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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라는 알고리즘, 반복되는 현실

by Wooin


언어는 바다와 같다. 겉보기에는 무한하게 펼쳐지는 수평선처럼, 무수한 의미의 파도들이 밀려온다. 그러나 그 바다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우리는 그것이 알고리즘의 망에 의해 지배되는 폐쇄적 시스템임을 깨닫게 된다. 파도는 항상 같은 간격으로, 같은 모양으로 반복되고, 바다의 끝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언어는 이제 그와 같다. 우리가 원하고, 생각하고, 경험하는 모든 것은 이제 알고리즘의 규칙에 의해 이미 예측되고 제한된다. 우리의 언어가 더 이상 세상을 창조하는 도구가 아니라, 반복되는 의미의 코드가 되어버린 것이다. 마치 알고리즘이 우리의 선택을 미리 정해 놓고, 그 선택을 따라 살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언어는 우리의 사고의 범위를 좁히고, 그 안에서만 현실을 반복적으로 재구성한다.



언어의 알고리즘: 의미의 회로


우리는 세계를 언어로 이해한다고 믿지만, 그 언어는 실제로 미리 정의된 회로 속에서만 세계를 ‘형성’한다. 우리가 어떤 사건이나 감정을 이야기할 때, 그 사건은 언어라는 알고리즘 속에서 이미 예측된 틀에 맞춰 표현된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말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 새로움이 이미 알고리즘적으로 정해진 범위 내에서만 재생산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유'나 '진실' 같은 개념을 말할 때, 그 의미는 이미 언어 속에서 반복된 패턴을 따라갈 뿐, 그 자체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이와 같은 알고리즘적 반복은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은 이미 언어라는 시스템 속에서 반복적인 의미로 환원되고, 그 패턴 속에 가두어진다. 마치 인터넷 검색엔진이 우리의 취향을 예측하고, 그 예측된 취향을 반복시키는 것처럼, 언어는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을 알고리즘적으로 한정 짓고, 그 한정된 경험 속에서만 의미를 재구성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언어가 단순히 현실을 반영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현실을 제한하고 반복하는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알고리즘적 의식: 언어의 폐쇄적 체계


우리는 언어를 사용하여 세계를 이해한다고 믿지만, 실제로 언어는 우리의 사고와 의식을 구조화한다. 우리가 말을 할 때, 그 말은 이미 언어적 규칙 속에 갇혀 있고, 우리는 그 규칙 속에서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구조는 우리가 무엇을 이해하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경로를 제한한다. 예를 들어, ‘자유’를 생각한다고 할 때, 우리는 그 ‘자유’라는 개념이 언어 안에서 이미 규정된 의미에 의해 해석되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언어의 경로 밖으로 나갈 수 없으며, 그 의미를 언어의 반복적 코드 속에서만 이해한다.


알고리즘이 우리의 선택을 미리 예측하고, 그 예측된 경로를 반복하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언어도 우리의 사고의 흐름을 제어하고, 그 제어된 흐름 안에서 정해진 의미만을 이해하도록 만든다. 이는 결국 우리의 사고를 폐쇄적인 시스템 속에 가두는 것이다. 이처럼 언어는 의식의 감옥을 만든다. 우리는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하기보다는, 그 감옥 속의 규칙을 반복하면서 살아간다. 이 문제를 우리는 데리다의 해체와 연결지을 수 있다. 그는 언어 속에 숨겨진 권력적 구조가 의식을 형성하고, 그 형성된 의식이 우리의 경험을 제약한다고 지적했다. 언어는 단지 의식의 표현이 아니라, 그 의식을 규정짓는 힘이 되는 것이다.



언어의 반복성: 고정된 패턴 속에 갇히다


우리는 때때로 ‘새로운 의미’를 찾고자 하지만, 사실 언어는 그 자체로 반복적인 패턴을 가진 구조다. 우리가 말할 때, 그 말은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알고리즘적으로 정해진 형식 속에서 되풀이되는 것이다. 우리가 ‘자유’나 ’진실’을 외칠 때, 그것들은 이미 언어 속에서 반복된 정의에 따라 해석되고, 그 해석은 다시 기존의 패턴을 반복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는 마치 알고리즘이 매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제한하고, 그 제한된 옵션만을 반복적으로 제공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이처럼 언어는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도구가 아니라, 기존의 현실을 반복하는 기계적 시스템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새로운 경험을 언어로 표현할 때, 그 경험은 이미 언어적 규범 속에 갇혀서, 고정된 의미로 변형된다. 라캉은 이를 언어가 인간의 무의식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설명했다. 즉, 우리의 무의식은 이미 언어의 구조에 의해 형성되고, 그 형성된 무의식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결정짓는다. 결국,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하더라도, 그 경험을 언어적 패턴 속에서만 재현할 뿐,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존재의 한계: 언어를 넘어서


그렇다면 우리는 언어의 알고리즘적 제한 속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언어가 우리의 현실을 반복적으로 재구성하는 기계라면, 우리는 그 기계적 패턴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해체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지젝은 인간 존재의 가능성을 언어의 구조적 한계 속에서 넘어서려는 노력이라고 봤다. 그에게 해체는 단순히 언어를 문법적 차원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구성하는 구조적 기제를 알고리즘적으로 재구성하려는 노력이다.


우리가 언어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려는 노력은 바로 그 언어적 규칙을 넘어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려는 해체적 시도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이미 고정된 의미의 패턴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 패턴을 인식하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분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의미의 창조가 가능해진다. 우리는 더 이상 언어 속에서 반복되는 의미에 갇히지 않고, 언어를 넘어서서 존재의 다양성을 새롭게 열어갈 수 있다.



알고리즘을 넘어서는 자유


결국, 우리는 언어라는 알고리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언어는 더 이상 세계의 거울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고정된 경로를 제공하는 메커니즘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 할 때, 그 의미는 이미 알고리즘적으로 정의된 틀 안에서만 형성되고, 그 틀 속에서만 반복되는 현실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 알고리즘을 인식하고, 그 틀을 비판적으로 해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우리는 언어의 반복 속에서 영원히 갇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언어의 고정된 패턴을 넘어서야 한다. 그 패턴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자유로운 존재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어의 구속적인 특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해체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결국, 우리가 언어의 틀을 넘어서려는 노력 속에서, 비로소 새로운 현실과 자유로운 존재의 가능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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