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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옹즈 Dec 15. 2023

37살, 과거에 대한 후회와 열등감의 승화

내 감정을 마주 보다

솔직히 정말 간호조무사를 하기 싫었다. 전문대 나온 간호사들에 비해 객관적으로는 학벌이 밀리지 않는 내가 그 밑에서 보조 업무를 수행하면서 인정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뿐만 아니라, 20대 시절 공무원 공부를 3년 하며 청춘을 날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요식업을 하고, 지방이지만 아파트를 신축 35평까지 갈아타기를 통해 자산을 증식시켰으며, 정신과에 다니면서 지난날의 상처를 보듬었지만, 실습을 하다 보면 내가 선택한 두 번째 직업에 대한 인식을 보면 씁쓸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과거에 선택할 수 있었던 '간호사'라는 길이 비교군으로 있어서 그런 것이다. 대졸자 전형으로 합격도 했었으나, 나이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고 요식업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요식업에 비하면, 간호조무사는 더울 때 시원하고 추울 때 따뜻한 곳에서 일할 수 있으며 크게 육체적인 노동을 하지 않는 '선녀'같은 직업이다. 하지만, 내가 충분히 전문대의 간호학과는 갈 수 있었음에도 대학을 진학할 때는, 그 길은 내 선택지에 없었다. 4년제 간호대만 알고 있었고 전문대 쪽으론 잘 몰랐기 때문이다.


진로 선택을 잘하지 못하여 대학졸업장이 큰 쓸모가 없고, 나이를 먹고, 장사를 관두고 여전히 고용불안에 시달리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나의 20대는 불안하고 어둡고 우울하고 추웠다. 열심히 노력해서 딴 국제무역사나 무역영어 1급 자격증이나 850이었던 토익점수는 공무원 수험준비로 인해 아무런 쓸모가 없어졌다.


그나마 엄마가 계속 준비하라던 공무원 시험을 3년 만에 포기하고 어떻게든 생활전선에 뛰어든 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한편으로, 내가 어릴 때부터 진로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과도한 간섭으로 20대까지의 내 인생을 엉망으로 만든 부모님이 나는 정말 미웠다.


자존심 때문에 43세에 대기업에서 명예퇴직 후 20년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아빠를 보며 자란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었다. 그리하여 이렇게 글을 씀으로써 내 속의 후회와 열등감을 마주하는 내 자신이 이제, 싫지만은 않다.

브런치에 글을 적는 이유도, 그 누구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그저 평범한 나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누군가는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이런 걸 우리는 '승화'라고 부른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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