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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Dec 25. 2019

조용히 입 다물라

때로 전혀 계획하지 않은 일을 하게 되는 때가 있다.

충동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힘에 의해  이끌려하게 되는 일. 개인의 선택이면서도 그 선택에 영향을 끼치는 어떤 이끌림.


냉담자로 산 시간이 길어서 성당에 가야 한다는 의무감을 잊고 살았는데, 독실한 신자이신 분의 성탄 축하 문자를 받고, 갑자기 뜨끔하여 성당에 들리겠노라 빈 말 같은 답장을 보냈다.  답장을 하는 순간까지도 성당에 한번 들려야겠다는 마음이 진심으로 들지는 않았는데,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기도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성당이 있어서 한번 들려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들린 시간이 마침 미사 시간.


익숙한 듯 어색하게 맨 뒤에 서서 잊고 있다고 여겼던 기도문과 성가를 따라 하는 모습에 스스로 신기해하고 그동안 달라진 성당 내부를 둘러보며 건성으로 있다가, 오랜만에 이 시간에 집중해보자 하는 마음을 먹었다.

그러자 바로 내 맘속에 떠오르는 말.


"조용히 입 다물라"


와 처음으로 한 팀이 되는 신입직원들에게 곧잘 했던 "빅마우스가 되지 말라"던 말.  사실이 아닌 루머를 가십처럼 얘기하지 말고, 보태지 말고, 옮기지도 말고 일희일비하지 말라던 내가 최근에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인 것으로 받아들여 분개하고, 내 생각을 담아 보태고 흘러들은 얘기들을 전했다.  이런 일의 폐해를 잘 알면서도 도무지 조절하기 힘들어 마구 뱉어내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결국 내게로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휴가를 내고 한 발짝 물러나 있으니 그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어렴풋이 느끼던 차에, 이 말이 떠오른 것이다.


"조용히 입 다물라"


그간의 회사생활을 통해 터득한 것을 다시 깨닫는 순간.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것.


오늘 할 일 중에 성당 가는 일은 없었으나, 크리스마스 인사가 오리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의 따듯한 문자를 받고 나서야 잊고 있던 장소를 떠올린 것. 그렇지 않아도 복잡했던 마음을 추스르고 싶었는데, 그곳으로 나를 불러주신 누군가의 힘.  그리고 들린 내 마음의 소리. 이렇게 또 감사한 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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