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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Nov 19. 2021

카카오 때문에?! 카카오 덕분에!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톡이 오는 진동음이 들렸다. 언뜻 보니 동료 팀장 이름이다. '아침부터 뭐지? 뭔가 팀장 방에 글을 올렸나 보네, 나중에 봐야겠다' 하며 준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또 울리는 카톡 진동. 이번에는 동아리 활동을 하는 극단의 동료 메시지다.  역시 지각할 것 같은 시간이어서 바로 열어보지 못하고 나중에 보기로 했다.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극단 동료의 톡을 열어보니 "언니~ 음력 11월로 알고 있는데 오늘이 생일 맞으세요?"라는 문자. "음력으로 생일 지내는 옛날 사람, 오늘 아니에요^^"라는 답을 보낸 뒤 극단 모임방에 가보니 내 생일을 축하한다는 문자가 올라와 있었다. '아~ 이것 때문에 생일을 물어본 거였구나!' 깨달으며 또 답을 달았다. 옛날 사람이라 음력으로 지내서 오늘은 내 생일이 아니라는.  그리고 이른 아침에 울렸던 팀장의 문자를 보니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케이크 선물이 있는 메시지였다. 이때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단은 단원들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문화가 있어서 생일 알림 담당 단원이 내 생일을 양력으로 착각했구나 싶었는데, 선물을 보낸 동료 팀장은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지 않을 텐데 웬일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동료 팀장에게 "한 달 먼저 받는 생일 선물 고맙다"라고 인사를 하고, 음력 생일을 지낸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원에게 물어보았다. 내 생일이라고 혹시 카톡에 떴는지.  그랬더니 떠있단다. 어제부터 떠있었다고 알려준다.


나이를 먹을수록 생일이 그리 반갑지 않다. 물론 생일 축하를 받는 일은 기분이 좋지만, 내 나이가 몇인지를 자각하게 되는 생일이 한편으로는 좋지 않아서 굳이 나이가 몇인지를 되새기지 않아도 되는 가족, 친한 친구, 선후배와는 선물도 받고 케이크도 자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생일을 드러내 놓고 싶지 않아 수년 전부터 카톡 설정에 생일을 비공개로 해놓았다. 더구나 요새 카톡은 사적인 쓰임보다는 일과 관련하여 공적인 쓰임이 더 많다 보니 개인 정보를 공개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프로필 사진, 배경 사진을 통해 종종 개인적인 것들을 드러내게 되는데 그런 경우에도 얼굴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어디 가서 찍은 풍경 사진, 그림 사진, 좋은 문구 같은 것들 위주로 올린다.


도대체 어떻게 내 생일이 공개되어 있는지 의아해하며 설정에 들어갔는데, 메뉴를 찾을 수가 없다. 분명히 개인정보 설정을 하는 게 있었던 거 같은데 생일을 입력하는 건 있어도 공개/비공개를 할 수 있는 메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원에게 혹시 아는지 물어보니 그 직원도 어디 있는지 한참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메뉴가 어디 있는지 발견했다며 알려준다. 프로필 관리에 '생일 알림' 메뉴가 있었다. 그런데 "공개"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분명히  "비공개"로 해두고 작년까지도 내 생일은 공개된 적이 없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리고 얼른 "비공개"로 바꿨는데 다른 사람들 카톡 알림에 내 생일이라고 여전히 나온단다. 아마도 카카오에서 메뉴 위치를 변경하면서 모든 사람의 생일을 "공개"로 디폴트 지정해 놓은 것이 아닌가 싶으면서, 한번 알림이 뜬 메시지는 중간에 "비공개"로 변경을 해도 알림이 사라지지 않도록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생일 공개/비공개 메뉴가 어디 있는지 찾으며, 또 비공개를 했음에도 공개로 계속 떠 있는 알림 메시지를 보면서 왜 카카오는 개인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디폴트로 공개를 해 놓은 건지, 왜 비공개로 바꿨는데 비공개가 되지 않는 것인지 불만을 쏟아냈다.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기능이라니! 그런 와중에 생일 축하 메시지를 줄줄이 받았다. 오랜만이라고 하며 축하인사를 보내는 사람, 선물을 보내는 사람, 심지어는 일로 만난 적이 있었겠지만 누구인지 기억에 없는 사람으로부터도 축하 문자를 받았다.  친구들이나 아주 친한 사람들은 오늘이 내 생일이 아님을 알기에 알림이 떴어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축하인사와 선물을 보낸 사람들은 대부분 공적으로 얽혀있거나 일하다 만나서 친해진 사람들이었는데, 정작 생일도 아닌데 축하인사와 선물을 받으려니 좀 곤혹스러웠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일일이 "음력 생일"을 지내기 때문에 오늘은 진짜 생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일도 번거롭고, 생일을 알리고 싶지 않아 비공개로 해 놓은 설정이 어느 순간 공개로 바뀌어져 있더라고 설명을 할 수도 없어 그저 "고맙다"는 답장을 보냈다.


그렇게 "고맙다"는 답장을 쓰며 문득 "정말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일로 만난 사이이든, 일로 만나 친해진 관계이든, 직장의 동료이든 그 알림을 보고 지나치지 않고 축하를 건네는 마음, 선물을 보내는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카카오톡의 홈(?) 페이지는 내 프로필을 변경하려고 할 때 아주 가끔 가는 사람으로서, 페이지에 떠있는 생일 알림, 업데이트한 친구 알림을 잘 눈여겨보지 않다가 어느 날 '아, 오늘 누구누구의 생일이구나'라고 아주 오래된 지인에게 축하 인사 겸 안부 인사를 전했던 일이 떠올랐다.  한 때 친하고 자주 만났으나 이제는 잘 만나지 않는 사람, 같이 일했던 사람,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사람, 같이 공부했던 사람 등등 관계가 나빠진 건 아닌데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진 사람의 이름이나 아이디를 홈(?) 메뉴 상단에서 보고 반갑게 여겨지던 순간이. 그렇게 평소에는 잊고 지냈으나 반가운 마음이 드는 지인에게 말을 건넬 수 있는 "소재"가 되어 서로 기분 좋게 대화를 잠시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순기능이 있구나 싶었다.


그렇게 뜻하지 않은 생일 축하를 받아 기분 좋고 감사한 하루였다. 카카오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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