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2006), 『국가의 역할』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다루는 경제학은 매우 중요한 학문이다. 실제로 2021년 기준 경영·경제 계열 대학생은 약 30만 7천 명, 전임 교원은 약 9만 명으로 사회계열 중 최대 규모다. 경제학은 다른 사회과학과의 차별성도 확실하다. 수학적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예컨대 중앙은행은 대규모 수리 모형을 동원해 금리 변화가 물가와 성장률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여 통화정책을 결정한다. 또 정부의 정책 평가에서는 회귀분석 같은 통계기법으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이나 물가에 미친 영향을 추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특징은 영어 명칭에서도 드러난다. 경제학(economics)은 물리학(physics), 수학(mathematics)처럼 접미사 -ics가 붙는다. 영어에서 -ics는 규칙과 기법, 설계·운용의 기술을 함의한다. 그래서 이 접미사로 끝나는 학문은 보편 지식의 체계를 정립하는 이론과학을 의미한다. 반면 생물학(biology), 사회학(sociology), 지질학(geology)에 붙는 접미사 –logy는 다양한 현상들을 설명하는 현상론을 뜻한다. 이렇게 보면 경제학은 문과이면서도 수학·물리학에 비견될 정도로 엄밀하게 이론화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때문에 일반인들은 경제학을 전문가의 영역으로 느끼게 된다. 실제로 대부분 경제학자는 복잡한 수식과 계량모형으로 가득한 글을 쓴다. 여기에 한계효용·외부효과·일반균형 같은 전문용어도 수두룩하다. 연구결과를 이해하려면 상관과 인과의 차이, 표본선택 편의, 식별전략 같은 통계 개념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일반인에게는 진입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런던대학의 장하준 교수는 이런 분위기에서 매우 튀는 학자다. 그는 경제현상의 설명에 수학을 거의 안 쓴다. 그 대신 풍부한 현실의 사례와 역사적 맥락으로 풀어내어 일반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비주류경제학의 입장에서 난해한 수식으로 경제를 설명하는 주류 학자들을 비판한다. 경제현상의 상당 부분은 상식적 사고로 이해할 수 있는데도, 경제학자들이 이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이유에서다. 그의 말이다. “어느 학문이나 학자들이 자꾸 진입장벽을 만드는 못된 버릇이 있다. 어릴 때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이 엄숙한 표정으로 처방전에 멋들어지게 영어로 사인하는 모습 한 번쯤 봤을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스피린 한 알' 뭐 이런 거였다.”
이런 이유로 그는 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수십만 부가 팔린 교양서들 -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등 – 이 그것을 증명한다. 아마도 경제학자 중 거의 유일한 베스트셀러 작가일 것이다. 그만큼 대중들은 장하준이 풀어내는 역사 기반, 사례 중심의 경제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공감했다.
지금부터 소개할 『국가의 역할』도 장하준의 대표작이다. 다만 그의 다른 베스트셀러보다는 학문적 성격이 강하다. 그만큼 이 책은 경제학 이론과 역사를 깊이 있게 다룬다. 특히 20세기 현대자본주의의 전개 과정과 주요 쟁점을 배울 수 있다. 역사를 좋아한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핵심 논리가 제도주의적·정책적 논증에 기초하고 있어서 마냥 만만한 책은 아니기도 하다. 학술적 성격의 교양서답게 기본 체계를 구성하는 논의의 층위도 다양하다. 그것을 이론, 이념, 정책의 세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다.
이 책에서 장하준은 자신의 이론을 ‘제도주의 정치경제학’으로 소개한다. 주류경제학자들이 시장을 자연법칙처럼 여겨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는 것과 달리, 그는 시장을 하나의 사회적 제도로 본다. 즉 시장도 정치·법·관습 등의 제도적 토대 위에서 작동하므로, 이 또한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논지다.
이러한 입장은 주류경제학과는 여러 측면에서 충돌한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경제학의 핵심 전제인 ‘시장 우위론’을 부정한다는 점이다. 주류경제학은 시장의 자유에 논리적 우선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장하준은 시장 역시 사회의 다른 제도들과 동일선상에 놓는다. 나아가 그는 “잘 작동하는 시장이 존재하려면, 잘 작동하는 국가가 있어야 한다”라고 한다. 자유시장도 결국 국가가 만든 규칙과 제도를 통해 가능하며, 그 제도의 정당성은 정치적 과정에서 결정된다는 의미다. 이에 따르면 시장은 정치적으로 구성된 구축물이지, 자연발생적 현상이 아니게 된다.
제도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자유 시장에 대한 정의는 심층적 수준에서는 무의미한 논의이다. 어떠한 시장이든 궁극적으로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시장에든 누가, 어떤 조건으로 참여하는가에 대한 국가 개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설사 어떤 시장들이 ‘개입’을 당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그래서 ‘자유’로운 것으로 보인다고 가정하자. 정말 그 시장에는 ‘개입’이 없는 것일까. 그렇기 않다. 그것은 오히려 그 시장에 가해지는 규제들이 규제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해당 시장의 참여자들과 관찰자들에게 수용되어 있기 때문일 뿐이다.
- 3장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이 관점은 프리드리히 리스트, 구스타프 슈몰러 등으로 대표되는 19세기 독일 역사학파와도 공명한다. 리스트는 국부를 단순한 교환가치의 합이 아니라, 기술·지식·인적자본·인프라 등 생산능력의 축적으로 보았다. 이를 키우기 위해 유치산업 보호와 국가의 전략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슈몰러는 시장을 법·관습·행정이 만든 역사적 제도로 파악했다. 그래서 주류경제학의 연역적 공리보다는 귀납적·사례 기반 분석과 사회개혁 정책을 중시했다. 장하준의 제도주의 정치경제학은 바로 이 전통을 현대화한다. 시장은 정치적으로 선택된 제도이며, 국가의 역할은 규칙 설계와 생산능력 형성을 조직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물론 차이도 있다. 리스트와 슈몰러가 19세기 독일의 산업화 경험에 근거했다면, 장하준은 20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발전 사례와 글로벌 가치사슬, 지식재산권 등 최근의 제도까지 아우른다. 요컨대 그는 독일 역사학파의 문제의식 - “시장은 제도다” - 을 계승하면서도, 이를 현행 국제질서 속의 구체적 산업정책으로 확장한다.
그럼 왜 제도주의 경제학이 아닌 제도주의 ‘정치’경제학인가? 이는 애초에 경제학이 정치와 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본래 경제학의 아버지들 -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토머스 맬서스 등 - 이 다룬 주제는 국부, 분배, 무역, 빈곤 등 공공적 결정과 이해관계의 충돌이었다. 하지만 19세기말 이른바 ‘한계혁명’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경제학의 초점이 개인의 효용과 균형으로 이동하면서 연구 단위가 미시화되고, 가치중립과 효율성이 분석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 정치(권력, 규칙, 분배 등)는 저 멀리 밀려났다. 이 과정에서 ‘시장 vs 국가’라는 이분법이 강화되었고, 국가는 ‘실패 가능성이 큰 외부자’, 정치는 ‘왜곡 요인’으로 취급되곤 했다. 요컨대 경제학은 정치경제학의 전통을 스스로 축소해 온 셈이다.
장하준은 이 탈정치화 경향을 거슬러, 국가가 시장 규칙을 설계·집행하는 정치적 행위자임을 복원한다. 소유권, 노사관계, 금융질서, 무역규범, 조세 같은 제도 선택은 권력관계와 사회적 타협의 산물이며, 그에 따라 ‘시장’ 자체가 달라진다. 따라서 성장·혁신·분배는 개인의 최적화를 넘어서는 제도 설계와 정치적 연합 형성의 문제다. 국가는 그 조정자이자 전략로서 핵심 역할을 맡는다. 이 점에서 장하준의 작업은 고전파 정치경제학을 현대의 제도 환경 속에 다시 불러들이는 시도이기도 하다. 『국가의 역할』이라는 책 제목도 이러한 맥락을 담고 있다. 즉 경제는 자연법칙이 아니라 정치가 정한 규칙의 장, 그리고 그 규칙을 설계하는 국가의 책무를 포함하는 행위라는 뜻이다.
신자유주의는 20세기 후반을 지배한 패러다임이었다. 이것은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과 함께 케인스주의 정책 처방이 흔들리던 국면에서 부상해, 1980년대 이후 각국의 경제 운영 원리로 자리 잡았다. 그 이론적 핵심은 가격 기제와 경쟁의 우선성, 사유재산권과 계약의 보호, 정부 역할 축소(법치 중심) 등에 있다. 구체적인 정책 패키지로는 규제 완화, 민영화, 무역 및 자본의 자유화, 긴축재정, 저인플레이션 중시(통화주의) 등이 거론된다.
특히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이 대표 이론가로 언급된다. 하이에크는 자생적 질서 논변을 통해 중앙집중적 계획의 계산 불가능성을 논증했다. 즉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 자유와 효율을 동시에 훼손할 수 있다는 경고다. 프리드먼은 아예 한 발 더 나갔다. 통화량 관리와 기대 인플레이션, 자연실업률 가설, 재량보다 규칙 기반의 정책을 강조함으로써 예측 가능하고 제한된 국가 역할을 주장했다.
요컨대 신자유주의는 시장 질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국가는 최소 기능에만 집중하라는 실천적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국가를 완전히 부정하는 경제이론은 아닌 셈이다. 다만 현실정치에서는 이것이 1980년대 초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의 집권기와 공명하면서, 노동·금융·공공부문 구조조정과 연동된 측면이 있었다. 그 결과 국가 역할의 축소와 긴축의 정책 기조가 강력하게 표출되었다. 우리나라의 IMF 체제도 결국 이러한 글로벌 흐름의 연장선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장하준은 신자유주의의 대척점에 선다. 그는 신자유주의가 이론적·실제적으로 커다란 허점을 가졌다고 본다. 신자유주의란 자기모순과 타협 위에 세워진 이론일 뿐, 오랜 학문적 고찰 끝에 나온 체계는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그에 의하면 “자유무역과 자유시장이 역사적으로 선진국 발전의 토대가 된 적은 없다”. 즉 과거에 선진국들은 오히려 보호무역과 국가 주도의 산업정책을 통해 성장해 왔다.
실제로 “자유무역이 성장의 보편 공식”이라는 신자유주의의 교리는 많은 역사적 사례로 반박된다. 19세기 미국은 장기간 고율 관세와 유치산업 보호 아래 철강·기계·화학을 키운 뒤에야 점진적으로 개방했다. 영국 역시 산업 우위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항해법·곡물법 등의 보호 장치를 유지했다. 동아시아도 마찬가지다. 일본·한국·대만은 관세, 수입허가, 정책금융, 조세감면 같은 정책 패키지로 철강·조선·전자 같은 전략 산업을 육성했다. 금융에서도 ‘자유화=효율’의 단순 등식은 작동하지 않았다. 1990년대 급격한 자본시장 개방이 불안정성을 키웠던 경험(멕시코·아시아 외환위기)은, 금융 규칙의 설계가 성장경로를 좌우함을 보여준다. 무역과 투자 규범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날 선진국이 강력히 옹호하는 지식재산권은 후발국의 모방과 역설계 경로를 협소하게 만들어, 과거 선진국 자신이 이용했던 산업화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효과를 낳는다.
따라서 장하준의 요지는 명확하다. 역사 속 ‘성공한 시장’은 언제나 국가가 설계한 규칙과 제도 위에서만 존재했고, 자유시장은 정치적 선택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신자유주의 비판의 핵심 논거가 된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소수 특권층 - 대기업과 초국적자본 - 에 유리한 제도적 판을 짜고, 대다수 노동자나 영세업자는 보호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장하준은 신자유주의가 초당파적 경제 회복 조치로 제시될 때 강조하는 ‘과학적 처방’의 외양을 문제 삼는다. 통화·재정 규칙, 규제완화, 무역·투자 자유화 등은 중립적 기술 언어로 포장되나, 실제로는 분배 연합(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비용을 떠안는가)에 관한 이념적 결정을 내포한다. 예컨대 물가 안정 목표, 재정 균형 규칙, 자본이동 자유화 같은 조치가 그렇다. 이는 표면상 효율성을 앞세우지만, 결과적으로 채권자 대 채무자, 자본 대 노동, 국내 기업 대 해외 투자자 사이의 역관계를 특정 방향으로 제도화한다. 장하준은 이러한 ‘과학의 형식’ 속에 숨은 정치적 함의를 드러내, 정책의 중립성이라는 전제를 해체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 반대로 ‘경제 문제로 인식되는 사안’과 ‘정치 문제로 인식되는 사안’은 자연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과 장소에 따라 예전에는 ‘경제 문제’로 인식되었던 것이 지금은 ‘정치 문제’로 인식되는가 하면, 어떤 나라에서는 ‘정치 문제’로 인식되는 것이 다른 나라에서는 ‘경제 문제’로 인식되는 등 다양하게 설정되는 것이다. 랑게가 오래전에 지적한 것처럼 모든 가격은 잠재적으로 정치적이다. 또한 어떤 가격이 정치적이고, 어떤 가격이 정치적이지 않은지 – 혹은 정치적이어야 하고, 정치적이어서는 안 되는지 – 를 결정하는 과학적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 2장 구조조정 시대의 국가의 역할
이렇게 볼 때 『국가의 역할』의 이념적 함의는 단순한 ‘정부 개입 옹호’에 머무르지 않는다. 장하준은 시장 규칙과 정책을 역사적 제도로 재정의하고, 그 선택의 배후에 놓인 권력과 이익의 배열을 분석 대상으로 복귀시킨다. 즉 신자유주의가 ‘증거와 규칙 기반’을 자처하며 탈정치화한 지점에 대해, 장하준은 “누가 무엇을, 어떤 규칙에 따라, 어떤 비용과 위험 배분으로 얻는가”를 묻는 정치경제학의 질문을 되살린다. 그렇기에 이 책의 제목은 곧 메시지이기도 하다. 『국가의 역할』 - “국가는 시장 규칙 설계의 주체이며 그것이 낳는 분배·혁신·안정의 결과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선언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뭔가? 이 책은 이론과 이념의 추상론을 넘어 구체적 정책 분석까지 층위를 확장한다. 그 골자는 ‘발전주의 산업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시장이 자연스럽게 균형을 회복한다는 가정에 기대지 말고, 국가가 규칙을 설계하고 발전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개입하라는 것이다. 이런 구상은 20세기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나 미국의 뉴딜과도 접점을 갖는다. 두 전통 모두 정부가 시장 실패를 보정하고, 공공투자와 복지를 통해 총수요와 사회적 위험을 관리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장하준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복지나 경기관리 자체보다 생산능력과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초점을 맞춘다. 즉 교육·훈련, 표준·조달, 정책금융과 공공 R&D를 설계도로 엮어, 학습과 투자, 혁신이 선순환하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 책의 강조점은 특히 개발도상국의 추격 전략에 맞춰져 있다. 장하준은 후발국이 따라잡으려면 유치산업 보호를 활용하되 그것을 성과조건부로 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보조금, 세제혜택, 정책금융 등의 지원은 기한과 목표가 분명해야 하며,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면 축소하는 환류 메커니즘이 뒤따라야 한다. 보호조치를 쓰더라도 기업이 안일해지지 않게 하는 장치를 같이 둬야 한다. 예컨대 수출실적 및 품질 목표를 달성해야 다음 단계 지원을 주고, 작은 기업도 쉽게 경쟁에 참여할 수 있게 입찰·조달 문턱을 낮추는 것이다.
한편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기초연구·인력양성·기술표준 등은 정부가 일부 떠안아 학습 비용을 줄인다. 거시적으로는 자본이 급히 들어왔다가 빠져 나가거나, 환율이 과도하게 요동치지 않도록 완충 장치를 둔다. 글로벌 공급망과 관련해서는 합작투자, 국산 부품·서비스 의무 비율, 기술이전 규정 같은 틀을 만들어, 해외 기술을 국내에서 배우고 내재화하는 통로를 제도화한다. 요컨대 그가 말하는 발전주의 산업정책이란 '보호 → 학습 → 평가 → 개방 → 재설계'로 이어지는 연결된 체계여야 한다.
산업정책은 사실 동아시아에서 새롭게 고안해 낸 것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상당수 선진자본주의국가의 경제정책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정책이 중요 문제로 떠오른 것은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일이었다. 영어권에서 이 부문의 개척자는 OECD였다. 영국에서는 1970년대 후반 노동당 정부가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 산업정책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논란이 많은 주제가 되었다. 산업정책은 그 유명한 영국의 탈산업화 논쟁에서도 역시 탈산업화를 저지하고 경제를 다시 살려낼 수 있는 수단으로 논의되었다. 1980년대에는 유럽 국가들이 1970년대 후반의 산업 위기에 대처해 펼친 다양한 정책에 대한 연구결과들이 나왔다. 그러나 산업정책에 대한 가장 격렬한 논의는 아마도 1980년대 초반 미국에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무대로 펼쳐졌을 것이다. 최근 전략적 무역정책과 관련된 문헌이 활발하게 발간되고 있는 것도 역시 산업정책 논쟁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고, 또 영향을 미쳤다.
- 7장 산업정책의 정치경제학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정책 처방이 전형적인 좌‧우 구도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장하준은 대기업(재벌)과 복지를 동시에 강조한다. 대기업은 규모의 경제와 자본조달 능력 덕분에 도전적 투자와 기술 전환의 플랫폼이 될 수 있고, 국가는 그 힘을 공익적 성과와 연결할 수 있다. 반면 복지는 비용 절감의 대상이 아니라 생산성에 대한 투자다. 교육·직업훈련·돌봄·보건 같은 보편적 기반이 있어야 노동이동의 마찰이 줄고 가계의 위험이 낮아진다. 이로써 새로운 기술과 산업으로의 전환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며 가능해진다.
흔히 좌파는 대기업을 통째로 부정하고, 우파는 복지를 비용으로만 치부한다. 하지만 장하준은 양자를 발전주의 산업정책의 구성 요소로 사고한다. 기업의 혁신동력과 사회의 안전장치가 함께 갈 때만, 국가가 의도한 학습·투자·혁신의 선순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복지국가적 분배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편, 기업 성장과 혁신에도 유인책을 주자고 강조한다. 성장과 분배를 모두 강조하는 이러한 입론은 좌·우의 고착화된 틀을 깨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양쪽 진영에서 죄다 비판받는다. 그럼에도 장하준은 “성장과 분배 모두 발전경제학의 범주 안에서 상호보완적”이라는 지론을 고수한다. 즉, 대기업에 일정 수준의 특혜를 주어 성장 발판을 마련하고, 그 대가를 사회에 환원하여 복지·재분배에 활용하는 식의 시너지 전략인 셈이다.
『국가의 역할』의 미덕은 두 갈래다. 첫째로 경제학을 이론사와 쟁점사의 큰 지도로 펼쳐 보인다. 시장 우위 가설과 그 변형들, 케인스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교체, 동아시아 발전 경험 등을 정연하게 배치한다. 덕분에 독자는 “어느 이론이 맞느냐”의 흑백논쟁에서 벗어나, 각 이론이 성립한 역사적 배경과 “어떤 현실을 설명하는가”라는 적용 범위까지 한눈에 보게 된다. 둘째로 신자유주의가 스스로 과학적 처방으로 제시해 온 관행에 의문을 제기한다. 정책의 언어가 기술적 형식을 띠더라도, 실제로는 권력과 이익의 배열을 재구성하는 선택임을 드러낸다. 이 두 지점이 만나 ‘경제학 교양서’로서의 가치를 만든다. 한 권으로 현대 자본주의의 지형을 조망하고, 주류 이념의 맹점을 증거와 역사로 검증하는, 독자로서는 고마운 책이다.
다만 내가 『국가의 역할』을 인생의 책으로 꼽는 더 큰 이유가 있다. 내용 못지않게 방법 때문이다. 장하준은 경제를 역사적 제도로 본다. 가격·수요·공급이라는 표면 변수뿐 아니라, 노동·금융·정책 같은 규칙의 묶음이 어떻게 형성되고, 그것이 혁신의 경로를 어떻게 바꾸는지 추적한다. 이 접근은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 전반에 유효하다. 이 방법에 따르면 복잡해 보이던 현상도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 분해해 볼 수 있고, 서로 다른 나라나 시기의 사례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떤 주장이나 의견을 제도적 근거로 검증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내가 쓰려는 글에도 질문, 증거, 해석의 질서가 생긴다.
나는 이 방법을 과학 글쓰기에도 가져왔다. 과학도 경제처럼 난해한 지식, 전문가들의 전유물로 이해된다. 하지만 그 역시 대학, 연구소, 학회, 정부 등과 같은 사회적 제도 안에서 움직이는 체계다. 예컨대 연구비 배분 기조가 바뀌면 트렌드가 달라지고, 성과평가 기준이 바뀌면 연구의 지향점도 변하며, 인증과 표준 장치가 새로 생기면 기술의 채택 경로도 달라진다. 나는 『최소한의 과학 공부』를 쓸 때도 알게 모르게 이 역사적 제도주의의 프레임을 따랐다. 과학을 지식의 목록이 아니라 제도의 진화사로 풀어낼 때, 똑같은 사실도 훨씬 입체적으로 살아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단지 “국가가 더 개입해야 한다”라는 경제학적 주장으로만 되새기지 않는다. 이 책은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을 폭넓게 대면하려는 이들에게 유용한 분석의 도구를 제공해 준다. 나의 과학 글쓰기에도 그런 도구가 필요했고, 이 책이 실무적인 참고서가 되어주었다. 덕분에 과학을 전문가의 영역 바깥으로 끌어내어, 제도와 역사 속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다면, “두 겹으로 읽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겉 겹은 경제학의 쟁점 지도로, 속 겹은 탐구 방법의 연습장으로. 이 관점에서 세 가지를 점검하면서 읽으면 좋겠다. 이론이 서 있는 역사적 맥락은 무엇인가, 그 이론은 어떤 제도를 통해 어떻게 작동했는가, 이와 같은 틀을 내가 궁금해하는 사례에 적용하면 무엇이 달라 보이는가. 이렇게 하면 이 책 한 권으로 경제이론사의 흐름을 정리함과 동시에, 사회과학의 탐구 절차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비전공자에게도 유용하다. 지식을 넓혀 주면서, 생각의 방법도 단단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