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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Sep 13. 2023

안 터지는 스마트폰을 쓰는 이유

[취향의 발견] 블랙베리에서 구글폰으로

  3년간 쓰던 블랙베리 키2 (Blackberry Key2)에서, 구글 픽셀 6a (Google Pixel 6a)로 바꿨다. 아이폰도 갤럭시도 아니고, 국내에 정식발매된 전화기도 아니다. 40만 원짜리 해외직구폰에 1만 2천 원짜리 알뜰폰 요금제를 쓴다.


  블랙베리 스마트폰이 스마트함을 잃어가고 있었다. 카카오톡 대화창의 이미지가 뜨는데 1초 이상이 걸리며, 때론 전화가 끊어지기도 한다. 고속도로를 달릴 땐 내 전화기가 중부고속도로를 통화불능 지역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랬다.


  그런데, 또 전화가 안 터지는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정식발매가 안된 직구폰은 5G 시대에 3G통신망을 이용해야 한다. 최신폰들은 5G를 지원하는 것도 있지만, 구글 픽셀 6a는 4G 폰이다. 데이터는 4세대인 LTE를 쓸 수 있지만, 통화는 3G밖에 안된다. LTE로 통신을 하려면, VoLTE 패치를 별도로 설치해야 한다. 해외 자급제 스마트폰인 경우 한국의 통신 3사의 프로파일이 없어 별도로 깔아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3년 전 블랙베리를 세팅할 때만 하더라도, ‘블랙베리 스마트폰’ 같은 카페에 가입해서, 몇 날 며칠을 헤매어서 패치를 깔고, 대리점 가서 OMD(단말기자급제폰) 등록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구글폰으로 옮기면서, ‘구글 레퍼런스 포럼’이라는 이름부터 전문성이 넘쳐흐르는 카페에 가입해 조금 따라 해 보려 하다가, 한 시간 만에 포기했다. 패치를 설치하면 LTE로 쓸 수 있지만, 전형적인 문과생인 나는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요즘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따라가야 할 것이 너무 많게 느껴진다. 내 나이 마흔일곱.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과 버려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할 나이. eSIM, 듀얼 물리 SIM, APN, IMEI 등, 예전에는 알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스스로 거부하기 시작했다. 결국, 난 그 임계점을 넘지 못했다. 그저 SIM카드를 꽂고 껐다켰다를 반복, 알뜰폰 통신사와 통화해서 OMD등록 확인으로 간단히 끝냈다. 그래서 나의 구글폰은 5G 시대에 4G도 쓰지 못하고, 3G통신망을 이용한다.


  블랙베리를 쓰던 시절에는 마치 공중전화에서 건 것 같은 통화품질로, 산속이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오바마폰부터 시작해 3대나 써온 블랙베리의 쫀득한 QWERTY 키보드는 버리기 어려운 옵션이었다. 블랙베리 키2가 버벅거리기 시작하고, 키3가 나올 거란 루머가 있어 기다리고 있었지만, 블랙베리는 작년, 마침내 사업을 접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엄지손가락에 묻어나던 블랙베리의 키감이 그립다. 마치 영광스러운 IBM 시절 Thinkpad 노트북의 쫀득한 키감과 빨콩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처럼.


  작년 말에 해외의 유명유튜버가 글로벌 스마트폰 16대의 카메라 성능 테스트를, 2100만 명을 상대로 블라인드 테스트 했다는 기사를 봤다. 당당하게 우승한 구글 픽셀 6a. 거기에는 iPhone 14 pro도 있었고, 갤럭시 S22도 있었다. 갑자기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라이카에서 200만 원이 넘는 라이카 라이츠폰2를 발매했다. 라이카 즈미크론 렌즈가 들어가 있었다. 라이카 M6의 슬라이드 필름과 D-lux 디카의 색감을 잊을 수가 없었던 나는 잠시 흔들리기도 했으나, 이 또한 카메라만 달린 전화도 잘 안 터지는 스마트폰인 라이츠폰2를 살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200만 원 이라니.


  딱, 그 타이밍에 접한 구글 픽셀 6a에 대한 기사는, 블랙베리에서 넘어갈 완벽한 명분을 선사해 주었다. 보급형 기기인데 사진도 잘 나오는. 그렇게 지난 4월 홍콩에서 온 구글폰을 한 5개월 정도 써봤다. 갤럭시 안드로이드는 써보지 못했지만, 구글의 레퍼런스폰답게 안드로이드가 착착 잘 돌아간다는, 구글레퍼런스포럼의 전문적인 글들이 이해가 되는 듯 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넥서스부터 구글의 오리지널리티가 반영된 운영체제라고 믿게 되는.


  보급형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작년에 출시된 신상 스마트폰이라 그런지, 통화품질도 블랙베리보다는 나아졌다. 쨍쨍한 디지털 사운드는 아니지만, 약간은 먹먹한 LP를 듣는 듯한 느낌이다. 구글의 AI기술로, 어시스턴트 및 음성인식도 좋고, 구글포토의 다양한 기능도 쓸 수 있어 아주 마음에 든다. 통화품질만 제한다면.


  나는 굳이 왜 남들은 거의 쓰지 않는, 전화도 잘 안 되는 전화기를 쓰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을 때, 반사적으로 “개취니까 존중해 줘”라고 얘기했던 게 떠올랐다.

 

  나의 취향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남들과는 다른 어떤 것에 대한 추구. 튀고는 싶지만 튀고 싶지 않은. 혼자서 만 알고 싶은, 남들은 모르는데 나만 아는데서 오는 쾌감. 그리고 그걸 알아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 지구별에서 외계행성 고향사람을 만난 것 같은 느낌. 「비포 선라이즈」에서의 만남처럼, 서로 읽고 있는 책으로 고향사람임을 알아보듯이.

  나의 취향에 대해서는 이 매거진을 통해 정리해 보면서 조금씩 알아가 볼 생각이다. 


  근데, 정말 외산 미정발 보급형 폰을 메인폰으로 사용하는데 문제없냐고?

  문제없다. 아이폰 14 pro를 메인으로 쓰니까. 그런데, 구글픽셀6a는 블랙베리와는 다르게 메인폰으로 써도 무방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상대방이 아날로그 한 LP사운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조건 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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