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한 시간, 튜브에서 쓴 런던의 첫인상 기록
좋은데 싫은 게 있다면, 바로 이번 출장이었다. 회사 돈으로 가는 출장이 마침 유럽이었고, 일정이 마침 추석과 맞닿아 있었다. 그렇지만 마침 한 달 전에 파리 여행을 다녀온 덕분에 가기 싫은 마음도 자리했다. 그럼에도 한 해에 단 두 명이 선발되는 자리였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부러움과 함께 결국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14시간의 비행 동안 왜 나는 특가 비행기만 타고 다녔는지, 왜 모아둔 마일리지가 없는지 수도 없이 자책했다. 두 번의 기내식과 한 번의 간식, 그리고 여러 차례의 화장실을 거치고 나서야 런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동출입국심사를 알리는 표지판엔 10개 남짓한 국기가 표시되어 있었다. 캐나다와 호주,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태극기를 발견하고 특히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똬리를 튼 입국 심사 줄을 비웃고 자동출입국심사 게이트로 가 여권을 스캔했으나, 결과는 반려. 퉁퉁 부은 얼굴 탓인지 여권 사진의 보정 덕분인지는 모르겠다. 결국 발걸음은 심사관을 향했다. 심사관은 며칠이나 묵는지, 영국엔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물었다. 난 7박 8일간 저스트 트래블 계획이라고 건조하게 말했다. 이쯤 되면 도장을 찍어줄 줄 알았는데 영국은 쉽지 않은 곳이었다. 심사관은 너의 가족들이 런던에 온 걸 아는지 추가로 물어왔다. 이 양반아, 가족만 아는 줄 아냐고. 온 회사 사람들도 알고, 거래처 사람들도 압니다. 심지어 필라테스 선생님도 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Yes, Yes! they know that"이라고 짧게 말하고 입국 도장을 받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캐리어에 2주간의 살림을 싸왔다. 좋지만 싫은 출장을 보내 준 본부장을 위해 산 술이 너무 크다는 변수가 있었다. 캐리어에 꾸역꾸역 넣어봤지만 지퍼가 잠기지 않아 정말 눈물이 날 뻔했다. 출세란 무엇일까. 이렇게 사는 게 과연 출세의 길인가 생각했다. 캐리어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로얄살루트. 어차피 나는 알쓰라 맛도 못 볼 술인데 저 술을 이고 지고 다닐 생각을 하니 2주간의 일정이 아득했다. 갑자기 짜증이 치밀어 택시를 타고 싶었다. “그래, 이러려고 돈 버는 건데 택시 좀 타면 어때”라는 생각에 우버 앱을 켰다. 그리고 숙소까지 11분, 65파운드가 필요하다는 화면을 보고 조용히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공항에서 피카딜리라인을 타면 숙소까지 한 시간 걸리지만 단 돈 5파운드에 갈 수 있었다. 나는 숙소 이동 교통비로 5파운드를 쓸 수 있을 만큼만 버는 사람이었다.
피카딜리라인은 런던의 1호선이라고 했다. 하지만 선녀였다. 너네 1호선 모르지? 1호선은 DMZ 인근에서 시작되어 서울을 가로질러 충남을 가는 지하철 아니 지상철이라고요. 피카딜리라인은 히드로 공항의 모든 터미널을 경유했다. 1에서 5터미널을 통과해 세계의 여행객이 모인다. 유독 좁은 튜브의 맞은편엔 중동에서 온 여행객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정말 한가했다. 한국인이라면 착륙 한 시간 전에 했을 유심 교체를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했다. 게다가 또 다른 생면부지의 여행객에게 유심 교체 핀도 빌렸다. 난 유심도 불안하여 두 배의 비용을 주고 굳이 로밍을 해왔는데 결국 저들과 같은 지하철을 타는 걸 보니, 여행은 그냥, 어쨌든 오면, 누구나 비슷하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꽤나 유난스러운 사람인 걸 다시금 깨달았다.
1시간을 달려 숙소가 있는 피카딜리서커스 역에 도착했다. 30킬로는 족히 되는 캐리어를 들고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계단을 올라왔다. 인스타그램에서나 보던 리젠트 스트리트가 눈앞에 펼쳐졌다. 동그랗게 굴려진 거리에 장난감 같은 빨간 2층 버스가 지나갔다. 그리고 내셔널 갤러리의 고흐 특별전 광고가 눈에 보였다. 생각 없이 예약했던 출장 비행기표를 런던을 낀 다구간 표로 바꾸는 데 24만 원 정도가 들었다. 그렇지만 100년에 한 번 있다는 자신 만만한 고흐 특별전이 휴가 일정에 딱 들어맞는 것만으로도 이 비용은 값을 다 했다. 예약해 둔 관람 일정을 다시 확인하며 집에서 나온 지 20시간 만에 숙소에 도착했다. 좋은데 싫은 일정이 비로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