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몇 가지로 나눈다는 건 어쩌면 무모한 일일지 모른다.
인간은 누구도 단 하나의 틀에만 갇히지 않고, 환경과 상황에 따라 바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라는 기준을 세워두고 본다면 조금은 다른 그림이 보인다.
돈을 바라보는 태도, 돈을 얻는 방식에 따라 사람들의 삶은 의외로 분명한 패턴을 드러낸다.
물론 이것은 절대적인 분류가 아니다.
누군가는 여러 부류를 동시에 넘나들고, 또 누군가는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쪽으로 기울기도 한다.
하지만 돈이라는 하나의 잣대로만 보면, 대략 다섯 가지 부류를 나눠볼 수 있다.
워런 버핏을 떠올리면 쉽다.
그는 주가의 등락이 아니라 기업의 본질, 현금 창출력, 내면의 절제를 강조한다.
겉으로는 단순한 투자이지만, 사실은 자기 안의 욕망과 본질을 다스리는 훈련이다.
물론 주식 자체가 누군가가 이기면 누군가는 잃는 제로섬의 성격을 가진다.
그렇기에 이것을 무조건 ‘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이들의 경계는 분명하다.
법이 아니라 윤리를 경계로 삼으며, 본질과 진정성을 좇는다.
이 길은 느리다. 그러나 쌓이는 힘이 있다.
그리고 덕으로 쌓아온 것은 언젠가 반드시 방패가 되어 돌아온다.
이들은 대놓고 인간의 불안과 욕구를 이용한다.
급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의 절박함, 더 빨리 성공하고 싶다는 조급함, 한 번에 크게 얻고 싶은 탐욕.
여기서는 윤리의 의미는 희미해지고, 법만이 최소한의 경계선이 된다.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
이들은 법만 지키면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
윤리는 밥 먹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발목만 잡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의 성공이 빠를 수 있다.
타인의 본능을 이용하고, 허점을 찌르며, 약점을 파고든다.
마치 고금리 대부업처럼 단기적으로는 돈이 쏟아지지만, 결국 그 피해는 사회와 타인에게 전가된다.
개인 투자자, 소비자, 약자에게 손실이 쏠리고, 그 대가는 사회 전체가 짊어진다.
업의 무서움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빠르게 쌓이지만, 빠르게 무너진다.
그리고 무너질 때는 한 번에, 크게 무너진다.
업의 크기에 따라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수도 있다.
이들은 업보다 한층 교묘하다.
겉으로는 윤리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편리·쾌락·욕구를 가장 영리하게 파고든다.
회사의 본질이나 기술, 사회적 가치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오직 사람들의 욕구와 욕심만이 자산이다.
더 빨리 돈 벌고 싶다
남들이 다 하니 나도 해야 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이런 본능을 교묘하게 건드려 판을 키운다.
대표적인 예가 주식 시장에서 나타난다.
선동을 통해 투자자들을 모으고, 주가를 인위적으로 올린다.
그리고 정작 판을 만든 이들은 고점에서 빠져나간다.
눈치 빠른 소수는 돈을 벌 수 있지만, 대다수는 욕망을 이기지 못해 손실을 본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주식은 원래 그런 거다. 당신이 욕심을 부렸을 뿐이다.''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
겉으로는 투자와 기회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의 본능을 자극해 착취하는 구조일 뿐이다.
다른 예도 많다.
대형 건설사는 사업 실패 시 본사 손실은 최소화하고, 하청업체와 투자자만 피해를 떠안는다.
거대 플랫폼 기업은 ''시장 진출의 기회''를 내세워 중소 상인을 끌어들인 뒤, 수수료와 규칙을 자기들 마음대로 바꾼다.
국제 무역에서 강대국은 약소국에 지원을 약속하지만, 실제 이익은 강대국이 가져가고 책임은 약소국이 떠안는다.
이 모든 건 법적으로 문제가 없도록 설계된다.
그러나 본질은 압박과 협박에 가깝다.
결국 업과 회색지대의 공통점은 인간의 욕구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차이는 노골적이냐, 교묘하냐일 뿐이다.
이들은 아예 경계 자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윤리는 물론이고, 법마저 무시한다.
대표적으로 마약을 팔아 사람을 중독시키고, 범죄로 돈을 벌며, 타인의 고통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다.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2번과는 다르다.
애초에 불법임을 알면서도, ''돈이면 다 된다''는 세계관으로 움직인다.
이들의 행위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에게까지 파괴적인 대가를 남긴다.
이들의 업은 더 이상 개인의 몫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스스로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건 아니지만, 욕구 자극에 가장 취약하다.
본능이 우선이라 ''즉시 만족''에 쉽게 끌린다.
이 부류는 ''개념이 없다''가 아니다.
그저 자기감정, 편리, 쾌락을 삶의 우선순위로 두는 사람들이다.
좋은 환경에 있으면 본질과 진정으로 기울 수 있다.
덕으로도, 업으로도 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대체로는 회색지대 쪽으로 빨려 들어가기 쉽다.
왜냐하면 본능에 충실한 사람들은 즉각적 만족을 원하고, 회색지대는 이를 영리하게 공급하기 때문이다.
무료 체험, 원클릭 결제, 오늘 안 사면 손해, 남들은 다 하고 있다는 말.
이 모든 장치들이 본능형 사람들을 가장 쉽게 사로잡는다.
누구나 이런 성향(편리와 쾌락)을 갖고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 농도가 훨씬 짙다.
이들의 위험은 환경에 따라 기울기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덕으로 기울면 존중과 존경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업과 회색지대로 기울면 더 빠르게, 더 크게 무너진다.
중요한 건 덕과 업 모두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왜 업은 빠르고, 덕은 느린가?
인간의 삶을 보면 알 수 있다.
안 좋은 일은 대체로 한꺼번에 겹쳐 오지만,
좋은 일은 순간에는 잘 모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며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닫는다.
업은 타인의 약점을 이용해 얻기 때문에 빠르게 돌아온다.
그러나 덕은 타인을 이용하지 않는다.
타인과 세상이 알아봐 주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덕은 느리게 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올 때는 점점 빠르고 강해진다.
연예인을 예로 들어 보자.
운이 좋을 때는 잘못이 있어도 묻히고, 오히려 성장의 발판이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대운이 사라지면, 그동안 쌓아온 업이 한순간에 폭발한다.
비난과 조롱이 쌓이고 쌓여 나락으로 떨어진다.
반대로 덕에 치우쳐 살아온 사람은 위기가 와도 쌓아둔 덕이 방어막이 된다.
윤리를 기준으로 삼아 살아온 덕이, 안 좋은 운이 와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해 준다.
또 다른 예도 있다.
가수 지망생에게 과도한 연습을 시키거나 술·약을 권해 중요한 무대에서 망치게 만드는 것.
이건 업이다. 단기적 이득을 얻을 수 있지만 결국 돌아온다.
반대로 덕은 정반대다.
누군가를 도와줬더니 그가 성장했고, 시간이 흘러 나에게 기회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덕과 업 사이 어딘가에 서 있다.
윤리를 경계로 삼느냐, 법을 경계로 삼느냐, 아니면 경계조차 무시하느냐.
혹은 본능에 충실해 그날의 기분과 쾌락을 좇느냐.
어느 쪽에 치우쳐 사느냐에 따라,
개인의 삶뿐 아니라 가족, 사회, 그리고 후손에게까지 결과는 이어진다.
덕은 느리지만 단단하게 쌓이고, 업은 빠르지만 무너질 때도 빠르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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