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미영 Jan 17. 2020

문과졸업생으로 IT 영업을 시작하다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있다. 나 역시 문송한 마음으로 첫 직장 IT 기업에서 정말 열심히 일했었다.


대학을 졸업을 하고 동기들과 같이 대학원을 진학하였지만 학문의 길은 너무 아득하고 막연한 것만 같아 ‘과연 이 길이 내 길인가?’ 하는 회의감 속에 학업을 중도에 내려놓고야 말았다. 소위 학문의 길에서 탈선을 한 뒤, 피난처 처럼 찾아간 곳은 선배가 만든 IT회사였다. 학업의 단절, 삶에 대한 불확실한 전망속에서 심신이 피폐해진 나에게, 선배가 CEO로 있는 가족 같은 회사 분위기는 큰 위안과 새로운 삶의 의욕을 샘솟게 했다. 난 전 직원이 5명인 벤처기업에 6번째 정식직원으로 합류하였다.


경리, 총무, 제안서 작업에 영업, 그리고 프로그래밍까지, 직원이 10명도 안되는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안 해본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일했다.  회사는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나날이 성장했지만 8년여의 청춘을 바친 첫 회사도 IMF 경제위기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1년여의 기간 동안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회사를 살려보겠다고 뛰어 다니던 멤버들이 하나 둘 떠나고 나 역시 경제적으로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어졌다.


허허벌판에 버려진 느낌이었다. 장래에 대한 별 고민없이, 같이 하는 사람들이 좋아 선택한 첫 직장에서 신나게 일하다가 8년이 지난 시점에야 나는 막 대학을 졸업하는 취준생 처지로 이직 할 직장을 찾아야 했다. 교사 자격증이 있으니 선생님을 해 볼까 고시 공부를 다시 시작해 볼까도 고민했다. 몇 군데 외국어고등학교에 원서를 넣고 있던 나에게 한 친구가 사립학교 교사가 되려면 당시에도 몇 천만원의 기부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빚만 느는 농사 더 이상 짓기 싫다고, 좋은 대학 나온 딸 뒷바라지하면서 살겠다고 서울로 이사를 해 버린 부모님과 일찍 결혼한 탓에 삐약삐약 자라고 있는 두 아들을 생각하면, 과외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고시공부를 시작하는 것도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지난 8년의 경험을 살려 일할 IT 회사들 중에서 일자리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번역, 매뉴얼 작성, 제안서 쓰기, 경리/회계업무, 홍보, 마케팅 등 작은 회사이기에 해야 했던(할 수 있었던?) 많은 일들을 A4지 여러 장에 정리,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준비해서 회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한국에서 중소기업이 얼마나 위험한 직장인지를 깨달았던 나는 대기업에서 세운 IT 회사들에 경력직으로 입사를 시도했으나 이력서를 무수히 넣어도 서류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면접도 한번 보지 못하였다. 비록 IT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학부 졸업 후 8년간의 실무경험까지 갖춘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는지 알아나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지인에게 부탁을 하여 원서를 넣었던 대기업의 인사부 직원을 만나 왜 나에게 면접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지 직접 물어 보았다.


‘이력서를 보니 우미영씨는 경험이 참 많았습니다. IT 기업에서 해 볼 수 있는 웬만한 일은 다 해 보셨더라고요. 그런데 저희 같은 큰 회사에서 경력직원을 뽑을 때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찾습니다. 그러니까 인사, 개발, 홍보 등 한 분야에서 몇 년 정도의 경험을 쌓은 사람을 외부에서 찾는 거죠. 우미영씨 이력에 맞는 일은 사실 임원 직급 밖에 없습니다.’ 그 때 나는 이해하게 되었다. 경력의 초기 20대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한 분야의 전문성을 쌓는 것이라는 것을.


대기업에서 자리를 구하지 못한 나는 지인의 소개로 새로 시작하는 IT 기업에서 두 번째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것 저것 다 해 본 경험이 있는 직원을 찾는, 새로 시작하는  회사였기에 다행히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지만 이때의 구직경험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첫 직장에서의 경험을 살려 사장님을 도와 회사의 모양을 갖추어 가는 동안 내 머리 속에는 한 가지 숙제가 떠나지 않았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사람들이 직장인이 아니라 직업인으로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재무, 관리, 기획, 영업, 그리고 기술 및 기술지원 등 여러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서 그들의 역량과 커리어 관리, 그리고 경쟁력, 그리고 향후 비전 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영업’이 눈에 들어왔다. 낮에는 고객들과 믹스 커피 마시면서 담배를 피고 저녁에는 술을 마시는 사람들,  정작 본인이 판매하는 제품에 대한 얘기를 해야할 때는 기술자들이 설명하도록 자리만 펴 주고,  미팅 후에는 휴게실로 자리를 옮겨 다시 담배를 피우고. 영업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영업을 한다면 저들 보다는 더 잘 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IT영업의 전문가가 되어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총무/관리에 가까운 일을 맡아서 하던 내가 영업으로 일할 기회를 갖기는 쉽지 않았다.


내 나이 또래의 영업들은 이미 수년간 영업을 해 온 사람들인데 회사에서 영업을 하라고 일을 바꿔 줄 리가 만무했다. 어떻게 해야 내가 영업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사장님께 설득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책을 하나 번역해보기로 했다. 당시 인터넷이 홈페이지 수준을 넘어 상거래에 막 활용되던 시점이었다. 보험사가 보험 가입 내역이나 보험료 납부 내역을 인터넷에서 조회할 수 있도록 하고, 카드사가 카드 명세서를 인터넷으로 받아볼 수 있게 하던 때였다. 우리 회사는 그런 인터넷 서비스를 만드는 데 필요한 솔루션을 팔고 있었는데 고객사 전산실의 고객들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 새로운 기술을 쉽게 설명한 책이 있다면 고객들이 기술을 빨리 익힐 수 있을테고 그러면 내가 우리 회사의 솔루션을 판매하기도 수월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관련 기술서적 번역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사실 첫직장에서 사용자 매뉴얼 작업 등에 참여하면서 웬만한 기술용어나 내용들에 익숙했다는 점도 내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자신감의 근거였다.


아마존이 온라인으로 책 판매 사업을 시작했던 때였는데 나는 다섯 권 정도의 외서를 주문했다. 3주쯤 후에 책이 도착했고 그 중 한 권을 번역하기로 했다. ‘Enterprise Java Beans’라는 책이었다. 그런데 막상 번역을 시작하고 보니 내용의 번역도 번역이지만 기술자의 감수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직장에서 곁눈으로 기술을 접하고 들은 풍월도 있었지만 나의 수준이 기술 서적을 번역하기에는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고, IT전문가의 감수가 없이는 책의 번역수준에 대해 자신있게 드러내 놓기에 역부족으로 생각되었다. 누구와 함께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소위 ‘전략적 파트너’를 놓고 며칠 고민을 하던 나는 평소 알고 지내던 실력 있는 기술자 한 명(강승우씨)을 찾아갔다.


‘이 책 어때요’ 하면서 그 앞에 원서로 된 책을 꺼내 놓자 최고의 기술자 답게 그는 어떤 책인지 바로 알아봤다.  그가 책을 뒤적이는 동안 나는 준비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강승우씨, 다음 커리어 계획이 무엇인가요? 지금 일을 잘 하고 인정도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강승우씨의 실력이나 가치를 충분히 알아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책을 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 책을 하나 번역해보면 어때요? 저는 영문과를 나왔고 강승우씨는 기술전문가이니 둘이 번역하고 교정하면 좋은 품질의 번역서가 나올 것 같은데’라고. 나는 그의 눈빛이 반짝이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하여 나는 강승우씨와 함께 6개월 정도 번역 작업을 함께 했다. 평일 저녁엔 각자의 집에서, 주말 하루는 함께 모여 교정작업을 해서 결국 번역서를 출간하게 되었다.


기술자는 아니지만 관련 서적을 하나 번역하고 보니 우리 회사가 판매하고 있던 솔루션이 훨씬 깊이 있게 이해되었다. 모든 새로운 기술이 그렇듯이 새 기술이 나올 때는 그 배경과 철학이 있다. 그걸 이해하면 같은 솔루션도 훨씬 잘 활용하게 된다. 기존의 제품 설명서에 그 배경과 철학을 입혀 새로운 제품 설명서를 만든 나는 출판사에서 받은 번역비로 우리가 번역한 책을 사서 동료 영업들을 쫓아 다니기 시작했다. 영업들이 거래처와 상담을 잡으면 내가 가서 프리젠테이션을 맡았고 프리젠테이션을 마치면 고객의 반응을 살피면서 나의 번역서를 선물로 내 밀었다.


내가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나면 고객들의 반응이 좋았고, 우리에게 다른 고객을 소개해 주었기에 나를 데려 간 영업 사원도 신이 나고 회사의 실적도 올라가기 시작했다. 삼성카드에 가서 설명회를 하고 나면 삼성카드의 고객이 삼성생명의 입사 동기를 소개하고 삼성전자에서 일하는 대학 동기를 소개해 주는 식이었다.


이렇게 영업사원을 도와주며 네트웍을 넓히던 나는 영업지원에서 정식 영업으로 업무를 바꿔줄 것을 사장님께 요청하였고 사장님은 바로 영업부로 옮겨 주셨다. 당시는 IBM 같은 큰 다국적 회사를 제외하고는 IT업계에 여성 영업이 거의 없던 시절인데 나 같은 사람에게 영업으로 일할 기회를 흔쾌히 주신 사장님도 대단한 분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나는 영업의 길에 발을 내디뎠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길의 어딘가에 서 있다.

작가의 이전글 20년간 해 온 나의 업에 대한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