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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낭만, 각자도생 , 우리가 잃어버린 관계

낭만이 사라진 시대, 우리는 왜 더 외로워졌을까

by WOODYK


낭만이 살아 숨 쉬던 시간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낭만이 살아 있는 세상일 것입니다. 도와주고 감사하고 배려하며 부족한 것들을 나누어주는 낭만. 그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였습니다.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한석규는 자신의 역할을 우직하고 단단하게 어느 상황에서도 해냅니다. 현실과 환자가 동떨어지지 않은 현장에서 누가 보든 안 보든 간에 자신을 믿고 일을 해냅니다. 지키기 쉽지 않은 일들을 오직 환자의 생명을 바라보며 투쟁합니다. 그래서 그에게 '낭만닥터'라는 이름이 부여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걸 전문용어로 개멋부린다고 하지. 좀 더 고급진 말로 낭만이라... 하기야 머리 좋고 계산 빠르고 이해타산 밝은 우리 강동주 선생 눈에 낭만 같은 게 보일 리 없지... 난 너 싫어한 적 없다. 네 자격지심, 피해의식 그런 게 좀 꼴 보기 싫지. 그거 감추려고 죽자 사자 일등에만 매달리는, 네 열등의식 그게 좀 역겹지. 일하는 방법만 알고 일하는 의미를 모르는데, 의사로서 무슨 가치가 있겠니?"


이 대사는 우리 시대의 아픔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방법만 알고, 살아가는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어린 시절, 옆집은 가족처럼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집안 대소사가 있을 때는 언제라도 달려가서 서로를 도와주고 부족한 것들을 채워주는 관계였습니다. 관계로 인해 싸우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이웃이라는 공동체의 의미 속에 서로를 채워갔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골목에 나와 두런두런 이야기하다 시기가 올라오면 집에 있는 반찬들을 가져다가 양푼에 차가운 밥과 고추장, 김치, 나물들을 넣어 비벼 양푼비빔밥을 만들어 한 숟가락씩 먹던 그런 낭만들. 그것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교실이었습니다.


봄향기가 나는 냉이를 캐며 봄의 정취를 느끼고, 여름의 더위를 부채로 이겨내고 차가운 물로 등 목욕하며 툇마루에 누워 떠다니는 흰 구름을 보고, 가을의 낙엽을 밟으며 연인과 추억을 만들고, 겨울의 흰 눈을 만지며 친구들과 눈싸움하다가 눈사람을 만들던 그런 감정의 낭만. 그 속에는 자연과 사람, 그리고 계절이 함께 어우러진 삶의 온기가 있었습니다.


분절의 시대, 잃어버린 '우리'


세상이 분절되고 개인화되면서 '우리'라는 공동체는 서서히 사라집니다. 분절의 대명사는 아파트입니다. 가구의 분절로 살아가는 아파트 속에서는 나 외에 굳이 이웃과 관계를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삶의 구조가 분절과 분리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우리는 서로를 모른 채 살아갑니다.


낭만은 이제 고리타분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과거의 클래식과 같은 이야기처럼, 먼지 쌓인 LP판의 음악처럼 오래된 것으로 치부됩니다. 지금은 낭만이라는 용어조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낭만이라는 용어를 쓸 일이 별로 없기에, 낭만이라는 말이 요즘에는 의미를 둘 자리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낭만 속에는 사람이 존재합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분절되고 개인화되며 고도화될수록 우리는 무관심해지고 관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혼자서도 컴퓨터와 휴대폰으로 보낼 수 있습니다. 주변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는 상황입니다. 도와주고 감사하고 배려하며 서로의 부족함을 나누고 채워줄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각자도생의 시대입니다. '나'라는 존재조차 챙기기 쉽지 않은 세상에서 누구를 챙길 수 있겠습니까.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대한 애정도, 자신이 속한 팀에 대한 애정도, 그리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애정도 사라집니다. 오직 자신이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입니다. 누구를 챙겨주면 오히려 바보처럼 느껴지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부분들은 많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그래도 낭만은 존재했습니다


요즘 드라마 '태풍상사'를 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는 낭만이 있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IMF 시대, 모든 사람들이 어렵고 힘겨웠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망하고 직장을 다니던 직장인들은 하루아침에 자신이 다니던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어렵다고 하니 동네에 있는 아주머니들부터 금반지를 내놓고 본인들이 나서서 힘듦을 극복하기 위해 동참했었습니다.


태풍상사가 망해가고 있지만 그래도 그 애정 있던 회사를 자기 것처럼 다시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직원들. 힘들고 지쳐도 서로를 의지하고 역경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며 낭만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지금 세대에 보면 바보 같고 웃기는 일입니다. 굳이 내가 왜 그렇게 고생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 더 모으고 살아도 힘든 세상에 굳이 내가 나서서 도와주고 배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본주의가 극대화될 때 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시스템으로 다다르게 됩니다.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서 톰 크루즈는 잘 나가던 스포츠 에이전트였습니다. 어느 날 자신이 수많은 스포츠 선수들을 관리하지만 진심으로 한 명 한 명의 선수들을 애정을 갖고 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는 스스로 돈을 많이 받던 자리를 박차고 나와 한 선수를 서포팅하며 성공하도록 스토리를 만들어 갑니다. 그리고 그런 낭만을 존경하는 여인이 그를 따라가며 성공을 도와줍니다.


고통스럽고 외로운 낭만의 길을 걸어가는 제리맥콰이어를 볼 때 감정이 몰입됩니다. 그리고 그 어두운 터널을 뚫고 자신을 믿고 자신과 같이 했던 동료와 연인을 보며 눈물을 흘릴 때 낭만이란 단어가 떠오릅니다.


영화의 진짜 메시지는 진심으로 누군가를 대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라는 것을 영화는 보여줍니다.


결핍이 만드는 낭만


우리는 부족하고 미흡합니다. 결핍이 존재합니다. 그런 상황은 인간이기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인간으로서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낭만은 부족하고 미흡하고 결핍이 있기에 나오는 감정의 표현입니다. 서로가 필요로 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도와주고 배려하고 채워주는 과정들이 낭만을 만드는 것입니다.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네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또 그 사람 없이 살아가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깨달아야 하는 것은 헤어짐이 아니라 함께함의 소중함입니다. 결핍은 채워지기 위해 존재하고, 부족함은 나눔으로써 완성됩니다.


회사 안의 작은 낭만


회사생활 속에 작은 낭만들을 만들고 싶습니다. 스스로의 일들에 대해 의미를 찾고 그 의미를 직원들과 함께 나누며 배려하고 채워주고 싶습니다. 효율성과 효과성을 따져야 하고 인당 생산성을 고려하여 인력을 감축하기도 하며 일에 대한 성과를 만들기 위해 냉정하게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 아끼고 배려하고 채워줘야 할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일을 통해 얻어가는 급여의 소중함도 존재하지만 일을 통해 얻어가는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낭만이 조금이라도 존재할 수 있다면 그런 낭만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우리는 머리 좋고 계산 빠르고 이해타산 밝은 사람들입니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현실도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나'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이 어떤 의미로 존재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낭만이 살아 있기를


그것에는 정답은 없습니다. 단지, 조금은 낭만이라는 의미가 녹아 있으면 합니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낭만도 그렇습니다. 효율로 측정할 수 없고, 수치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색깔을 띱니다.


낭만이라는 단어가 고리타분한 용어로써 잘 쓰이지 않지만, 그래도 낭만이란 단어가 우리들 주변에서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단순히 옛것에 대한 향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자,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갈망입니다.


낭만은 사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를 돌아보고, 손을 내밀고, 함께 웃고 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완벽하지 않기에 더 아름답고, 부족하기에 더 소중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낭만이 살아 숨 쉬는 세상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상은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세상입니다.


가을의 토요일 아침. 귓가에 새소리가 들립니다.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을 느낍니다. 창가를 통해 시원한 바람이 흘러들어 옵니다. 오늘 하루 낭만스러운 무엇인가를 작게 하고 싶습니다. 가을이 주는 기운과 사람들간의 소통 속에 낭만스러움을 느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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