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어른이 되는 법』
카페에서 후배가 또 물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나는 대답을 했다. 말이 너무 잘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졌다. 방금 한 말 중 몇 개는 확실히 모르는 내용이었다. 나는 아는 척을 했다. 나이가 더 많다는 이유로,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생각해 보니, 누가 세상의 모든 걸 알 수 있을까. 내가 아는 것들은 내 경험의 범위 안에서만 반짝인다. 그 바깥은 쉽게 어두워진다. 그런데도 나는 종종 그 어둠을 밝은 척 덮었다. 괜히 안심을 주고, 나도 안심했다. 그러다 뒤늦게 사실을 확인하고는 멋쩍게 “그땐 내가 잘 몰랐네”라고 덧붙였다. 그 한마디가 더 부끄러웠다. 처음부터 말했어야 했다. 나는 모른다고.
모른다고 말하는 순간, 이상한 평화가 찾아온다. 책임을 비끼는 평화가 아니다. 정확함을 선택한 평화다. 관계에는 신뢰가 한 겹 더 얹힌다. “이 사람은 아는 건 아는 대로,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말하는구나.” 그 신뢰가 대화를 안전하게 만든다. 안전해지면 질문이 더 깊어진다. 질문이 깊어지면 배움이 시작된다.
나는 요즘 이렇게 말한다.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는데.”
그리고 한 줄을 더 붙인다.
“같이 찾아볼까?”
그러면 대화의 모양이 바뀐다. 강의실에서 복도 쪽으로.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옆에서 옆으로. 우리는 스마트폰을 꺼내고, 검색을 하고, 가장 최근 자료를 확인하고, 서로가 놓친 부분을 이어 붙인다.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답을 찾는 동료가 된다.
아는 척의 비용은 생각보다 크다. 그 자리에서는 체면을 지킨 듯 보인다. 대신 나중에 수정 공지를 내야 한다. “그때 내가 한 말, 일부가 틀렸어.” 신뢰는 그 지점에서 금이 간다. 반대로 모른다는 한 줄은 그 자리에서 조금 쑥스럽다. 대신 나중의 비용이 없다. 정확함은 늘 뒤늦게라도 이득이 된다. 처음의 쑥스러움이 가장 싸다.
모른다고 말하는 건 비워 내는 기술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여백이 있어야 새로운 문장을 쓸 수 있다. 모름을 인정하면, 질문이 자란다. “왜 모를까?”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까?” “누구에게 물어보면 좋을까?” 이런 질문이 방향을 만든다. 그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조금 덜 모르게 된다. 그 ‘덜’이 쌓여 노련함이 된다.
나이와 체면이 우리를 조급하게 만든다. “모른다”고 말하면 작아지는 것 같아서. 그런데 실제로 작아지는 건 체면뿐이다. 사람은 오히려 커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름을 인정한 사람만이 배울 자격을 얻기 때문이다. 배울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기꺼이 가르친다. 가르침은 그렇게 흘러온다.
예전에 한 번은 큰소리쳤다. “그거, 이렇게 하면 돼.” 후배가 그대로 했다가 손해를 봤다. 결국 내가 사과했다. 그날 이후로 기준을 세웠다. 확신의 근거가 없으면 말의 크기를 줄인다. 사실을 확인하기 전에는 판단을 미룬다. 모른다는 말이 길을 늦추지는 않는다. 오히려 길을 틀리지 않게 해 준다.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는 혼자가 아니라 관계의 용기다. 상대를 함부로 끌고 가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내 권위를 보호하는 대신, 그의 시간을 보호하겠다는 선택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런 순서를 따른다. 먼저 모른다고 말한다. 함께 찾아본다. 찾고 나면 출처와 날짜를 남긴다. 틀리면 바로 고친다. 이 단순한 순서가 대화를 맑게 한다.
그 친구는 여전히 질문이 많다. 나는 이제 다 답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더 많이 묻는다. “너는 왜 궁금했어?” “이 답으로 무엇을 결정하려고 해?” 질문이 목적을 드러내면, 검색의 방향도 또렷해진다. 우리는 그 목적을 기준으로 정보를 고른다. 그 과정에서 나는 종종 내가 몰랐던 나를 배운다. 나는 이런 걸 잘 모르는구나. 나는 이런 부분에서 빨리 단정짓는구나. 그 알아차림이 다음 대화를 조금 더 정확하게 만든다.
어른이 된다는 건 완전해지는 일이 아니다. 정확해지는 일이다. 정확함은 많이 아는 데서만 오지 않는다. 모르는 것을 분명히 하는 데서도 온다. “그건 잘 모르겠어”라는 한 줄이, 누군가의 하루를 돌아가게 만들 때가 있다. 괜히 설득하지 않고, 잠깐 멈추게 만든다. 멈춤은 때로 최고의 조언이다.
오늘도 누군가가 묻는다. 나는 숨부터 고른다. 대답보다 먼저 확인한다. 내가 정말 아는가. 아는 척이 나와 그 사람을 어디로 데려갈까.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모르겠어. 같이 알아보자.”
그 순간, 우리는 같은 편이 된다. 그 편안함 덕분에, 우리는 더 멀리 간다.
모름을 인정할 때, 비로소 배움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