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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May 27. 2020

웃을 일 없는 일상에 굳이 심어 둔 작은 기쁨에 관하여

이럴 때가 아닐 수록 해야 하는 일들

올 봄은 꼭 필요한 일 아니면 하지 않기로 약속한 계절이었다. 여러모로 봄 타령이나 할 ‘때’가 아니었다. 꼭 봐야하는 사람이 아니면 만나지 않았고, 생필품이 아닌 물건은 사지 않았으며, 특별한 볼일 없이는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일상에는 꼭 필요한 것들만이 남았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하는 시기였다.


흐릿해진 계절감은 가끔 울리는 인스타그램 알림 메시지로 겨우 유지할 수 있었다. “2년 전 오늘 게시한 게시물을 확인해 보세요.” 사진 속에는 마음의 크기완 관계없이 더는 찾지 않게 된 것들이 남아있었다. 생존에 끼지 못하는 것들. 그냥 보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과 아무 이유 없이 찾는 장소, 그저 즐겁기 위해 하는 일 같은 거. 이런 시기가 길어지면 그런 것들은 영영 사라지는 걸까. 기분이나 감정 같은 건 명분이 될 수 없으니까. 문득 애틋한 감정이 빵처럼 부풀어 올랐지만 급하게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면보면 나는 늘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지냈다. ‘때가 아니다’의 역사는 수험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 나는 “이럴 때가 아닌데.”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좋아하던 오빠와 데이트를 하고서도 나는 후회를 했다. 한 문제 때문에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할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에서 즐길 거리를 찾는다는 게 꼭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그 시절 나의 정신적 지주였던 강도영(친구 이름이다)은 팍팍한 수험 생활 속에서도 기어코 즐거울 구석을 만들어 내는 애였다. 내가 뭐라고 딴지를 걸든 아랑곳 하지 않고 매번 크고 작은 이벤트를 만들어 제안했다. “모의고사 끝나고 아웃백 갈래?”, “구월동에 색연필 사러 가자”, “독서실 들어가기 전에 인형 뽑기 한 판만 하자.” 그럼 나는 못 이긴 척 걔를 따라 나서곤 했다.

 

그리고 불행히도 여전히 때는 오지 않고 있다. 무려 11년째! 매년 마음 놓고 행복할 수 있는 때가 아니다. 10년 전엔 학점을 따느라 아니었고, 5년 전엔 취업을 못 해서 아니었다. 4년 전엔 결혼이 코앞이라, 작년엔 종이 잡지가 위기라서(정말이다) 올해는…. 아무튼 때가 아니다. 그뿐인가 내년엔 또 무슨 상황이 생길지 알 수 없다.

    

“그냥 니 마음에 여유가 없는 거 아니야? 상황이 따라 줘서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어. 다들 틈틈이 즐거운 시간을 만드는 거지. 요령껏!”


몇 년 전 초여름, 인천 끄트머리에 사는 강도영이 서울에서 일하는 날 만나러 와서 한 말이다. 내 생일이 지난 지 일주일 정도 된 날이었을 거다. 선물을 준비했다는데도 바쁘다며 만나주지 않자(네! 제가 나쁜 친굽니다) 그래도 밥은 먹지 않냐며 찾아온 거였다. 잔소리를 좀 듣긴 했지만 덕분에 예쁜 식당에서 밥도 먹고 생일 케이크에 초도 꽂을 수 있었다. 십대일 때나 삼십대일 때나 우린 참 여전하다.


두 시간 만에 끝난 짧은 생일파티는 뜻밖의 긴 여운을 남겼다. 상황이 따라 줘서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냐는 말. 흔히 쓰는 표현인데 이상하게 그 말이 마음에 얹혔다. 왜 내 인생만 맨날 이렇게 심각한가 싶었는데 걔 말대로 그냥 즐거움을 찾는 요령이 없었던 건가 싶기도 했다. 그래 다들 인생이 뭐 얼마나 꽃길이겠어. 주어진 상황에서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틈틈이 즐거워하는 거지.          

 

인생이 계절처럼 흐르는 줄 알았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힘든 시기를 버티면 적어도 두세 달은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대체로 행복하길 포기한 채로 지냈다. 나를 즐겁게 해줄 일은 나중으로 미뤘다. 봄이 오면, 여유가 생기면 가벼운 차림으로 팔랑팔랑 맥주나 마시러 다녀야지. 나름 씩씩하게 벼르다가도 이따금 막막해졌다. 매일 버티기만 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기력한 채로 그놈의 ‘때’를 한 없이 기다리며 흘려보낸 시간이 지나치게 길었다.  


이제는 안다. ‘마음 놓고 행복해 할 수 있는 때’ 같은 건 인생에 없다는 사실을. 행복은 계절처럼 큰 단위로 오지 않고 몇 달씩이나 지속되지도 않는다. 마감이 코앞이니 당분간만 우중충한 채로 지내겠다는 다짐은 영영 흐린 기분으로 살겠다는 말과 같다. 마감 뒤엔 또 다른 마감이. 숙제 뒤엔 또 다른 숙제가 있다. 그러니 바쁘더라도 요령껏 시간을 내서 틈틈이 행복해야한다. 작고 귀여운 기쁨이라도 모아야 일상을 지킬 수 있는 법이다. 볕이 좋은 시간을 골라 커피라도 사러 나가든, 커다란 창문 너머로 목련이 보이는 카페를 찾아 거기서 마감을 하든.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는 여전하다. 틈틈이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이럴 때가 아니”라며 인상만 쓰고 있다가 무력감에 빠져 일상이 무너지기 직전에야 겨우 떠올린다. 아 맞다. 행복은 셀프였지. 즐거울 구석을 스스로 만들자.



2020년 2월 이전의 일상이 전생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요즘. 내가 기르는 작고 귀여운 기쁨은 ‘복도에서 노을보기’다. 예정에 없던 재택근무를 하게 된 덕분에 우리 집의 유일한 자랑인 북한산 뷰 선셋을 실컷 누리게 됐다. 창문 밖이 붉어지면 아끼는 컵에 좋아하는 음료(주로 술이다)를 가득 담아 아파트 복도로 나간다. 철수 아저씨의 라디오를 들으며 준비한 음료를 천천히 마시다보면 금방 해가져서 어둑해진다. 나의 주특기인 “한 잔 더”를 외칠 틈도 없는 그야말로 찰나의 기쁨이다. 행복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부스러기 같은 기쁨. 이렇게 별것 아닌 것 같은 것들의 도움을 받아 일상이 견뎌진다는 게 매일 신기하다.  

    

이 책은 딱히 웃을 일 없는 일상에 굳이 심어둔 작고 귀여운 기쁨들에 관한 이야기다.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이 시기를 모두가 무사히 건너갔으면 좋겠다. 각자의 작고 귀여운 기쁨을 기르며 근근이 지내다가. 모든 게 잠시 괜찮아진 어느 날 만나 생존에 끼지 못하는 사치스러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노닥거리고 싶다.



새 책 <작은 기쁨 채집 생활>이 나왔습니다.

즐거움을 찾는 요령이 없는 사람이 (행복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부스러기 같은 기쁨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에서 이번 주부터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매번 좋아요와 댓글로 제 애매한 창작 인생에 곡기를 넣어주는 브런치 구독자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여러분이 남겨주신 ‘좋음의 흔적’을 딛고 책 한 권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바쁘겠지만 기어코 틈을 내서 틈틈히 행복하셔야 해요. 다들.


2020 초여름

다정을 담아 혜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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