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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스타 Nov 17. 2020

시가와 처가의 첫 정상회담, 상견례

D-189, 성공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

결혼은 흔히 집안 대 집안의 만남이라고 불린다.

만남의 시작은 연인에서 시작되지만, 단순히 둘의 좋은 마음만으로 결혼까지 이르기는 쉽지 않다. 결혼을 통해 신랑 신부의 가정이 새롭게 생길 뿐만 아니라 기존의 가정에서도 새로운 구성원을 받아들이는 변화가 있기에, 신랑 신부와 부모님, 가족들 모두 서로 마음을 열고 새로운 가족을 환영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중 첫 번째, 양가의 부모님이 직접 만나는 자리가 상견례다.



사실 는 당연히 상견례가 모든 결혼 준비의 출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결혼을 준비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결혼 준비는 대략 8개월~1년 전부터 시작하면서 상견례는 결혼 준비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즈음 는 것 같았다.


인륜지대사인 결혼을 준비하며 상견례가 첫 순서가 아니라는 에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나에게, 지인은 한 가지 비유를 들려주었다. 바로 정상회담에 관한 이야기였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만, 두 국가의 정상은 그 자리에서 안건 하나하나를 밑바닥부터 짚어가며 토론하지 않는다. 사실상 구체적인 내용은 각 국가의 실무자 선에서 충분한 검토와 협의가 이뤄졌으며, 실무자가 각각의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승인받은 절충안은 이미 회담 전에 완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후 두 대통령이 직접 만났을 때에는, 그들은 그저 이미 합의된 결론을 시나리오대로 이야기하고 악수를 하며 미소를 띤 얼굴로 사진을 찍을 뿐이다.


상견례 이와 비슷하다. 예식장 위치는 어디로 하고 예식 날짜는 언제가 좋을지, 신혼집은 어디에 어떤 방법으로 구할 것이고 자금 조달은 어떻게 할 것인지, 혼수와 예물, 예단은 누가 어느 정도로 부담할 것인지, 자칫 잘못하면 서로의 기분이 상할 수 있는 민감한 주제에 대해 신랑 신부의 부모님 직접 협의하는 것은 의도치 않게 얼굴을 붉히거나 서로 마음이 상하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구체적인 의사결정에 대해서는 신랑 신부가 각자의 부모님께 먼저 따로 말씀드리고, 양가 부모님의 입장을 듣고 다시 신랑 신부 선에서 서로 조율하고, 최종적으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하는 것이다. 이후 상견례에서 양가 부모님께서는 서로 인사를 나누시고 새롭게 가정을 시작하는 자녀들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집집마다 상황이 다르고 부모님의 생각이 다를 수 있기에 결코 이 방법 정답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부모님이 무겁고 예민한 주제보다는 훈훈하고 좋은 분위기에서 이야기 나누기를 바라며, 원활한 정상회담을 위해 발로 뛰는 실무자의 선제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상견례를 준비하며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메뉴가 무엇인지 미리 여쭤보고, 양가 모두 오고 가기 편한 위치가 어디일지 지도를 뒤져보고, 상견례 중 어색한 타이밍에는 적당히 음식 얘기를 나누실 수 있도록 코스 요리가 가능한 곳을 알아보고, 우리의 예산을 고려할 때 적절한 가격대가 어느 정도일지 의논했다.


위치와 예산, 메뉴와 후기까지 꼼꼼히 비교하며 식당을 결정한 뒤에는 별도 방 예약이 가능한지, 따로 신발을 벗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지, 좌석 배치 등 미리 고려해야 할 상견례 예절이 있는지, 누가 언제쯤 계산하는 게 적절할지 열심히 알아보았다.


서로의 부모님께 자신의 자녀가 아니라 상대방의 자녀를 칭찬해 주셔야 된다며 거듭 부탁드리면서, 부모님 모두 조금이라도 기분이 상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드디어 다가온 상견례 당일.

걱정이 무색할 만큼 따뜻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의도치 않게 부모님들께서 처음 마주친 장소가 식당 안이 아니라 식당 화장실 앞이었기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부모님께서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만나게 되었다며 웃으면서 인사하셨다.


상견례는 예비 시아버지의 식전 기도로 시작되었고, 자녀 칭찬보다 서로에 대한 칭찬을 먼저 주고받으셔서 그런지 대화 주제 역시 나와 남자친구보다는 부모님들의 이야기가 더 많았다.


부모님 두 분께서 어떻게 만나셨는지, 어떻게 자녀를 키우셨고 그동안 어떤 기쁨과 어려움이 있으셨는지, 그리고 그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신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의 결혼생활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신지.


원래 상견례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자리인가 싶을 정도로 따뜻했고, 신랑 신부가 이렇게 소외되는 자리인가 싶을 정도로 네 분의 부모님들께서는 화기애애하게 본인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셨다. 나와 남자친구는 긴장을 완전히 풀지는 못하고 음식이 나올 때마다 부모님께서 편하게 드시는지 확인하고, 잔에 물이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계속 살피고, 덥거나 불편하신 건 없는지 눈치를 보긴 했지만, 하나도 체하지 않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듣고 배부를 정도로 아낌없이 먹었다.



 예약해둔 2시간의 식사시간을 전부 채워 이야기를 눈 뒤, 시아버지께서 주섬주섬 외투를 걸치면서 말씀하셨다.


"우리 사진 한 번 찍을까요?"


상견례 날 처음 본 사람들끼리 사진이라니, 조금 낯설기는 했지만 그만큼 오늘의 분위기가 참 따뜻구나 싶었다.

나와 남자친구에게도, 그리고 부모님들께도 기분 좋은 첫 만남이자, 서로에 대한 마음들이 전해졌던 시간이었던 것 같았다.




상견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오늘을 하나하나 돌아보는데, 뭔가 마음이 먹먹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동안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고, 부모님이 보시기에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도 많았기에 서로 싸우기도 하고 눈물도 많이 흘렸던 것이 생각나서였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서 이렇게 나와 남자친구를 믿어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존중응원해주셨기 때문이었을까.


나름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큰 일 앞에서는 아이처럼 걱정하고 긴장하는 나 오히려 따뜻하게 로하고 안심시켜 주신 부모님이 변함없이 든든하고 감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그동안 남편과 아내로서, 부모로서,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들으며 그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고 존경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부모님들께서 서로 마음을 열고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시고, 자신의 자녀뿐만 아니라 서로의 자녀까지 신뢰하며 응원해 주셨기 때문이었을까.


이 따뜻한 분위기 양가 부모님들이 정말 좋은 분이기 때문도 있지만, 그만큼 자녀를 사랑하셔서 이미 만나기 전부터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주셨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결혼을 한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보다.

이전에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따뜻한 마음을 발견하고, 그 마음에 나 역시 사랑과 감사로 답하고, 그 사랑이 우리 가족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결혼을 통해 새롭게 만나가족, 그리고 함께 이뤄갈 가족에게 흘러가는 것.


사랑이 남녀 둘에게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로 흘러가고 흘러오기에, 결혼을 집안과 집안의 남이자 하나됨이라고 하는가 보다.



우리의 첫 만남의 따뜻함이 앞으로 변함없이 이어지길, 사랑의 마음이 부부 안에만 고여있지 않고 우리의 부모님과 서로의 가족을 향해서도 아낌없이 흘러갈 수 있기를, 그 사랑 안에서 모두 행복을 누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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