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이끌어 준 여행
뉴욕(New York)을 여행 중이었을 때, 뉴욕에 관한 음악들을 들으며 걷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세상엔 뉴욕을 소재로 한 노래가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당시 내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던 뉴욕 관련 노래는 4곡이었다.
제일 먼저 플레이 한 노래는 제이지(Jay-Z)와 알리샤 키스(Alicia Keys)가 함께 한 'Empire state of mind'. 노래 시작부터 강하게 울리는 드럼 킥 소리는 내 심장을 강타하며 흥분시켰고, 콘크리트 정글(Concrete Jungle)이라고 비유하며 뉴욕을 여러 번 부르짖는, 알리샤 키스의 포효에 가까운 목소리는 내 눈에 들어온 맨해튼(Manhattan)의 빌딩 숲과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Tribeca(트라이베카)'에 살고 있다는 제이지의 랩 가사는 나를 그곳으로 향하게 만들었고, 그곳에서 가장 눈에 띄던 건물을 보며 '저런 건물 꼭대기쯤에 제이지가 사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럼 비욘세도 살겠네?'라는 생각까지.
센트럴 파크(Central Park)를 거닐 땐 노라 존스(Norah Jones)의 'New York city'를 플레이하며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혔고, 벤치에 앉아 광합성을 하며 듣기에 참 좋은 곡이란 생각을 했다. 지금은 잠자기 전에 듣는 노래 중 하나가 됐고, 들으면서 센트럴파크의 평화로운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한다. 비록 가사 속의 뉴욕은 아름다운 병(beautiful disease)이란 말로 표현되지만…
피아노 전주만 들어도 많은 사람들이 흥분하는 빌리 조엘(Billy Joel)의 'New York state of mind'은 뉴욕의 야경과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정작 뉴욕 여행 중엔 야경을 보며 감상 할 생각을 못했다. 그리고 가사처럼 그레이하운드(Greyhound)를 타고 허드슨 강변을 쭉 따라가는 여행 또한 당시엔 생각지 못했었다. 뉴욕을 다녀온 지 몇 개월이 지난 지금, 빌리 조엘의 목소리는 내게 ‘넌 이미 뉴욕에 다시 갈 이유를 두 가지씩이나 갖고 있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스스로를 고독한 이방인 취급하던 영국 가수 스팅(Sting)의 'Englishman in New York'은 현재의 뉴욕과는 거리가 먼 가사임이 분명했다. 현재의 뉴욕은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훨씬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타임스퀘어(Times Square) 광장은 '이곳은 중국령인가?'싶을 정도로 많은 중국인들이 있었고, 한국말도 쉽게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스팅이 노래하던, 영국인이라는 이유로 고독을 느끼던 뉴욕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노래 가사의 주인공처럼 아침에 꼭 차(Tea)와 한쪽 면만 구운 토스트를 고집할 영국인은 얼마나 남아있는지, 스팅이 지금의 뉴욕을 바라보며 후속 버전을 새로 만든다면 어떤 가사가 나올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뉴욕을 여행했던 한 친구는 '뭐 한 이틀 있어 보니까 그냥 계속 도시라 그저 그렇던데요.'라는 말을 했었다. 반면 나는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던 노래들 덕분에 그가 느끼지 못했을 부분들을 생각하며 여행할 수 있었고, 관광책자에 나오지 않은 코스도 다녀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가이드 북뿐 아니라 ‘가이드 뮤직’도 꼭 챙겨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