 거래를 배우고, 감동 대신 효율을 추구한다. 사람들이 돈이 중요하다고 말할 때, 그 말속에는 이미 인간의 모든 영적 전통과 철학이 해체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냉혹한 현실의 틈새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을 경험한다. 사람마다 어떤 예감, 불가사의한 동시성과 꿈, 혹은 설명할 수 없는 구원의 감정을 경험한다. 그 순간 인간은 잠시 멈춰 선다. “이건 뭐지? 정말 무언가가 있는 걸까?” 이 한순간의 흔들림이 일부 사람을 다시 철학과 종교로 이끌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곧 일상으로 돌아간다. 세상이 생각 말고, 돈을 벌라고 속삭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모든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 온 정신을 쏟아부은 시대는 없었다고 본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이처럼 인류는 물질적 힘과 영적 힘의 진자에서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진동하여왔다. 개인은 세포이고, 사회는 조직이며, 문명은 하나의 생명체로 비유할 수 있다. 세포가 일정한 시점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듯(apoptosis), 인류도 자기 파괴를 통해 다른 의식의 차원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모른다. 과거에 비해 물리적 전쟁이 줄어든 오늘날, 언어의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경제전쟁, 심리전쟁, 신념 전쟁. 모든 싸움은 결국 물질과 영성이라는 두 축 위에 놓인 인간 존재의 의미를 놓고 벌어지는 전쟁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인류 문명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때 인간은 몸을 부정하며 신을 찾았고, 니체와 과학 시대 이후 신을 잃자 몸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인공지능의 대두와 함께 몸도, 신도 모두 잃어버린 시대에 서 있다. 이미 신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몸을 급속하게 대체하고 있다. 그 한가운데서 인간은 여전히 의미를 찾으려 몸부림친다. 어쩌면 인류의 자기 파괴는 종말이 아니라, 더 높은 질서로 나아가기 위한 우주적 리듬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세포가 죽어야 새로운 세포가 태어나듯, 한 정신적인 문명도 죽어야 새로운 집단의식이 열리는 것일까?

그때 신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성 종교나 철학의 형식이 아니라,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몸속 깊은 곳에 깃든 숨결로서 나타날 것이다. 전체적인 인간 의식의 변화로 표현될 것이라고 본다. 그 신은 이미 우리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아니라, 물질도 아니고 영도 아닌, 호흡처럼 느낄 수 있는 상태로 존재하는 신, 그런 의식의 전환이야말로 물질과 영이 만나는 가장 근원적인 자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