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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Jul 03. 2017

나만 알고 싶은 제주 서쪽 동네 3곳

너무 유명한 관광지는 괜히 싫은 청개구리를 위한 여행지 추천

지난 5월 한 달을 제주에서 보냈다. 길게 머무는 만큼 떠날 때쯤 되면 섬의 구석구석 안 가본 곳이 없을 거라 예상했지만… 여행 내내 제주 서쪽(다시 말해 숙소 근처)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 서쪽이 인기 많은 지역은 아니다. 어딘가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관광지는 대부분 동쪽에 몰려 있다. 누군가는 제주 서쪽을 두고 “할 것도 없고 볼 것도 없는” 동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괜히 더 끌렸다. 처음엔 남들이 다 좋다고 하면 괜히 싫어지는 청개구리 심보가 크게 작용했다. 서쪽에 대한 막연했던 호감은 제주와 살을 맞대고 지내면서 조금씩 또렷해졌다. 잊을만하면 돌고래가 나타나는 조용한 바다가, 밭 매던 할망들이 말을 붙이는 돌담길이, 사람보다 나무가 많은 작은 동네가 나를 계속 이쪽에 머물게 했다.

 

다음은 제주 서쪽에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알게 된 작은 마을들이다.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알지만) 꼭꼭 숨겨두고 혼자만 알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곳. 나와 취향의 공동체로 묶인 누군가에게도 유용한 정보가 될 것 같아 망설임 끝에 모두와 공유한다


한 달간 머물렀던 모슬포 숙소. 대정오일장 앞 하얀 집. 걸어서 3분이면 바다에 발을 담글 수 있었고, 702번 서일주 버스를 타면 제주 서쪽 어디든 갈 수 있었다.

 



1. 사람 사는 풍경, 금능리

제주 사는 사람을 만나면 항상 “제일 좋아하는 바다가 어디냐”고 묻는다. (몹쓸 직업병 탓에 바다에도 등수를 매기고 싶어 한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섬으로 내려와 긴 신혼여행 중인 내 친구는 비양도가 보이는 금능을 1등으로 꼽았다. 여름이면 해운대만큼 붐비는 협재에서 느린 걸음으로 1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바다. 풍경은 그대로인데 어수선함은 절반이라 좋단다. 해변 어느 방향에서도 비양도가 보이니, 과연 아무데나 주저앉아 맥주 한 캔 비우기에 더없이 적합한 장소다. 


비양도는 소설 <어린 왕자> 속 코끼리 삼킨 보아뱀을 닮았다. 볼 때마다 예뻐서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비양도를 찍은 사진만 100장 넘게 있더라.


해변에서 바다를 등지고 좀 더 깊숙이 들어오면 금능리 마을이 있다. 높은 확률로 자전거 타는 꼬마나(동네 주민 1) 산책 중인 할머니를(동네 주민 2) 마주치게 되는 동네. 그 사람 사는 것 같은 풍경을 보는 게 좋아서, 금능에 올 땐 늘 바다가 보이는 카페 대신 마을 안쪽에 있는 카페를 택했다. 


‘카페닐스’ 안에서 본 마당. 나무와 개 그리고 소년이 담겼다.


얼핏 보면 누군가 사는 집으로 보이는 ‘카페닐스’에는 차를 마시러 온 나 같은 사람 말고도 다양한 손님들이 들렀다 가곤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동네 꼬마가 제집인 양 들러 마당에 묶인 개를 쓰다듬고 가려는데, 안에서 빵을 굽던 주인이 나와 “온 김에 샌드위치 좀 먹고 가라”고 했을 때. 짧고 사소한 순간이었지만 그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녹는 기분이었다.


카페닐스(064-796-1287)제주 제주시 한림읍 금능길 44

  



2. 헤어지기 아쉬울 땐 숲으로, 청수리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모든 게 서툴렀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길 에서 만난 인연과 산뜻하게 헤어지는 일이었다. “반가웠어요. 인연이 되면 다음에 어디선가 또 만나요!” 예쁘게 인사하고 돌아설 줄 아는 언니들을 부러워하곤 했다. 사실 아직도 그에 익숙해지진 못해서 매번 놀이터에 혼자 남은 어린애처럼 아쉬워 한다. 


사람보다 나무가 더 많은 조용한 동네 청수리는 이별의 순간에 (아마도)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졌을 친구와 함께 갔다. 원래는 양씨 형제가 만든다는 소문난 햄버거를 먹으려고 했는데 하필 브레이크 타임에 걸려 실패했고, 점심이나 먹고 헤어지려던 우리는 “안녕”을 외칠 적절한 타이밍을 찾지 못했으므로 근처에 있는 숲으로 갔다. 여름밤이면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는 청수 곶자왈이었다. 


청수 곶자왈에서는 6월 한 달 동안 반딧불이 축제가 열린다. 밤에 가서 반딧불이를 봤다면 좋았겠지만, 한낮의 숲도 충분히 좋았다.


더운 날이었는데 숲속은 서늘했다. 닿는 곳마다 온통 초록이었다. 숲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발목을 스치는 풀의 촉감이, 해를 가리는 울창한 나무가 낯설었다. 들어간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수풀 속에 있던 노루와 눈이 마주쳤다. 노루는 자기 무리로 뛰어가면서 크게 울어 침입자의 존재를 알렸다. (참고로 노루 울음소리는 개가 짖는 소리와 비슷하다) 서로에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개구쟁이처럼 나무 하나하나를 건드리며 앞서가는 친구를 따라 가만히 걸었다. 멈춰 서서 나무 냄새를 맡을 여유가 생길 때까지. 


여기 늑대가 산다는 둥(물론 거짓말이다), 나무 사이로 햇볕이 들어오는 공간은 숲 요정의 자리라는 둥.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숲의 입구로 돌아와 있었다. “다시 만나긴 어렵겠지” 같은 말은 굳이 하지 않고 헤어졌다. 영화 <시간의 숲>을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숲의 나무들은 우리보다 오래 살기 때문에 언제든지 오면 우리를 기다려줄 거라고. 그 생각을 하면 힘이 난다고” 숲이라서. 아쉽지만 괜찮은 안녕이었다.


청수 곶자왈제주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3. 살기 좋은 동네, 모슬포

마지막으로 소개할 동네는 한 달간 우리 동네’였’던 모슬포다. 하루 이틀 머물다 떠날 곳이 아니라서 정말 신중하게 선택했다. 일단 내가 운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내면서 필요한 모든 곳에 걸어서 닿을 수 있어야 했다. 버스정류장, 식당, 편의점, 병원 그리고 바다. 그렇다고 해서 관광객으로 붐비는 동네는 또 싫었다. 있을 건 다 있으면서도 한적한 곳. 그 까다로운 조건에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동네가 모슬포였다. 


모슬포를 지나는 올레길 10코스 산책로. 5월 기준으로 저녁 7시 10분쯤 되면 하늘이 물들기 시작한다. 해와 달이 동시에 걸려있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이러려고 서쪽에 사는구나 


여행객들에게 모슬포는 묵어가는 곳이라기 보단, 잠깐 들렀다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대부분 가파도나 마라도에 가기 위해서 혹은 고등어 회를 먹기 위해서 모슬포를 찾는다. 옛날 제주 사람들은 유독 바람이 세게 부는 모슬포를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뜻으로 ‘못살포’라고 불렀단다. 여기까지가 이곳에 대해 흔히 가지는 생각이고, 실제로 살아본 모슬포는 근사한 노을 하나만으로 묵어갈 가치가 충분한 곳이었다. 여기 살면서, 매일 저녁 바다 위로 떨어지는 해를 보는 게 하루의 중요한 일과였다. 운이 좋은 날엔 돌고래가 튀어 오르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제주에 ‘우리 동네’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마냥 들떴던 시기를 지나, 나는 진심으로 모슬포를 좋아하게 됐다. 끝이 보이니 애틋한 마음은 더욱 깊어져 고향을 떠나는 사람마냥 울적했다. 그래서 마지막 일주일은 돌아가기 전에 여기서 다시 보고 싶은 것들과 재회하며 보냈다.


하모해변 근처에 위치한 독립책방 이듬해 봄. 귀여운 입간판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면 제일 끝 집이다.

 

가장 마지막으로 만난 건, 숙소에서 빠른 걸음으로 20분 거리에 있던 책방의 주인 언니. 농가주택을 개조해 만든 작은 책방 ‘이듬해봄’은 지난달 봄의 끝자락에 문을 열었다. 이 책방이 특별한 이유의 팔 할은 다정한 주인 언니다. 책을 꼭 사지 않아도 커피를 꼭 마시지 않으셔도 좋다며 동네 사랑방을 자처하니, 참새 방앗간 드나들 듯 자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떠나기 전날. 비가 많이 내리던 그 날. 언니와 나누었던 대화를 옮기며 글을 마친다. 


“저 이제 서울 올라가요”. “또 놀러 오세요! 우리 다시 반갑게 만나요.” “네. 이듬해봄이 오기 전에 올게요!” 

책방 이름인 ‘이듬해봄’에는, 작년 가을에 이 집을 보고 했던 결심(“이듬해봄에는 꼭 오픈해야지”)이 담겨 있다. 봄의 끝자락인 5월 말에 문을 열었으니 약속을 지킨 셈이다. 


이듬해봄(010-6388-8037)서귀포시 대정읍 하모 백사로 29번길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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