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감정 – 감정의 속도는 인터넷과 다르다

《AI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by 박동욱


메신저 알림 소리가 한 번 울린다.

잠깐 내려뒀던 휴대폰을 또 집게 된다.


‘읽음 표시가 떴네.’


상대가 내 메시지를 확인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답장이 오지 않는다.

1분, 3분, 10분.

시간이 흐를수록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혹시 화가 났나?’

‘어려운 내용이라 대답을 피하는 건가?’

‘내가 괜한 말을 했던 걸까?’


알고리즘과 시스템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읽었으면 바로 답해야지.’

‘올렸으면 바로 반응이 와야지.’


인터넷 세상에서 시간은 번개처럼 빠르다.

읽고, 보고, 누르는 일이 한순간에 지나간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속도는 이렇게 빠르지 않다.


읽었지만 정리가 안 되는 말들,

보고도 말을 꺼내지 못하는 감정들,

괜히 신경 쓰이지만 지금은 답할 여유가 없는 질문들.


사람의 마음은 늘 그 뒤를 따라온다.

조금 늦게, 아니 어쩌면 꽤 한참 뒤에 도착하곤 한다.


그래서 감정의 속도와 인터넷의 속도는

서로 맞출 수 없는 두 개의 시계처럼 각자 움직인다.


누군가 상처 주는 말을 툭 던지면

알고리즘은 그 말을 바로 온 세상에 쏟아낸다.

캡처하고, 퍼 나르고, 한 줄씩 잘라서 여기저기 공유한다.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했대.’

‘이 장면이 논란이래.’


인터넷은 재빠르게 판단하고,

순식간에 분노가 옮겨 붙는다.

사람들은 ‘이건 아니지’ 하며 모여들었다가

또 금세 다음 이슈로 넘어가 버린다.


하지만 그 한 마디를

온몸으로 받아낸 사람의 시간은 다르다.


상처는 금세 아물지 않는다.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그 말이 반복된다.

준비도 안 된 채 듣게 된 쓴 말,

예상하지 못했던 비난,

가볍게 한 농담 같았는데

혼자 집에 가는 길에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에 새겨지는 느낌.


‘내가 이런 말까지 들어야 했나.’

‘정말 그렇게 보였던 걸까.’


이런 질문들이 며칠이고 가슴속에서 맴돈다.

인터넷은 이미 새로운 이슈로 넘어갔지만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은 그날 그 자리에 멈춰

계속 그 말을 되뇌고 있다.


알고리즘은 다음 소식을 보여 주지만,

마음은 이전 이야기에 여전히 묶여 있다.


위로도 마찬가지다.


힘들다는 글을 올리면

댓글과 메시지가 순식간에 쏟아진다.


‘힘내요.’

‘곧 괜찮아질 거예요.’

‘지금도 잘하고 있어요.’


이런 말들이 고맙긴 하다.

화면 속에는 따뜻한 응원이 가득하다.

그런데 창을 닫으면

방 안의 공기는 아무 일 없던 듯 고요하다.

몸에 남은 무거움도 그대로다.


사람은 안다.

위로하는 말들이 악의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걸.

그래도 마음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위로가 별 효과가 없는 게 아니라

바로 힘이 되지 않을 뿐이다.

한 번의 다정한 말이

금방 상처를 덮어주지 않는다.

며칠, 몇 주, 때로는 몇 달이나 지나

어느 날 문득 힘이 되어 떠오르기도 한다.


‘그때 그 사람이 내게 그런 말을 해줬었지.’


이렇게 뒤늦게 찾아온다.

사람 마음의 시간표는 늘 좀 뒤늦게 도착한다.


사과도 마찬가지다.


메신저로 ‘미안해’ 하고 전하면

왠지 할 일을 모두 끝낸 듯한 기분이 든다.

내 입장에서는 용기를 내어

마음이라도 문자로 전한 거니까.


하지만 그 사과를 받은 사람의 마음은

금방 답을 내리지 못한다.


‘그래, 괜찮아’라고 쓰려다가도

막상 손이 멈춰진다.

머리로는 이해해보려 해도

감정은 아직 그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인터넷은

사과조차 재빠른 처리를 요구한다.


‘사과했는데 왜 용서 안 해?’

‘빨리 지나가는 게 서로 안 편해?’


하지만 실제 마음의 움직임은

이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용서는 결정을 내린다고

바로 그 자리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결정 후에도

감정이 끌려오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사과도, 용서도, 그리고 회복도

모두 느린 쪽에서, 천천히 이루어진다.


문제는

우리가 이 느린 속도를

자꾸 ‘잘못’이라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나는 왜 이렇게 오래 끌지?’

‘남들은 다 금세 괜찮아지는 것 같은데.’

‘나만 뒤처진 사람 같네.’


그런데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상처를 덜어내지 못해서,

위로가 바로 힘이 되어주지 않아서,

억지로 웃어넘기지 못해서,

한동안 같은 자리에 머무는 사람.


이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속도를 강요하지 않는 사람이다.

자기감정의 시간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 느린 인정이 어쩌면 인간다움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AI와 알고리즘은 점점 더 ‘즉각 반응’을 요구한다.

실시간 댓글, 실시간 좋아요, 실시간 검색어, 실시간 트렌드.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지금 어떤 기분인지,

바로 보여 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정작 인간의 마음은 ‘실시간’보다는 ‘머뭇거림’에 훨씬 가깝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한 번쯤 삼키는 순간,

굳이 답장을 늦추는 작은 망설임,

눈물을 꾹 참지 않고 조용히 흘리는 밤.

이 느린 순간들 덕분에 사람은 관계를 덜 망치고,

자기 자신도 조금이나마 지켜낼 수 있다.


모든 감정을 실시간으로 꺼내 보이며 관계는 순식간에 타오르고,

곧 타버린다.

조급하지 않게,

조금 늦게 꺼내야만 지켜낼 수 있는 것들도 있다.


그래서 AI 시대에 우리가 꼭 지켜야 할 것은 대단한 감정 이론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아주 단순한 습관, 작은 태도들 일지 모르겠다.


상처 입은 친구에게 “얼마나 힘들었어?”라고 먼저 묻고,

서둘러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 마음.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 같은 말을 급하게 꺼내지 않고,

한 번 더 삼킬 줄 아는 용기.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이제 괜찮지?”라고 서둘러 재촉하지 않고,

오히려 “아직 힘들지?”라고 먼저 다가서는 따뜻함.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왜 아직 이러고 있어?” 대신

“이 정도면 아직 힘들 수 있지”라고 다독여 주는 연습.


이런 태도들이 바로 감정이 가진 느린 속도를 인정하는 연습이다.


상처가 아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며칠만 지나도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일을,

또 어떤 이는 몇 년이 지나도 쉽게 입 밖에 내지 못한다.


위로가 스며들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위로는 샤워기보다는 가습기에 가깝다.

한 번에 쏟아붓는 물줄기가 아니라,

눈에 드러나지 않는 작은 입자가 천천히 퍼지듯,

마음도 조금씩 채워진다.


그래서 위로란 “그때 바로 괜찮아졌어”가 아니라,

“돌아보니, 그때 네 말이 나를 버티게 해 줬어”라는 문장으로 기억된다.


이 느리고, 불편하고, 답답한 시간들을 견딜 줄 아는 힘이 바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인터넷이 요구하는 속도와 마음이 움직이는 속도 사이에서 우리는 매일 흔들린다.

그래도 하루 한 번쯤은 자기에게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

“오늘 내 마음의 속도는 이 정도야. 빠르지 않아도 괜찮아.”


답이 조금 늦어도 되고,

당장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직 웃을 준비가 안 된 날에는

억지로 농담을 받아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이 느린 속도를 지켜낼 수 있다면,

AI와 알고리즘이 아무리 빠른 세상을 만들어도,

사람의 마음은 자기만의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인간다움이란 ‘얼마나 빨리 느끼는가’가 아니라,

‘느린 마음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가’에 달려 있다.


잠시 인터넷의 시간을 내려놓고, 자기 마음의 속도계를 바라보는 하루.

그 일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직 충분히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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