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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Dec 24. 2018

네 번의 케익

서로의 생일을 축하하는 일은 어느 덧 우리 회사의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노조에서 축하 선물로 문화상품권을 주고 회사에서도 모바일 상품권을 주며, 팀마다 총무역할을 하는 사람이 팀원 모두의 생일을 기억했다가 케익을 준비하여 조촐한 축하파티를 한다. 그 축하의 시간은 다함께 모여 대화를 하며 서로를 더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하고  동시에 업무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휴식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생일축하 받는 일을 피해가기란 쉽지않다.  더구나 팀장은 팀원들이 생일을 챙길수 밖에 없는 지위에 있다. 그래서 미리 알려주려고 했다. 생일을 챙기지 말라고.


어떤 나이에 이르고 보니 생일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자꾸 나이가 연상 되어서.  아마도 이건 자격지심일 수도 있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무심하게 넘어간다면 섭섭한 마음이 들었을텐데, 상대적으로 직장의 후배들이 축하해주는 일은 부담스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나이값"을 제대로 하고 살았는지 자신감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평소엔 나이를 잊고 살다가 생일 때 생각하게 되는 내 나이가 새삼, 매년 많다고 느껴져서.  아무도 내게 나이많다고 눈총을 주지도, 비난의 말을 하지 않음에도  스스로 심적 주눅으로 움츠러 든다.  이건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 근본적, 내면적 열등감 때문일 것이다.


생일을 챙기지 말라고 하루 전에 미리 말한다고 했는데, 얄궂은 운명의 장난처럼, 내 생일을 착각한 직원 덕분에 하루 앞당긴 축하 케익을 받았다.  센스 넘치는 직원들 덕에 "happy birthday"초가 꽂힌 케익을.  그렇게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준비하느라 고생한 직원들의 마음을 고맙게 받았다.  

그리고 생일 날, 본부장의 축하 케익으로 팀장들의 축하를 받고 저녁에는 극단 사람들의 뒷풀이 모임과 겹쳐서 뜻하지 않은 생일케익을 또 받았다.  생일맞은 단원을 축하하는 극단의 전통에 따라 아침부터 단톡방에 축하 메시지가 올라오는 바람에, 뒷풀이 모임날짜가 생일과 겹쳐도 조용히 넘어가려던 의도와 다르게 또 케익을 받았다.  새벽에 집으로 가니 아버지가 사다 놓으신 케익이 식탁 위에 있었다.  딸의 생일이 언제인지,  두 분이 음력으로 지내는 딸의 생일을 오락가락 하시길래,  딱히 정정해드리지 않았는데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시고 준비를 하셨다.  그 케익은 다음날 늦은 밤에, 주무시다가 일어난 부모님과 나누어 먹었다.  아직도 혼자인 딸이 못내 아쉬운 부모님의 걱정을 들으며...


올해 몇 번째 생일이냐는 질문을 피할 수 없었지만,  나이를 배려해 나이 수 만큼 초를 꽂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과 "부모 보다는 자식의 축하를 받아야 하는데.." 라며 아쉬워하시는 부모님의 사랑의 마음을 전달받은 따뜻한 생일이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인생이라고, 남들이 다하는 삶의 순서를 밟지 않아 이상하게 보일꺼라는 자격지심은 여전히 저 밑바닥 어딘가에  존재해 매년 생일 때마다 그 열등감이 더 커질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뜻하지 않은 생일 축하를 받는 일은 분명 감사한 일!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가진 것에 감사하라는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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