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포털의 메인 화면을 열면 어김없이 추천 목록이 줄지어 기다린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영상”
“당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보는 글”
“취향 저격 플레이리스트”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어느새 세상이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내가 웃을 만한 영상,
내가 공감할 만한 글,
심지어 내가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들까지
알고리즘이 미리 내밀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내 인생에 오래 남은 사람들은
이런 추천 목록에선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이들이다.
회사 근처 편의점에서
매일 지나치던 야간 아르바이트생,
동네 산책로에서 자주 마주치다가
어느 날 인사를 나누게 된 노년 부부,
지하철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아
한참 대화를 나눈 낯선 사람.
이 사람들은
내 검색 기록에도, 내 재생 목록에도 없다.
같은 영상을 본 적도 없고,
서로의 SNS를 팔로우한 적도 없었다.
알고리즘이 찾아내는 공통점은 하나도 없었지만,
오히려 그런 만남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추천 알고리즘의 원리는 단순하다.
“나와 비슷한 취향”
“내가 좋아할 가능성이 높은 것”
“내가 오래 머물 것 같은 곳”
이 세 가지를 바탕으로
데이터가 쌓이고, 분류되어, 내게 보인다.
그래서 갈수록
나와 비슷한 사람,
나와 비슷한 생각,
나와 비슷한 분노만 마주치기 쉬워진다.
편하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금방 통해서 좋다.
긴 말을 할 필요도 없다.
서로 다툴 일도 줄어든다.
하지만 그 편안함 속에서
어느새 하나가 사라진다.
“나와 다른 사람을 견디는 힘.”
인문학에서는 인간을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라고 말한다.
같은 시대, 같은 도시에서 살아도
서로 다른 경험과 기억을 안고
각자의 세계를 품고 살아가는 존재니까.
그래서 관계란
원래부터 ‘비효율’을 전제로 한다.
서로 오해하고,
다시 설명하고,
상처를 주기도 받고,
그래도 또 한 번 만나 보는 과정,
그 자체가 관계의 기본값이다.
하지만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이런 비효율이 곧 ‘손해’처럼 여겨진다.
이해하기 힘든 사람,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
다른 의견을 자주 내는 사람은
내 화면에서 조금씩 사라진다.
내가 일부러 지운 게 아니라,
알고리즘이 계산한 결과
“머무를 확률이 낮은 대상”이라고 조용히 분류해 두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가장 많은 걸 배우는 관계는
대부분 이 비효율적인 인연에서 시작된다.
생각이 다른 친구,
세대가 다른 선배,
성격이 잘 맞지 않는 동료,
처음엔 어색하거나 불편해서 피하고 싶은 사람.
이들과 마주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오해를 풀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쓰며,
각자 방식대로 다름을 견디는 순간에
우리는 천천히 넓어진다.
인간다움이란
결국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힘’인데,
이 힘은 비효율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자랄 수 없다.
데이터의 언어로 관계를 볼 때
우리는 자꾸 먼저 숫자를 떠올린다.
“구독자 1만 명”
“팔로워 3천 명”
“친구 목록 500명”
숫자가 커질수록
관계가 더 풍부해진 듯하지만,
실제로 내가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그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숫자는 편하다.
감정이 필요 없다.
한꺼번에 묶어서 따질 수 있다.
하지만 이름은 다르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특유의 말투,
메시지에 붙이던 이모티콘,
서툴게 웃던 표정,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건넸던 한마디까지
함께 따라온다.
그래서 인문학에서는
“타자를 그냥 추상적인 존재로만 보지 말라”라고 자주 이야기한다.
‘사용자’, ‘고객’, ‘팔로워’ 같은 표현이 편리하긴 해도,
사실 그 안에는 저마다 다른 삶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어딘가에는
이혼 소송으로 힘겨운 시간을 견디는 사람이 있고,
사회에 처음 발을 디딘 이도 있으며,
사랑하는 아이를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도 있다.
우리가 모든 사연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완전히 모른 척 지나치지는 않아야 한다.
“이들은 숫자가 아니라, 이름을 가진 존재다.”
이런 마음가짐이야말로 관계에서 지켜야 할 윤리가 아닐까.
알고리즘은
우리가 오래 머문 것만 계속해서 추천한다.
하지만
정말 소중한 인연은
내가 의식적으로 그 자리에 남기로 마음먹는 순간에 시작된다.
조금 불편한 자리라도 한 번쯤 더 찾아가 보는 것,
그 사람을 더 알고 싶어서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네고,
때로는 묵묵히 침묵을 함께 견디고,
어색한 말도 기다려 주는 시간.
이런 시간들은
데이터만 보면 비효율적으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이런 ‘비효율’이 없다면
“너라서 고마운” 관계 역시 생겨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인연은
알고리즘이 대신 골라 준 사람이 아니라,
내가 직접 마음을 쏟아 선택한 그 사람이다.
AI 시대에 관계를 지킨다는 건
거창한 기술윤리 이야기가 아니라
생각보다 더 단순하고 소박한 자세에서 시작될 수 있다.
메신저 목록을 조용히 내리다가
어느 이름 앞에서 괜히 손이 멈춘다.
“내가 정말 이 사람의 안부가 궁금한가?”
스스로에게 살짝 물어보는 것.
댓글창에서는
익명의 아이디만 바라보지 않고
“이 글을 쓰는 사람도
어딘가에서 오늘 하루를 견디고 있겠지” 하고
한 번쯤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는 것.
수많은 추천 목록을 스쳐 지나가다
알고리즘이 고르지 않은 누군가에게
일부러 먼저 연락을 해보는 일도 있다.
이런 작고 소소한 선택이 쌓이면
관계는 다시 ‘이름’을 되찾는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추천 알고리즘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이미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들었으니까.
그래도 그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게 있다.
“세상이 대신 골라준 사람들”만으로
내 삶을 채우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알고리즘이 미처 포착하지 못하는 작은 틈,
추천 목록에 오르지 않은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내 마음을 더 넓게 만들어 주는 인연이 자란다.
그래서 오늘도
스크롤을 내리다 잠시 멈추고 싶어진다.
데이터가 아니라 이름,
추천이 아니라 내 선택으로
누군가 한 사람을 떠올려본다.
그리고는 조용히,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오늘 내가 소중히 지킨 인연은
‘팔로워 수’가 아니라
이름을 가진 그 한 사람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