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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Mar 20. 2018

직장에서 다면평가란.

새로 부임한 대표이사는 의욕적이었다.

연공서열이 아니라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승진시키고, 높은 직책을 맡게했다. 그 과정에서 대표이사 개인의 판단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기에 기존 평가방식 외 다면평가를 새롭게 도입했다.  많은 회사들이 하고 있는 평가였지만, 우리 회사는 경험치가 없다보니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다면평가를 한 첫 해는 그야말로 상처만 남은 전쟁터 같았다.  평가가 아니라 못마땅함을 감정적으로 해소하는 출구 역할을 했다.  서로에게 가졌던 불만을, 익명이 보장된다는 믿음하에 아주 강도 높은 비판의 소리로,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표현했다.   더구나 처음 다면평가를 실시할 때에는 하급자가 상급자만 평가하도록 했다.  실은 이런 한 방향으로의 다면평가는 진정한 다면평가라고 말할 수도 없었지만, 새로 부임한 대표이사는 조직이 안고 있는 문제점의 상당 부분이 리더들의 문제라고 봤으며, 이런 평가 시스템을 통해 팀장 이상의 직책을 맡은 사람들에 대한 직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했다. 팀장들과 본부장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결과물을 받아 든 대표이사는 리더 뿐 아니라 무조건적인 비판을 하는 일부 직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지만, 직책을 고 있는 사람들을 순서대로 줄을 세운 결과물을 보고 본인의 결정에 힘을 더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하급자들간의 동료평가를 실시했다.  윗 상사를 비판만 했던 직원들은 본인도 평가의 대상이 되자 좀 더 신중한 표현으로 지적을 했지만, 서로 상처 받는일을 피할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다면평가를  받으면서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고  단점을 개선하리라 마음 먹었지만 납득할 수 없는 지적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그런 지적들은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쓴 거 같다' 거나 '편견과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거부하며 점점 뇌리속에서 지웠다.  그리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었던 지적들은 '내가 원래 그런걸 어떡해!'하며 무시하였다.  결국 개선은 물건너 가고 숫자만이 마음에 남았다.  동료 평균보다 이하구나 하며 우울해지는 사람들과 평균 이상이라며 으쓱해 하는 사람들. 점수란 고작해봐야 소수점 두 자리로 순서가 정해지는 것들이어서 의미를 부여하기도 어려운 것들인데 말이다.


그렇게 나 역시 직원들의 칭찬과 쓴소리 보다는 다른 동료들 평균이 이 점수라는데 난 이거구나 하며 '직장생활을 잘 하고 있는건가?'하는 마음에 좀 힘들었었다.  그러나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  한 달, 두 달 지나자 별 감흥없이 또 하루 하루를 보내고 다시 다면평가의 시즌이 오면 좀 신경쓰이고 장점을 읽고 용기를 얻다가 단점은 '작년과 비교해서 좀 덜 아프네'하며 넘기고, 그저 동료 평균 점수와 내 점수를 비교하고 낙담하다 또 잊어버리고. 그렇게 별로 개선하지 않는 회사 생활을 반복했다.  


하지만 사람과 일을 대하는 회사생활의 변화는 온다.  다면평가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나이를 먹으면서, 실수와 성과를 경험하면서.  내 경우에는 매일 매일 상사, 동료, 부하 직원들과 부딪히며 깨닫게 되는 역지사지의 마음,  한 살 한 살 먹으며 깨닫게 되는 삶의 가치에 대한 생각들, 무엇이 더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지에 대한  판단 등으로 일과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예전이라면 이해하기 힘들었던 사안이 이해되고,  나의 일처리 방식대로 다른 사람들도 일하기를 요구했던 마음이 바뀌어 타인이 생각한 방식으로 처리하도록 지켜보게 되는 것 등.


그런데 이런 변화를 남도 나도 알아채는 수단 중의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다면평가였다. 예년처럼 별 기대없이 받아든 결과지에 적힌 한 문장으로 나의 변화를 실감할수 있었다.   '그렇구나, 내가 그래도 잘 가고 있구나' 라고 자신감을 갖게 한 칭찬.  "그 팀이 잘 돌아가는 건  팀장 덕분이다."  비록 점수로는 하위권에 속한다 하더라도 나의 변화를 알아채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음에 마음이 든든했다.  올 한해는 이 한마디 때문에 스트레스 유발 환경의 회사 생활이지만 잘 견디고 있다.


직장에서의 다면평가는 긍정적, 부정적 측면이 존재한다. 긍정적 측면을 위해서는 개선을 바라며 적는 단점 보다는 기운을 북돋울 수 있는 장점을 적는것이  개인 뿐만 아니라 회사 발전을 위해서도 더 좋은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  상사, 동료 한 사람 한 사람의 장점을 잘 눈여겨 보았다가, 다면평가때 제대로 적어야겠다.  그저 회사에서 하니까 하는 다면평가가 아니라, 누군가 내게 칭찬 한마디로 자신감을 주었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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