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만화는 많지만, 농구의 감각까지 그려낸 작품은 단 하나뿐이다. 『슬램덩크』가 명작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열혈이나 감동에만 있지 않다. 선수 출신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공이 바닥을 튀고 수비가 밀려나는 그 순간의 물리학까지 포착했다. 볼의 속도, 시선의 궤적, 패스가 그리는 호흡 – 그게 바로 『슬램덩크』의 진짜 이야기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농구 경기는 그저 점수 싸움이 아니다. 팀마다 철학과 전술이 다르고, 그 안에서 선수들의 개성이 얽히며 하나의 패턴이 완성된다. 그 정점에 ‘공격 옵션’이 있다. 팀의 철학과 개인의 능력이 맞물려 폭발하는 예술적 한 방. 지금부터 그 화려한 옵션들이 어떻게 작동했고, 왜 그렇게 강력했는지 살펴보자.
1) 전술의 구조
해남은 속공보다는 하프코트의 1:1 전개에 초점을 맞춘다. 그 중심에는 완전체 에이스 이정환이 있다. 닥돌 머신 이정환이 페인트존으로 돌진하면 수비를 단숨에 끌어당긴다. 이후 본인이 마무리하거나, 외곽의 신준섭에게 패스해서 3점을 터뜨리는 것이 핵심이다. 즉 농구의 기본이자 가장 효율적인 패턴인 드라이브 앤 킥아웃 전술이다.
이 조합이 무서운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로 성공 확률이 매우 높다. 피지컬과 스피드를 겸비한 이정환의 돌파는 정상적으로는 막을 방법이 없다. 그 위력은 가나가와현 결승리그 북산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송태섭을 스피드로 제치고, 채치수와 힘으로 맞붙어 슛을 성공시켰다. 이 모습이야말로 이정환의 시그니처인 덤프트럭(feat. 안영수) 그 자체였다. 외곽의 신준섭으로 패스가 연결되면 더 심각하다. 안 그래도 정확한 신준섭의 슈팅이, 인사이드로 수비가 몰린 틈을 타 여유롭게 발사된다. 둘째로 대부분 2점에서 끝나지 않는다. 물론 이정환에게 3점슛은 없다. 하지만 인사이드에서 끊임없이 파울을 얻어내며 앤드원을 자주 성공시킨다. 3점슛이 주무기인 신준섭은 현 득점왕(평균 30.3득점)까지 차지한 완성형 스코어러다. 결국 이 듀오는 돌파와 외곽슛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무기로, 공격 때마다 최소 2점 이상의 득점을 보장한다.
2) 작중 묘사
『슬램덩크』 전반부의 최강 공격 옵션이었다. 해남과 맞붙은 북산, 능남도 결국 이 조합을 깨지 못해서 가나가와현 우승에 실패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해남의 스쿼드는 이 원투펀치를 제외하면 의외로 평범하다는 것이다. 전호장, 고민구, 김동식은 기본적인 공격 전개조차 버거워 보이고, 벤치의 홍익현은 슈팅력이 좋지만 풀타임 자원으로는 불안하다. 그럼에도 해남은 17년 연속 현 우승, 인터하이 4강 및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냈다.
이 역설이야말로 이정환-신준섭 조합의 파괴력을 방증한다. 작중 해남은 기본기와 수비가 탄탄하다고 강조되나, 농구는 결국 득점을 해야 이긴다. 작품에서 묘사되는 해남의 공격 패턴은 드라이브 앤 킥아웃이 거의 유일하다. 이것만으로도 전국 제패를 노릴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 완성도를 증명한다.
북산의 안감독이 취한 수비 대책이 좋은 예다. 그는 경기 후반 페인트존에 수비수 네 명을 두는 극단적 지역방어를 시도했다. 이정환의 돌파에 균열을 내서 공격 자체를 틀어버리려는 고육책이었다. 다만 이는 강백호가 외곽의 신준섭을 전담 압박한다는 전제가 있어서 가능했다. 사실상 북산만 구사할 수 있었던 예외적 전술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해남을 꺾지는 못했다. 정석적인 방법으로는 이 공격 옵션을 못 막음을 입증한 셈이다.
3) 실제 모델
2015~16 시즌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르브론 제임스-JR 스미스 조합과 유사하다. 이정환은 『슬램덩크』 팬덤에서 ‘르브론을 예견한 캐릭터’로 불릴 정도로 싱크로율이 높다(그래서 별명도 릅정환). 르브론 역시 폭발적인 닥돌과 인사이드 득점력을 무기로, 수비가 몰리는 순간 킥아웃 패스를 뿌리는 데 능하다. JR 스미스는 그걸 받아 3점을 폭격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러한 공격의 핵심 구조 - 돌파를 통한 수비 붕괴, 공간 창출, 외곽 마무리 - 는 해남과 완벽히 일치한다. 물론 차이도 있다. JR 스미스는 전문 3점 슈터로서 기복이 심했던 반면, 신준섭은 득점왕다운 꾸준함과 정확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두 조합은 전술적으로 동일한 원리를 따른다. 요컨대 2016년 NBA 파이널 우승의 핵이었던 클리블랜드의 드라이브 앤 킥 시스템은 『슬램덩크』 속 해남이 1990년대에 이미 구현했던 모델이었다.
1) 전술의 구조
북산은 공격력만 놓고 보면 『슬램덩크』 세계관 최강을 다툰다. 그 중심에는 채치수, 서태웅, 정대만으로 이어지는 삼각 편대가 있다. 이 조합의 강점은 역할 분담과 공간 배치의 균형이다. 골밑의 채치수는 포스트업을 통해 고효율 득점을 책임진다. 서태웅은 내외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슬래셔형 스코어러다. 여기에 정대만이 외곽에서 불꽃같은 3점을 터뜨린다. 이 세 명은 서로 영역이 겹치지 않으면서도 상호보완적이다. 이로써 북산은 골밑–미드레인지–외곽이 연결된 3-레벨 오펜스 구조를 구현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수비는 분산되고, 공격은 한층 다이내믹해진다. 수비가 채치수를 막으러 인사이드로 몰리면 정대만에게 오픈 찬스가 난다. 반면 수비가 외곽으로 벌려지면 서태웅이 1:1 돌파로 틈을 찢는다. 그 결과 송태섭에게도 돌파 레인이 열린다. 즉 송태섭이 빠른 스피드로 페인트존을 공략하거나, 수비가 몰리면 채치수에게 킬패스를 찔러 넣는 추가 옵션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삼각 편대에 송태섭까지 더해지면 북산의 공격은 거의 무적이 된다.
2) 작중 묘사
이 삼각 편대는 신생팀 북산이 가나가와현 예선을 통과해 풍전과 산왕을 연파한 핵심 동력이었다. 작중 북산은 약점이 많은 팀으로 그려진다. 체력과 경험이 부족하고, 선수층은 얇으며, 수비도 헐겁다. 하지만 그 모든 핸디캡을 폭발적인 공격력 하나로 커버하는 팀이기도 하다. 실제로 북산은 런앤건, 하프코트 세트, 양궁 농구까지 다양한 공격 전술을 펼친다. 채치수, 서태웅, 정대만이 그 엔진 역할을 한다.
특히 마지막 산왕전은 이 조합의 진화가 정점에 오른 경기였다. 초반에는 개인 능력에서 몇 수 위인 산왕의 벽에 부딪혔다. 채치수는 스트레치 빅맨 신현철에게 끌려 나오면서 골밑 장악력을 잃었다. 서태웅은 에이스로서 정우성에게 모든 면에서 밀렸다. 정대만은 초반 3점슛으로 분위기를 이끌었지만, 오버페이스로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그러나 후반 들어 이들은 ‘팀으로서의 공격’을 완성했다. 정성우를 알아본 서태웅은 돌파를 억제하고 패스로 방향을 바꿨다. 가자미 모드가 된 채치수는 적극적으로 스크린을 걸며 팀플레이의 축이 되었다. 그 결과 정대만이 스크린을 타고 연속 3점을 성공시켰고, 채치수가 서태웅의 패스를 받으며 골밑 공격력도 살아났다. 패스 옵션을 추가한 서태웅이 정우성에게 득점을 따낸 건 덤이다. 요컨대 산왕전은 북산의 삼각 편대가 개별 재능의 조합을 넘어, 전술적 유기체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준 무대였다.
3) 실제 모델
북산의 삼각 편대는 해남의 릅정환만큼이나 찰떡인 모델이 있다. 2007~08 시즌 보스턴 셀틱스의 빅3다. 이해 케빈 가넷, 폴 피어스, 레이 앨런이 주축이 된 셀틱스는 NBA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트라이앵글 밸런스 오펜스를 선보였다.
우선 케빈 가넷은 인사이드와 미드레인지에서 중심축을 맡았다. 스크린, 리바운드, 하이포스트 점퍼, 그리고 수비 리더십까지. 그의 강력한 존재감은 북산의 혼 채치수를 떠올리게 한다. 폴 피어스는 내외곽을 넘나드는 슬래셔이자 미드레인지 득점원으로, 서태웅의 역할과 정확히 겹친다. 실제로 그는 포워드 포지션에서 1:1, 컷인, 킥아웃이 모두 가능한 전천후 스코어러였다. 레이 앨런은 ‘만렙슈가’라는 별명답게 완벽한 3점 슈터였다. 레지 밀러와 함께 정대만의 실사판이라고 불릴 만큼 플레이가 유사했다. 두 사람 모두 “슛이 들어가는 순간 경기의 공기가 바뀌는 선수”이기도 했다.
보스턴은 이 세 명의 공격 범위를 분리함으로써 공간 효율을 극대화했다. 하이포스트의 가넷이 스크린을 걸고, 피어스가 돌파로 수비를 끌면, 앨런이 코너나 45도에서 오픈 3점을 시도하는 구조였다. 이는 채치수, 서태웅, 정대만이 산왕전에서 보여준 스크린 → 패스 → 외곽 피니시와 거의 동일하다. 당시 보스턴의 리더 가넷은 이렇게 말했다. “우린 누가 주인공인지를 고민하지 않았다. 상황이 주인공이었다.” 이 철학은 북산의 산왕전 후반전 공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 전술의 구조
능남의 공격 루트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윤대협’이라는 시스템이다. 그만큼 윤대협 개인의 판단과 기량이 팀 전술 그 자체로 작동한다. 『슬램덩크』 세계관에서 정우성 다음 가는 만능캐라는 설정답다. 실제로 윤대협은 경기 흐름과 상대 전력에 따라 역할을 자유자재로 바꾼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능남의 스타팅 멤버는 윤대협의 레벨에 한참 모자라기 때문이다. 변덕규는 현 최장신 센터지만 채치수보다 아랫급이다. 황태산은 인사이드 공격력은 뛰어나지만, 슛 레인지가 짧고 수비는 자동문 수준이다. 그리고 백정태, 안영수의 가드진은 도대체 장점이 뭔지 알기조차 어렵다. 이러니 윤대협이 팀을 하드캐리할 수밖에 없다.
공격에서 윤대협의 역할은 플레이메이커와 스코어러로 나뉜다. 플레이메이커로 나설 때는 인사이드의 변덕규와 황태산을 활용해 공격을 전개한다. 특히 포인트가드로서 황태산과 펼치는 연계 플레이는 해남의 이정환-신준섭 조합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스코어러 역할을 할 때는 가나가와현에서 가장 파괴적인 득점력을 발휘한다. 돌파, 포스트업, 미드레인지 점퍼, 3점슛, 패스까지 공격의 모든 루트를 전담한다.
이처럼 전술적 선택지가 많고 유연한 역할 전환이 가능한 것이 윤대협의 가장 큰 무기다. 라이벌 기믹인 서태웅도 이런 다재다능함을 갖추지는 못했다.
2) 작중 묘사
작중 윤대협은 포지션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 북산과의 연습경기에서는 파워포워드로 출전해 서태웅과 매치업했다. 가나가와현 결승리그의 해남전에서는 포인트가드를 맡았다. 물론 이 변화에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 막 복귀한 황태산의 득점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했다. 또한 이정환의 돌파를 1선에서 차단하면서, 해남에게 맞불을 놓겠다는 포석도 있었다. 사실 이 경기는 변덕규가 5반칙 퇴장하는 시점에 능남의 패배가 확정적이었다. 그럼에도 윤대협은 오직 개인의 기량으로 팀을 연장으로 끌고 갔다. 특히 경기 막판, 이정환의 반칙과 앤드원을 유도하는 플레이는 윤대협의 BQ를 상징하는 명장면이다.
결승리그 최종전, 북산과의 대결에서는 스몰포워드로 돌아와 끝판왕 모드를 시전했다. 득점 대폭발은 물론, 변덕규와 황태산에게 수시로 킬패스를 뿌리며 플레이메이킹–스코어링 하이브리드의 정점을 찍었다. 『슬램덩크』 세계관 최강자인 정우성조차 경기 중 실수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윤대협은 정말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작가 이노우에조차 “너무 약점이 없어서 정이 안 가는 캐릭터”라고 평할 정도다.
3) 실제 모델
윤대협의 모델로는 2012~13 시즌 마이애미 히트의 르브론 제임스를 꼽을 수 있다. 그해 르브론은 ‘포인트 포워드’로 뛰면서 평균 26.8득점, 8리바운드, 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마이애미 공격의 중심축도 당연히 르브론이었다. 그가 공을 잡는 순간에 마이애미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르브론은 직접 돌파하거나, 인사이드의 크리스 보쉬와 패스를 주고받거나, 외곽의 레이 앨런에게 킥아웃 패스를 뿌리며 공격을 이끌었다. 요컨대 르브론은 플레이메이커이자 스코어러, 그리고 팀의 리더였다.
윤대협 역시 이런 르브론 스타일을 그대로 따른다. 팀의 공격 흐름을 설계하고, 필요할 땐 직접 마무리하며, 동시에 동료의 약점을 보완한다. 상대방 전력에 따라 포지션을 유연하게 바꾸는 전술 적응력도 르브론과 똑같다. 마이애미가 르브론 시스템 위에서 돌아갔듯, 능남 역시 윤대협 시스템이 팀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1) 전술의 구조
그럼 『슬램덩크』 최고의 공격 옵션은 뭘까? 역설적으로 그것은 한 번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바로 산왕의 정우성과 신현철의 투맨 게임이다. 두 사람은 같은 팀이면서 각자 전국 최강의 위치에 있다. 정우성은 스윙맨으로서 완벽한 1대1 능력을 자랑한다. 빠른 스텝과 예리한 방향 전환, 고감도 슈팅은 전국을 통틀어 비교 대상조차 없다. 신현철은 설정상 대학에서도 당장 통할 센터다. 완벽한 피지컬과 정교한 기술은 물론,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BQ도 넘사벽이다.
흥미로운 건 이 둘이 1990년대 만화 캐릭터임에도 현대 농구의 철학에 더 부합한다는 점이다. 정우성은 볼을 오래 쥐고 공간을 읽는 아이솔레이션형 스코어러다. 즉 케빈 듀란트, 제이슨 테이텀처럼 어느 위치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득점 루트를 창조한다. 신현철은 현대 농구에서 각광받는 스트레치 빅맨이다. 골밑뿐 아니라 외곽에서도 슛이 가능하고, 동료에게 스크린을 걸며 공격 전개를 돕는다. 현실의 니콜라 요키치, 앤서니 데이비스와 플레이스타일이 비슷하다.
요컨대 정우성은 공간을 만드는 윙이고, 신현철은 그 공간을 활용하는 빅맨이다. 이 둘이 함께 움직이면 코트 전체가 열리고, 공격의 선택지가 엄청나게 늘어난다. 바로 현대 농구가 추구하는 공간 창출과 포지션 유동성의 결정체다.
2) 작중 묘사
그런데 이노우에는 끝내 이 조합을 등장시키지 않았다. 작중 정우성과 신현철은 각자의 포지션에서만 압도적인 모습을 보인다. 정우성은 서태웅을 쳐바르고, 신현철은 채치수를 가지고 논다. 둘이 각각 1대1로 상대를 부수는 장면은 있어도, 서로의 움직임이 연결되는 장면은 거의 없다.
물론 이건 우연이 아니다. 『슬램덩크』의 마지막 경기인 산왕전은 주인공 북산을 위한 피날레이자 성장 서사의 정점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이노우에는 가나가와현 예선이 끝난 직후 지학, 명정공업, 대영 등을 등장시키며 인터하이 본선에 대한 떡밥을 뿌렸다. 북산이 이들과의 승부를 통해 팀으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2회전 상대가 산왕으로 정해지면서 방향이 바뀌었다. 이 시점에서 이노우에는 본래의 인터하이 스토리를 산왕전 한 경기로 집약하면서 연재를 끝내기로 한 것 같다. 그러면 산왕은 최강팀이긴 하지만 ‘북산을 성장시키는 범위 안에서만 강해야’ 했다. 이런 이유에서 이노우에는 정우성-신현철의 투맨 게임이라는 최강 옵션을 봉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 정우성-신현철 조합이 정말로 작동한다면? 그러면 북산의 승리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정우성이 공을 잡아 돌파를 시도하면, 신현철은 정면에서 스크린을 걸어준다. 수비가 스크린에 걸리면 정우성은 그대로 미드레인지 점퍼를 던지거나, 돌파 후 레이업이나 덩크로 마무리하면 된다. 수비가 스위치해 따라붙으면 신현철이 곧바로 골밑으로 롤인하며 오픈 찬스를 만든다. 반대로 수비가 안쪽을 막으려고 몰리면, 신현철은 외곽으로 팝아웃하며 깔끔한 점퍼를 던진다. 즉, 한쪽이 움직이면 다른 쪽이 자동으로 공간을 얻는 구조다. 세계관 최강자들이 픽앤롤과 픽앤팝을 오가며 펼치는 이 투맨 게임은 어느 팀도 대응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전술이 등장하는 순간 『슬램덩크』는 그대로 ‘게임오버 리그’가 된다.
3) 실제 모델
현실에서 이 조합과 가장 닮은 팀은 2000년대 초반 LA 레이커스의 샤킬 오닐-코비 브라이언트 듀오다. 둘은 리그를 지배한 빅맨과 스윙맨으로서 개인 능력만으로 수비를 붕괴시킬 수 있었다. 코비는 정우성과 마찬가지로 아이솔레이션 상황에서 미드레인지 점퍼와 풋워크로 상대를 제압했다. 샤크는 골밑에서도 절대적인 존재였지만, 신현철처럼 시야가 넓고 패스에도 능했다. 그래서 둘이 펼치는 하이 픽앤롤은 당대 최고의 공격 옵션이었다. 실제로 이 조합이 가동되는 동안 LA 레이커스는 3연패를 달성했다. 이는 지금까지도 NBA의 마지막 3연패로 남아 있기도 하다.
다만 샤크와 코비가 갈등 끝에 결별했듯, 정우성과 신현철도 너무 완벽해서 함께 빛나기 어려운 조합이었다. 『슬램덩크』 세계관에서 이노우에는 그 완벽함을 의도적으로 봉인함으로써, ‘강함’보다 ‘성장’에 중점을 두었다. 기술적으로는 산왕이 압도했지만, 서사적으로는 북산이 승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우성-신현철의 투맨 게임이 펼쳐졌다면 『슬램덩크』의 지면은 분명 더 화려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이노우에가 담으려 한 성장의 메시지는 사라졌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