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우주선과 나

by 임풍

지구라는 행성을 하나의 거대한 우주로, 인간의 몸을 그 우주를 항해하는 정교한 우주선으로 바라보는 상상을 해본다. 이는 단순한 비유를 넘어, 인간 존재를 다시 사유하게 해주는 철학적 도구가 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나의 몸은 약 50조 개의 세포라는 부품으로 구성된 하나의 자율적 기계이자, 우주적 질서 속에서 특정 좌표를 따라 움직이는 생명 시스템이다. 나는 이 우주선의 제조 일자와 장소, 그리고 이름을 부여받고 출항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위에는 약 82억 대의 유사한 우주선들이 서로 다른 항로를 그리며 비행하고 있다.

이 우주선의 선장은 나이지만, 내 안에는 수많은 승무원들이 함께 탑승해 있다. 이 승무원들은 내가 일상적으로 나의 생각과 감정이라고 부르는 심리적 작용들의 다양한 얼굴이다. 분노, 화, 불평, 비교, 죄책감, 의심, 자기비하, 교만 같은 그림자 승무원들부터, 용기, 사랑, 희망, 평화 같은 밝은 승무원들까지 모두가 이 우주선에 함께 머물며, 낮에는 속삭임으로, 밤에는 꿈이라는 방식으로 쉴 새 없이 선장인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흥미로운 것은, 이 승무원들이 선장인 나와 동일한 존재가 아니면서도 오랜 시간 동안 한 공간을 공유해 왔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나 자신이라고 착각해 왔다는 점이다. 이는 뇌과학적으로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간의 의식은 다양한 신경 회로에서 생성되는 정서적, 인지적 신호들을 하나의 자아라는 내러티브로 결합하는 경향이 있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나라는 존재는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경험하는 순수한 목격자일 뿐인데, 그 흐름 자체를 자아라고 오인해 온 셈이다.

승무원들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고, 때로는 서로 충돌하기도 하며, 특정 인생의 전환점이나 새로운 항해지에 도착할 때마다 일부는 내리고 또 다른 일부는 새롭게 탑승한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사고 패턴의 변화, 정서적 조건반응의 소멸과 학습, 생애주기마다 등장하는 새로운 과제와 정체성의 형성 과정과 유사하다. 승무원들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요청하거나 협박하거나 두렵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들은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나면 조용히 휴게실로 돌아간다. 그들의 소리와 이야기는 세포의 교체처럼, 끊임없이 찾아오고 또 사라지는 흐름일 뿐이다.

이제 나는 선장인 나와 승무원으로서의 생각과 감정이 근본적으로 다른 층위의 존재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그들을 억압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대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있으며, 필요하다면 우주선의 항로를 약간 수정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가 나의 본질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선장은 항해를 지속할 뿐이고, 승무원들은 교대하며 우주선의 내부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한다.

우주선의 부품은 시간이 지나며 스스로 교체되고, 감정과 생각이라는 승무원들도 세월에 따라 바뀌지만, 이러한 모든 변화를 목격하는 의식의 중심, 즉 순수한 관조자로서의 나는 변하지 않는다. 이 순수의식은 파도처럼 몰려오는 경험들을 단순히 보고, 듣고, 지나가게 할 뿐이다. 그리고 이 우주선은 결국 창조주의 별, 존재의 근원이라 부를 수 있는 탈창조라는 최종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항해한다.

이 상상의 세계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생각과 감정의 파동에 끌려다니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우주선의 조종간을 쥔 선장으로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승무원들의 이야기들을 조용히 듣고, 그들이 떠나고 새로 오는 것을 지켜보며, 의식이라는 등불 아래에서 광대한 삶의 우주를 항해하는 존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