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끝내고 친구랑 햄버거를 먹었다. 늘 먹던 대로 와퍼세트를 주문했다. 소스는 전부 다 뺐다. 간은 피클 하나면 충분하다. 무료로 추가할 수 있는 채소는 양상추 대신 토마토를 선택했다. 감자튀김은 소금을 일일이 털어내는 게 번거로워서 거의 매번 너겟을 고른다.
허니머스터드 없이 너겟만 먹는다. 친구들로부터 음식을 맛없게 먹는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하지만 입맛은 취향이다. 그냥 흘려듣는다.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주문할 때도 후추와 올리브유만 선택한다. 인스턴트나 패스트푸드를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짜고 매운맛을 선호하지 않는다.
여럿이 식사할 때나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받는 자리에서는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아예 심심한 메뉴를 고르거나 간을 맞춰서 먹는다. 냉면을 예로 들면 물냉은 냉수를 한 컵 가득 받아서 넣는다. 비냉은 주문해 본 적이 없다. 음식의 종류를 막론하고 간이 세지 않은 쪽을 좋아한다.
전날 좀 기름지고 자극적인 메뉴를 골랐다면 다음날은 순한 것만 찾아먹는다. 속이 편해야 맘이 편하다는 내 오랜 지론이다. 20대 때부터 그랬다. 속이 더부룩한 음식은 여간해서는 손이 가지 않는다. 편식쟁이라는 놀림 아닌 놀림을 받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물론 자극적인 음식도 곧잘 먹는다. 햄버거만 해도 그렇다.
다만 짠맛이나 매운맛을 덜어내는 것뿐이다. 라면을 끓이면 수프는 절반만 넣는다. 컵라면도 마찬가지다. 음식이 짜면 재료가 가지고 있는 맛이 무뎌진다. 단맛도 비슷하다. 아이스크림, 탄산음료, 초콜릿, 젤리도 거의 안 먹는 편이다. 수크랄로스나 스테비아 같은 대체감미료도 입에 잘 대지 않는다.
디저트는 대체로 거른다. 먹더라도 두 입을 넘는 일은 거의 없다. 케이크나 파이는 한 입이면 충분하다. 만족감의 역치가 낮은 편이다. 14년째 표준체중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까탈스럽다는 말을 듣는 식습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건강을 생각해서 음식을 가려 먹지는 않는다. 그냥 취향이다.
감각으로서 미각은 절대적이지만 맛을 즐기는 취향은 상대적이다. 법칙이나 원칙은 없다. 내 식대로 먹는 편이 제일 행복하다. 입에서 즐겁고 장에서 편하다. 만족스러워서 더할 나위 없다. 먹는 방법에 관해 조언을 가장한 훈수를 두는 이들을 종종 본다. 추천은 고맙지만 고집을 부리면 난감하다.
먹을 줄 모른다는 말을 시작으로 이런저런 설명을 늘어놓지만 설득력은 없다. 그럴 때는 늘 적당히 맞장구를 치면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식습관도 습관이다. 그리고 습관을 바꿔 말하면 버릇이다. 고치려는 쪽보다 존중하는 쪽이 더 어른스러운 접근법이다.
맛에 관해서 자기 방식을 강요하는 이를 만나면 참 곤혹스럽다. 한 번은 호의로 여기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두 번부터는 불편하다. 완곡하게 거절의사를 밝혀도 알아차리지 못할 때는 난감해진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식욕이 줄어드는 기분이다. 유명한 쌀국숫집에 갔을 때 일화가 생각났다.
친구가 채 썬 양파를 스리라차 소스에 비벼서 먹으라고 내게 건넸다. 매워서 조금만 집었더니 먹을 줄 모른다는 말이 나왔다. 이렇게 먹어야 맛있다면서 빨갛게 범벅이 된 양파를 쌀국수 위에 잔뜩 올려놨다. 정작 동남아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다 온 다른 친구는 그렇게 먹을 필요 없다는 말로 눈치를 줬다.
그 후로 그 친구와 베트남 음식을 먹으러 간 적이 없다. 의도의 호의였겠지만 받는 사람이 부담스럽다면 호의는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마음이 놓이지 않은 식사는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 잠과 밥이 주는 만족감은 긴장과 불안 없는 곳에서 극대화된다. 편안한 사람과 먹는 삼각김밥이 값비싼 파인다이닝 보다 낫다.
가시방석에 앉아서 먹는 밥은 아무리 씹어도 맘에 걸려서 잘 안 넘어간다. 정리해서 글로 쓰고 보니 편식쟁이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지만 어쩔 수 없다. 취향은 원래 고집과 습관이 모여 완성된다. 내가 주문한 햄버거를 한 입 먹어보고 친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햄버거에서 풀 맛이 난다는 감상평을 늘어놓더니 곧장 콜라를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