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위로가 되길 바라지 않는 글

by Woo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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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다.

힘을 내라고 말하지도 않고, 움직이라고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그저, 지옥 같은 시간을 조금 먼저 지나온 사람이

지금 지옥 같은 얼굴을 한 누군가를 발견했을 때,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의 옆에 앉아, 혼잣말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냥 넘기고, 또 넘기고, 그러다 하나가 걸렸다.


세상에서 ‘도움 된다’고 불리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최고의 위로라는 말, 동기부여가 된다는 말.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는 말.

태도를 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느냐는 말.

수능을 못 봤다고 실패가 아니라는 말.

정말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체력부터 길러야 한다는 말.


나는 그 말들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듣는 순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맞는 말일 수도 있는데… 지금의 나에게는 닿지 않는 느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짜 힘들면, 이런 말들은 의미가 없는데.

진짜 힘들면 이런 말이 떠오르지도 않는데.

‘태도’나 ‘동기’ 같은 단어를 생각할 여유조차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 말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 말들은 버틸 힘이 아직 남아 있을 때,

어딘가로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

비로소 ‘도움’이 될 수 있는 말들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럼 나는 지금…

나는 지금 어떤 상태로 살고 있지?


그래서 이번에는

나를 ‘나’로 보지 않고,

타인을 보듯 잠깐 떨어져 바라보게 됐다.


크게 보면, 나는 그냥 살고 있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이랬다.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여서 한다.

지금 이 순간, 눈앞에 보이는 게 그 것뿐이어서 한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죽을 용기가 없어서 한다....


그렇게 숨을 쉬고, 하루를 넘기고, 또 넘기고 있었다.


이게 ‘완전한 포기’냐고 물으면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희망’으로 살아내는 것도 아니다.


그냥…

기준도, 목표도, 의미도 없는 상태로

낙엽이 바람에 실려 가듯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가고 있었다.


한때 나는 성장에 미쳐 있었다.

그 시절에는 자살하는 사람들을 1도 이해하지 못했다.


“저렇게 죽는 게 쉽나?”
“그 용기로 열심히 살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

고통 속에서 보내고 있을 때,

내 안에 딱 하나의 문장만 떠오르더라.


지금 이 고통에서 해방되는 건… 죽음뿐이다.


이게 ‘이해’라기보다,

그냥 그 감각이 어떤 건지 몸으로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명언도 들어봤고, 스스로 응원도 해봤고,

노력도 해봤고, 발버둥도 쳐봤고,

웃기도 울기도 했고, 움직이기도 했고, 운동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름대로 해봤다.


그런데도 끝에 남는 건 하나였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죽음.

딱 그 단어....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높은 곳의 창가 난간에 몸을 걸친 채

상체는 밖으로,

하체는 안쪽에 둔 자세로

엎드려 있었다.


그게 어떤 행동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렇게

죽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른 채

그 상태로 시간은 지나갔다.


그럼 지금의 나는...


“완전히 이겨냈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지옥 같은 시간에서 몇 걸음은 나온 상태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유는,

내 마음 한구석에 아직 작게 남아 있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세상을 떠나

만약 신을 만날 수 있다면,

나는 뭘 빌게 될까.


부자 집에 태어나게 해 주세요.
행운이 가득한 삶을 살게 해 주세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인생을 주세요.


…이런 걸 말할 것 같지 않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냥 소멸시켜 주세요.

원래 없었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그냥 사라지게 해 주세요.


이유는 단순하다.

부자 집에 태어나든, 행운이 많든, 성공이 보장되든

어떤 삶이든 결국은 아주 작은 노력이라도 해야 하니까.


그리고 나는… 다시는 아프고 싶지도,

버티기 위해 애써야 하는 마음을 느끼고 싶지도 않다.

그 '애씀' '노력' 자체가 다시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아직

완전히 괜찮아졌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끝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큰 틀에서 보면 ‘도망’이라는 단어가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그건 단순히 도망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세상과 환경이 만들어낸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방향,

기준, 의미가 주는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탈출이었을 수도 있다.


목표가 있어야 인간답다는 말,

의미가 있어야 옳다는 말,

명언과 철학과 기준들.


그것들이 어떤 순간에는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것들은

필수라기보다 조건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구간에서 작동하는 진리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물론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민폐를 끼치면서

자신을 챙기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이라면,

의미보다 먼저, 기준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먼저 돌보는 게

가장 우선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글이 누군가에게

큰 위로가 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동기부여도, 질타도 아니다.


그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 옆에

말없이 잠깐 앉아

같은 바람을 느껴주는 자리였으면 한다.


어깨를 잠시 내어주는 위치.

“괜찮아져야 해” 같은 말 없이도

그냥 곁에 있는 것.


이 글은

그런 자리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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