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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시경

2025. 10. 16

by 지홀

매년 건강검진을 한다. 작년 10월에 했는데 벌써 1년이 지났다. 오전 검사를 받기 위해 출근시간보다 늘 일찍 갔는데 올해는 9시 30분쯤 검진센터에 도착했다. 일찍 가면 일찍 끝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3시간쯤 걸린다. 사람이 몰려서 대기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올해는 늦게 갔더니 기다리는 시간 별로 없이 바로바로 검사를 받았다.


'앞으로 괜히 일찍 올 필요 없겠다'라고 생각했다. 거의 한 시간 반 만에 모든 검사가 끝났다. 위 내시경을 빼고. 위 내시경 검사장으로 갔더니 자리가 모자랄 만큼 사람들이 꽉 들어찼다. 창가에 놓인 1인석 자리, 긴 소파 좌석 여러 개에 빼곡히 앉아있었다. 잠시 서서 기다리다가 겨우 소파에 자리 한 곳을 발견하여 앉았다. 검사 중인 사람과 대기자 명단을 알려주는 화면을 보니 30명 대기. 내 이름은 보이지도 않았다. 아마도 거의 끄트머리에 있는 것 같았다. 늦게 온 만큼 더 기다리는 것일 테다. 화면을 보니 한 번에 4명씩 검사하는 것 같다.


"저것 좀 봐. 한 번에 4명씩 검사하는 것 같은데 그 내시경 기구는 바로 소독해서 쓰는 걸까? 아니면 기구를 여러 개 준비해 놓은 걸까?"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같이 간 직장 후배에게 말했다. 회사에서 건강검진 하는 날 하루를 휴가 준다. 친한 후배와 검진 날짜를 맞추어 오후 시간을 같이 보내기로 했다. 검사 기다리는 동안 얘기 나눌 심산도 있었으나, 검진센터에서 안내하는 대로 따로따로 검사받으러 다니느라 위내시경 대기장소에서 만난 참이다. 스마트폰으로 회사 업무를 하느라 정신 팔렸던 후배는 건성으로 말했다.


"글쎄요~ 정말 궁금하네요. 에이~ 여기서 알아서 다 하겠죠 뭐~"


명쾌한 답을 얻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으므로 나도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검진센터니까 전문적으로 위생에 신경 쓸 텐데, 불안증에 하나마나한 말을 했다. 직원이 내 이름을 호명했다. 대기 명단 화면에 이름도 뜨지 않았는데 내 이름이 불리자 후배가 놀라 물었다. "왜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설명하려는 것 같아"라고 답한 뒤, 안내 데스크에 앉은 직원에게로 갔다.


"재작년에 헬리코박터 균 있었는데 치료하셨을까요?"

"아뇨~ 물어보니 저절로 없어지기도 한다고 해서..."


사실 2년 전 헬리코박터균 치료하려고 동네 가정의원에 갔는데 거긴 내시경 장비가 없었다. 약을 먹은 후 균이 없어졌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알 방법이 없으니 다른 곳에 가라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치료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해 잊었다. 그래서 그냥 얼버무리기 위해 나온 답이었다.


직원은 한심한 표정을 짓더니 "안 없어져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괜히 죄지은 듯 머쓱해져서 "네에~"라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수면 아니고 일반으로 하는 거 맞으시죠?"라고 재차 확인한다.

"네. 근데 좀 긴장되네요. 하하하하"

직원은 피식 동의한다는 미소를 짓더니 가스제거제를 내밀며 바로 마시라고 주었다.


건강검진 신청할 때 위 내시경을 수면으로 할지, 그냥 쌩으로 할지 고민했다. 수면 내시경 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에 놀란 적 있다. 그 기억 못 하는 시간이 싫어서 몸이 힘들더라도 깨어있는 쪽을 택한다. 그래도 힘든 걸 아니까 항상 선택의 순간 망설이게 된다. 그래서 작년에는 아예 내시경을 안 했다. 2년에 한 번 정도만 해도 된다는 친구 말을 듣고 핑계김에 잘됐다 싶었다. 하지만 올해는 해야 했다. 2년 전 헬리코박터균뿐 아니라 작은 용종이 있다고 들었기에 확인이 필요했다.


돌이켜보면 수면 내시경이 없던 시절에도 내시경을 했는데, 못할 게 뭔가 싶었다. 그때에 비하면 기구가 좋아져서인지 우웩 거리며 짐승소리를 내는 것도 덜한 편이다. 침도 예전만큼 많이 나오지 않는다. 제대로 재 본 적 없지만 시간도 몇 분 걸리지 않으므로 눈 딱 감고 할 만하다고 되뇌며 일반 내시경을 택했다. 같이 간 후배는 "독해요"라고 말했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간호사는 일반으로 검사하는 게 맞는지, 이름과 생년월일을 다시 확인한 후 침대에 눕도록 안내했다. 등과 엉덩이를 침대 끝에 붙이고 누우라고 알려줬다. 침이 나오면 베개맡에 놓은 방수포에 그냥 흘리라고 하며 마우스피스를 물렸다. 마음의 준비를 하지도 않았는데 기구를 넣으려고 하여 손을 들었다. 마우스피스를 황급히 빼고 심호흡을 한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숨을 한번 깊게 들이마셨다 내쉬고 마우스피스를 꼈다. 의사는 마음대로 다시 빼면 안 된다며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기구가 목 안으로 넘어갈 때 저절로 토하는 소리가 나왔다. 몇 번의 헛구역질 후 내시경이 위에 안착하자 견딜만했다. 코로 숨 쉬며 침을 꼴깍 넘겼다. 침이 넘어갈 때 기구가 목에 닿았다. 명치 아래쪽 부근까지 내려간 듯 불편했다. 아마도 십이지장까지 내려갔으므로 곧 끝날 것 같았다. 속으로 노래를 불렀다.


'나는 괜찮아요~오오오~~, 정말 괜찮아요~오오오오. 이 시간이 가면 내 모습도 변하겠죠~ 나는 괜찮아요~'


치과에서 스케일링할 때, 피부과에서 레이저를 받을 때 이 노래를 항상 부른다. 이 부분을 반복해서 부르다 보면 어느새 끝이 난다.


내시경이 입 밖으로 나왔다. 나올 때 또 몇 번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를 냈다. 간호사가 수고했다며 휴지를 건네 입을 닦고 침을 뱉으라고 했다. 받아 든 휴지에 침을 뱉은 후에도 미진하여 방수포에 그냥 뱉어도 되냐고 물어봤다. 간호사 한 명은 뱉어도 된다고 했고, 다른 간호사는 휴지를 얼른 줬다. 입술을 닦고 앉자 의사가 설명해 주겠다고 했다. 위와 십이지장을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깨끗한 편인데 헬리코박터균이 있다고 치료하라고 했다. 빨간 점들이 보였다. 왜 2년 전에 발견된 것을 여태 방치했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화난 투로 말했다. 위 용종은 괜찮은지 물었더니 작아졌다고 했는지 안 보인다고 했는지 정확하게 못 들었는데, 암튼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알아들었다. 의사는 그것도 헬리코박터균이 원인일 수 있으니 제발 치료하라고 했다.


일반 내시경을 하면 이렇게 결과와 의사 소견을 바로 들을 수 있어 좋다. 수면에서 깨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잘 견딘 내가 대견하다. 사람들에게 "일반내시경으로 해도 괜찮다"라고 자랑삼아 말할 수 있게 되어 은근 기분 좋다. 바로 옷을 갈아입고 수면 내시경 한 후배를 기다렸다. 시계를 보니 건강검진 하는 데 총 3시간가량 흘렀다. 일찍 검사하나 늦게 검사하나 걸리는 시간은 비슷했다.


구름 뒤 파란 바탕이 느무 예쁘다(13:13, 13:41, 13:43)
시청 근처 하늘(13:43, 13:45, 14:29)
덕수궁 근처 예쁜 카페(14:55)
광화문과 창덕궁의 하늘. 15,000보를 걸었다(15:35, 17:0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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