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속 음악의 순수함, 추억에 행복이 살아있다.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행복감, 침대 속 음악의 순수함, 치유

by WOODYK
난 이래서 음악이 좋아. 지극히 따분한 일상의 순간까지도 의미를 갖게 되잖아. 이런 평범함도 어느 순간 진주처럼 아름답게 빛나거든. 그게 바로 음악이야 <비긴어게인 영화 속 명대사>


퇴근 후 고요함 속 음악


퇴근 후 숙소에 들어와 지친 몸을 침대에 기댑니다. 벌써 1년의 4분의 1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하루하루의 시간이 금방 흘러가듯 달력의 숫자도 조용히 지워지고 있습니다. 그런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퇴근 후 쉬는 시간만큼은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어 집니다.


어린 시절 즐겨 듣던 팝송을 틉니다. 그 시절, 음악을 듣고 싶으면 가수의 카세트테이프를 사거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곡을 녹음해야 했습니다. 늦은 밤까지 기다렸다가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녹음 버튼을 눌러 테이프에 소리를 새겨 넣었습니다. 영어 공부용 테이프는 깨끗했지만, 음악 테이프는 너무 자주 들어 늘어지곤 했습니다. 지금의 음질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 테이프 안에는 그 시절의 추억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특히 공부에 집중해야 했던 시절, 올드 팝송은 뇌에 묘한 동기부여의 자극을 주었습니다. 연인과 헤어졌을 때 들려온 음악은 그 아픔들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대학 도서관에서 이어폰에서 흘러나온 음악들은 지금도 살아 들려옵니다.


그때 그 시절 노래들이 흘러나올 때면 어린 시절 그 장면들이 통째로 떠오릅니다. 순수함을 넘어 세상을 너무 몰랐던 철부지 시절, 그리고 어머니와 가족이 힘겹게 살아내던 어린 시절이 그대로 생각납니다.


음악이 소환하는 기억의 풍경


음악의 선율이 지금의 시점에서 더욱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간혹 감정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젊었던 시절이 떠오르고, 형제들과의 추억이 새록새록 가슴속으로 밀려옵니다. 옛 영화에 흘러나왔던 음악이 들리면, 그 영화의 장면과 화면을 바라보던 어린 꼬마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갑니다. 그 어린 시절이 지나고 어느새 중년이 되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늘 곁에만 있을 것 같았던 부모님도 이제는 곁에 없습니다. 지금의 나는 한 가족을 꾸렸고,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 있습니다. 추억의 음악을 틀어 놓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수많은 기억이 뇌의 뉴런을 강하게 두드립니다. 자꾸만 옛 시절이 생생히 떠오르고, 그때의 감정이 세포 깊이 새겨집니다.


음악은 변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나는 변해 있습니다. 음악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지만, 살아가는 동안 나는 그 추억을 잊고 지냈습니다. 음악이 주는 감동은 살아 있지만, 살아가는 동안 나 자신은 감동을 잊어 가고 있었습니다. 음악은 그렇게 우리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어린 시절의 장면을 사진처럼 펼쳐 보여줍니다. 영화 속의 음악은 마음 안에서 그 영화를 다시 살아나게 하고, 어린 시절 느꼈던 감정들이 음악과 함께 재생됩니다.


귀로 듣는 평온함


요즘 사람들은 음악보다 영상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합니다. 시각의 현혹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것입니다. 눈으로 들어오는 자극은 현란하고 격렬합니다. 그에 반해 음악은 귀로 듣기에 편안합니다. 귀의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소리는 뇌의 피로를 줄이고 뇌파를 잔잔하게 가라앉혀 줍니다.


어린 시절 들었던 음악에 세포가 반응하고, 그 시절의 추억이 소환되는 시간은 하루 종일 사회인으로서 달려왔던 시간을 씻겨 주기도 합니다. 머릿속에 가득했던 숫자와 논리, 이성적 판단, 갈등과 긴장, 그리고 타인의 시선들을 잊게 해 주고, 그 자리를 순수함으로 채워줍니다.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잃어버린 게 아니라 잠시 잊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살다 보면 순수함을 잊고 살아가게 됩니다. 어린 시절만큼 순수했던 때도 없었습니다. 사회의 시스템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 물들어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 속에 살아가는 동안 '순수함'이라는 단어를 꺼내기가 점점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순수함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본능은 음악이 귀의 감각을 흔들어 놓을 때 조용히 되살아납니다.


새벽의 클래식


저녁에 듣는 추억의 팝송이 순수함의 시간으로 되돌려준다면, 새벽에 듣는 클래식은 마음의 정화를 가져다줍니다. 하루가 시작되는 이른 시간에 흘러나오는 클래식은 자연의 숨소리를 들려주는 것처럼 마음에 평온함을 선사합니다.


클래식이 흘러나오면 자연의 선율처럼 느껴집니다. 오랜 세월을 버티고 살아남은 선율들이 현대에도 여전히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음악이 지닌 자연스러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고 자연의 흐름을 이해하는 아침의 클래식은 하루를 시작하는 에너지를 선사해 줍니다.


"음악은 감정의 언어이다.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음악이 시작된다. < E.T.A. 호프만>"



순수함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순수함을 잊고 지내는 시간 동안, 음악도 잊고 살았습니다. 옛 시절이 그리워질 때, 비로소 음악이 생각납니다. 침대에 누워 음악 선율에 지긋이 잠이 듭니다. 음악은 밤새도록 흐르고, 잠에 든 꼬마는 다시 아침을 맞이합니다.


순수함이 사라지기 전에 글을 쓰고, 클래식을 들으며 창문 너머로 흘러오는 시원한 새벽 공기를 맡습니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느낍니다. 젊음이 주체할 수 없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시간이 흐르며 차분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 이 모습은 오히려 순수함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음악의 선율이 주는 추억들은 사라지지 않고, 나이가 들수록 더욱 깊어지고 강해질 것임을 느낍니다. 순수함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잊고 있었을 뿐입니다.


음질이 떨어지는 테이프 속에서 흘러나오던 올드 팝송이 그리워지는 세월이 되어 갑니다. 그 낡은 소리 속에 담긴 감정의 온도가 어떤 고해상 영상보다 더 진하게 마음에 스며드는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도 나는 살아 있다. 중요한 것은 인생은 멈춰있는 게 아니란 것. 그래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살아야 한다. <샤인 영화 속 명대사>


매거진의 이전글싱글라이프를 떠나며, 헤어짐에 아쉬움 남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